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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Paul May 13. 2017

인사하는 에세이

뒷마당 같은 사람이었다. 위로하는 사람이었다. 한 번은 그렇게 말했다.

 

둥둥 아, 나를 사물함이라고 생각해. 내가 둥둥이의 사물함이 되어줄게. 둘 데 없는 이야기가 생기면 언니한테 와서 두고 가.


실제로 둘 데 없는 이야기를 가져가지 않더라도 충분히 고마운 사람이었다. 언니는 바쁜 사람이었고 재주가 많았다. 문학을 전공했지만 피아노 실력은 수준급이었고 클래식 기타를 칠 줄 알았다. 특수아동 관련된 일도 자주 했는데 게 중엔 눈에 띄게 달라지는 아이들도 있었다. 한 번은 심각한 자폐아동을 1:1로 맡게 되었는데 쫓겨난 유치원만 수십 군데라 더 이상 보낼 곳이 없는 아이였다. 언니는 1년 정도 아이를 맡았고, 그 사이 사회성이 많이 좋아져 초등학교 입학을 목표로 삼았다며 부모님이 무척 좋아하더라는 얘기를 들었다. 언니는 체면 치례 같은 것엔 관심이 없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 하면 아이가 맑은 날 우산 쓰고 동산에 오르길 좋아한다면 아이가 엉성하게 달아준 커다란 리본 핀을 달고 함께 우산을 쓰는 것이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었다.


둥둥 아, 나는 원래 부끄러워할 만큼 무언가를 가진 게 없는 사람이라 그런 거야.


라고 말하면 나는 또 끄덕끄덕 그녀의 세계를 상상했다. 한 번은 이렇게 물었다.


언니는 왜 계속 글을 써요?
언젠가 나를 지켜줄 무기가 될 거라고 믿거든. 그래서 쓰는 거야. 언젠가 무기로 쓸 날이 꼭 올 거야.


또 언젠가는 나를 포함 몇몇 재수생 후배들에게 밥을 사준다고 노량진에 찾아왔다. 대여섯 명이 모 피자헛으로 향했는데 공교롭게도 우리 모두 피자헛 매장에 직접 가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매장에 들어가서 어색하게 앉은 후, 형식적인 농담을 던지면서 누군가 먼저 주문하기를 기다렸다.


(배 고픈데. 이런데 처음 왔다는 거 벌써 직원들이 다 눈치챘을 텐데. 좀 와서 주문하는 법을 알려줘라. 왜 안 오는 거야.)......


우리는 20분이나 미루다가 누군가의 용기로 겨우 주문을 했다. 그런데 이번엔 fat 이냐 thin이냐 도우를 고르라는 것이다. 겨우 주문하게 되어 다행인데 이게 무슨 산 넘어 산인가.


(아니 피자면 피자지 도우가 뚱뚱하건 날씬하건 전혀 상관없어요. 도우가 뚱뚱하다고 비웃기라도 할까 봐요? 우리가 서울 피자헛 처음이라고 이렇게 텃세를 부리나! 제발 알아서 해주세요. 선택하고 싶지 않아요. 아무거나 먹어도 다 맛있을 거니까 뭐든 괜찮아요.) thin으로 주세요...


쩔매며 메뉴판을 쥐고 눈동자를 둘 데 없이 굴리다가 thin 피자를 시키고 말았는데 피자집을 나오면서 모두 아쉬운 입맛을 다졌다. 여럿이 먹을 때 음식은 역시 뚱뚱해야 한다. 배를 매만지며 부천으로 와서 언니가 이끄는 대로 서점에 들렀다. 각자 흩어 관심사를 둘러보던 우리를 언니가 조용히 한데 몰았다. (소처럼 몬 것은 아닌데 언니만의 묘한 분위기로 우리를 한 구역으로 자연스럽게 모여들도록 했다는 것인데, 그건 결국 무리를 한 데 몰았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한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인데, 이게 맞는 표현이 아닌 거 같으면서 또 가장 적확한 표현인 거 같은데 무슨 말이지?) 그리고는 우리에게 책을 한 권씩 선물하고 싶다고 했다. 언니가 서너 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벌고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었다. 그녀는 교회 청년부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었고 그건 동시에 몇 개씩 아르바이트를 했기 때문이었다. 밥을 사 먹인 것도  이미 지출이 상당한데, 책을 하나씩 사준다면 얼추 계산해 봐도 적지 않은 돈이었다. 우리가 손사래 치며 번갈아 말렸지만 언니는 정말 무리가 아니라는 표정으로 책을 고르기 시작했다.


언니는 늘 조용하게 말하고 움직이면서 억지스러운 데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녀에 대해 네가 모르는 게 있어.'하고 고까운 시선을 나눠주려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철딱서니 주제에도 나는 직접 겪어보지 않은 것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겠다는 기특한 생각을 그녀에 대해서만큼은 실천했다. 그건 당시 나로서는 대단한 일이었다. 나의 귀는 잔바람, 특히 험담의 입 바람에 잘도 펄럭 거렸으니까.


바쁜 시간을 쪼개 언니는 종종 나를 불러내 밥을 먹이고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리고 따뜻한 말을 해주었다. 언니가 데려간  일식 돈가스 맛집. 내가 앉았던 에어컨 앞 구석 자리, 하얀 의자도 생각이 난다. 가벼운 농담, 따뜻한 장국의 맛과 기분 좋은 대화가 생각난다. 언니네 집에서 함께 먹었던 맛있지 않은 (언니는 그때도 요리를 잘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밥도 생각난다. 그래서 가끔씩 그녀의 소식이 궁금했다. 건너 건너 들리는 이야기를 전해 듣지만 더 많이 궁금했다. 한 번 만나보고 싶기도 했다. 지난주 그녀의 이야기를 서점에서 찾았다. 몇 년 간 알고 지냈고 십여 년 간 모르고 지낸 그 사이의 이야기가 이렇게 책으로 나타났다. 글을 쓰고 싶어 했던 그녀는 뮤즈가 되어 책으로 돌아왔다. 보고 싶어 졌다. 여전히 말이 적고, 남다르게 특별한 듯 아닌 듯 자기의 세상으로 타인의 삶을 두르는 언니가 책 속에 그대로 있었다. 책의 제목은 <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이기호>.  언니와 가족들의 이야기를 언니의 남편이 쓴 가족 소설(작가의 표현으로는 그렇다.)이다.


내가 언젠가 그랬듯이 작가도 언니의 말을 비슷한 마음으로 듣고 느끼는 것 같았다. 언니는 여전하구나. 기억 속의 얼굴을 올리다가 대사에 그녀의 목소리를 입혀보았다. 고운 얼굴과 낮고 부드러운 음성이 아직 기억에 있어서 다행이다. 다시 한번 읽어볼 것이다. 천천히 또 재미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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