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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Paul Jul 15. 2022

배짱이 책 읽기

쓰거나 읽거나. 둘 중 하나다. 비어있는 시간을 채울 때는. 촌스러운 플레이리스트를 귀에 얹어놓고 산만하게 책 1을 읽다가 열 페이지를 못 가 내려놓고 다음 책을 잡고 그날의 무드에 맞는다면 조금 더 많이 읽다가 또 내려놓고 책 3을 잡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깨작거린 책이 여서일곱 권은 된다. 제멋대로 읽다가 문득 쓰고 싶은 게 생각나면 메모장에 끄적거려본다. 목적이 없는 글쓰기는 자유롭고 편안하다.  

   

얼마 전까지는 단편소설을 오래 읽다가 인문 서적을 짧은 시간 동안 읽고, 에세이를 사이사이 읽었다. 6월부터는 거의 하루 걸러 하루 책을 샀다. 어떤 책은 읽고 팔았다. 움베르토 에코는 인터뷰 중 서가에 꽂힌 책은 다 읽었느냐고 묻는 기자에게 누가 책장에 읽은 책을 꽂아놓느냐고 답했다는데, 앞으로 나도 그렇게 멋지게 대답해야겠다. 어쨌든 읽지 않은 책 지분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기로 마음먹은 후로는 의무감으로 읽는 책들도 있다. 완독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죄책감이 생겨서 오기로 읽는 책도 있었다. 그런데 최근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을 읽은 후로 완독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았다. 나에게 유리한 핑계를 수집하고 있는 것 같다면 제대로 봤다.      


언제 읽느냐, 왜 읽느냐, 왜 쓰느냐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최근에는 시간의 공백이 생기면 하고 뭘 해야 할지 몰라 허둥거리다가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책을 읽는다. 가장 빠르게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에 읽었다. 최근 읽은 단편 소설집 두 권은 매혹적이었고 마음을 깊이 끌어당겨서 새로운 작가를 만난 기쁨이 큰 만큼 감정의 에너지가 빠져나가는 것이 힘들었다. 그래서 그녀의 장편소설을 사려다가 잠시 쉼표가 필요하겠다 싶어 다른 작가의 단편을 샀다. 짧은 호흡은 끊어갈 수 있으니까. 최은영 작가의 단편은 두 개의 손바닥이 어긋남 없이 딱 맞는 것처럼 내 취향에 잘 맞았지만 감정 소모가 심해서 연달아 그녀의 이야기를 3권이나 읽을 수는 없었다. 이야기가 사람을 당기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내 안의 결핍을 동일하게 겪는 인물들이 있었거나 해결하지 못한 응어리를 똑같이 고민하는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에 끌렸다.      


가장 좋아하는 책이 뭐냐고 물으면 또 쉽게 대답을 할 수가 없다. 꼽을만한 단 한 권의 책이라... 그건 어렵다. 다만 기억에 남는 몇 권의 책이 있다. 어떤 책은 더 많이 읽고 싶게 만들고 어떤 책은 쓰고 싶게 만든다. 그렇지만 기억에 남는 책들은 그런 분류에 들지 않고 동경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최근에는 더 읽고 싶게 만드는 책을 많이 접했다. 산만하지만 꾸준히 책을 읽으면서 하나씩 정리할 때마다 비어 가는 자리를 보면 읽기와 정리하기의 쾌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어 짜릿하다. 그렇게 산만한 책 읽기를 하면서 최근 <읽은 계속 쓰기: 나의 단어로> 속 한 구절을 생각한다.     


위대한 작품을 읽으면 고무된다. 이런 작품들은 우리에게 무엇이 가능한지 보여준다. 작업실 바닥에 놓인 수십여 권의 책 가운데 하나씩 골라 시작하는 나의 하루는 즉각적으로 더 나아지고 더 밝아진다. 이렇게 하면서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생각해보자. 한 시간 동안 좋은 책을 읽고 나서 시간을 낭비했다는 안타까운 기분을 느낀 적이 한 번이라도 있나?     


비어있는 시간을 채우는 산만한 책 읽기가 나의 하루를 즉각적으로 조금 낫게 밝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기를 바란다. 내게는 없는 세계, 내가 모르는 수많은 세계들이 잠시 나를 스쳐 오가면서 나의 세계를 조금씩 키우고 넉넉하게 만들어주기를. 그래서 오늘도 산만하게 읽는다. 뒤적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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