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심장을 향해 쏴라_마이클 길모어
이 책은 무리카미 하루키가 일본어로 번역하는 중이라는 글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도서관에서 빌려왔는데
책이 생각보다 두꺼워서 내가 다 읽을 수 있을까, 했었다. 그런데 3.1절 연휴에 그만 다 읽어버렸다. 완전히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뉴스나 기사에 살인자가 나오면 “저런 흉악한 놈은 당장 사형시켜야 한다”는 댓글을 쉽게 보곤 한다. 나도 그런 말들을 그리 고민하지 않고 수긍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한 번쯤은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이 책은 실제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형수에 대한 이야기이다.
모르몬교 후예들이 살아가는 유타주에서 살인자 게리 길모어는 자신의 사형집행을 요구한다. 미국에서는 사형 집행이 사실상 이루어지고 있지 않았는데 하필 유타주에서 사형집행이 부활되고, 살인자 게리 길모어가 최초로 미국에서 사형이 집행되도록 만든다. 게다가 주사로 죽는 것이 아닌 총살로 죽는 것을 택함으로써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살인자가 된다. 이유 없이 주유소와 모텔에서 사람을 죽인 게리 길모어는 마지막으로 합법적으로 자신을 살인함으로서 미국 전체를 분노에 빠지게 만든다.
이 유명한 사건은 결국 게리 길모어의 가정을 낱낱이 해부하게 만드는데, 이 책은 그 일이 있은 후 십 년이 지난 후에 게리 길모어의 동생, 마이클 길모어가 살인과 죽음의 피가 흐르는 자기 집안의 역사를 돌이켜보며 쓴 책이다.
게리 길모어는 뱃속에 있을 때부터 아버지의 사기 행각으로 쫓기는 생활을 하면서 불안에 찬 엄마의 정서 속에 태아 시절을 보내게 된다. 태어난 후에도 아버지의 인정 사정없는 학대와 폭력 속에 방치되었고 매사 무기력하고 우울했던 엄마의 무관심은 그를 보호해주지 못했다. 프랭크 길모어와 베시 브라운 부부는 세 명의 아들을 낳았고 아들들은 모두 불행한 유년기를 거치며 괴물이 되어 간다. 이 글을 쓴 마이클 길모어는 이 불행한 가정의 4번째 아들로 아버지가 60세가 되어 낳은 늦둥이 아들이다. 아버지는 넷째 마이클만 유일하게 때리거나 학대하지 않고 사랑을 주며 키워서 마이클만 온전한 사람으로 자라게 된다. 그러나 그도 고백하였듯, 그는 가정을 이루지 못하고 사랑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사람의 원수는 그 가족이리니.
마태복음 10장 36절
프랭크 길모어와 베시 브라운-그 얼마나 비참하고 가련한 인생들이었던가. 난 그들을 사랑한다.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하다. 그들이 자식을 낳아 세상에 내보낸 것, 그것은 정말로 통탄할 일이었다.
ㅡ살아남은 아들, 이 책의 저자 마이클 길모어.
부모가 휘두르는 폭력 속에 아이가 겪었을 불안과 공포가 너무나도 가련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의 살인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첫째 아들인 프랭크 2세는 살인마가 되는 것 대신 세상과 단절된 채로 자신을 소리 없이 죽이고 사는, 살아도 죽은 것과 같은 삶을 택한다. 둘째 아들 게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아버지로부터 거부당하며(아내의 부정한 행위로 태어난,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고 생각함) 특히나 반항적 기질로 인해 가장 심한 학대를 받으며 자란다. 결국 비행 청소년이 되고 16살부터 소년원에 들어가는 것을 시작으로 22년간 감옥을 드나들게 되다가 사형을 당하여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 과정 속에서 참된 인간으로 교화된다기보다는 더 심한 폭력과 부조리 속에 방치되며, 그저 자동차 좀도둑에 끝날 수도 있었던 비행 청소년은 돌이킬 수 없는 살인마, 악질 괴물이 되어간다.
사진을 몇 장 넘기다가 프랭크가 멈추고 본 건, 내가 가진 사진들 중에서 아버지와 게리가 함께 찍은 유일한 사진이었다. 사진 속의 게리는 해군 모자를 쓰고 있다. 그는 두 팔로 아버지의 목을 꼭 껴안고서, 아버지 얼굴에 자기 뺨을 대고 있다. 그 얼굴에는 애정을 갈구하는 부서진 마음이 보인다. 이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아프다. 그건 자신의 미래를 암시하는 게리의 표정 때문만은 아니다. 아버지 표정 때문이다. 아버지는 게리의 뺨에서 몸을 쭉 뒤로 빼고서, 거의 노골적으로 혐오감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나는 게리가 한 짓이 너무 싫었어." 프랭크가 말했다.
"그 애가 저지른 짓은 너무 끔찍하니까. 하지만 게리가 당한 일들도 끔찍하기는 마찬가지야. 넌 어떻게 생각하니? 만일 게리가 22년 동안 감옥에서 지내지 않았더라면, 그가 과연 한 인간의 머리 뒤통수에 총을 쐈을까? 그것도 그의 임신한 아내와 어린 자식이 지켜보는 앞에서 말이야. 또 다른 사람에겐 어땠을 거 같아? 게리는 주유소에서 그를 쐈지. 그 사람은 몇 시간 동안 숨이 끊어지지 않고 살아 있었대. 그러니까 그 사람은 몇 시간 동안을 죽지도 못하고, 고통 속에서 몸부림을 쳤다는 얘기야. 그렇게 고통스럽게 서서히 죽어 간 거야. 그 짐승 같은 감옥사회에서 받은 교육이 게리를 그렇게 만든 거라고 난 확신해. 그 짐승 같은 사회가 그가 그런 비극을 저지르게 만든 거야.'
셋째 아들 게일렌 또한 온전히 삶을 살지 못한다. 아버지의 폭력과 학대는 시를 사랑하고 책을 좋아했던 천재 소년을 각종 여자문제, 마약 등에 빠지게 만들었으며 결국 어두운 뒷골목에서 (어쩌면 원한 관계에 의한) 강도에게 칼을 맞고, 온건히 살아보고자 마지막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병원에서 쓸쓸히 죽어간다.
길모어 가정의 불행은 개인의 타락을 넘어 그 시대를 살아간 미국의 일그러진 모습이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의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만연한 타락과 폭력의 한 이면이다. 아이에 대한 부모의 비열한 폭력이 가부장제도로 용인되던 그 시대의 비극이 낳은 괴물이다. 게다가 어린 청소년의 방황과 비행을 올바르게 교화한다는 명목으로 자행된, 더 극악한 공권력의 폭력은 오히려 괴물을 키우는 교악의 원천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어른들의 책임이었으며 어른이 만들고 행한 잔인한 형벌제도의 결과이다.
이 책을 몰입해서 몇 시간이고 읽는 나를 남편은 이해하지 못했다. 살인자를 변호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글쎄, 이 책은 결코 게리 길모어의 살인을 변호하는 것은 아니다. 무엇이 언제부터 잘못되었는지 그의 동생 마이클 길모어는 집요하게 파고들며 고민한다. 이것으로 우리는 폭력과 죄악이 반복되지 않는 역사를 배워야 할 것이다.
죽었다는 걸 안 순간, 내 가슴은 부서질 듯
아프고, 나는 끝없는 슬픔에 빠진다.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걸 믿을 수가 없다. 이 고통스러운 상실을 겪고서도 삶이 지속된다는 것을
상상할 수가 없다. 이 견딜 수 없는 슬픔을
가슴에 안고서는 더 이상 살아갈 수가 없다.
그의 죽음을 슬퍼할 단 한 명의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그를 파멸로 이끌었던 가족, 오직 가족뿐이다.
자식은 부모를 사랑하며 인생을 시작하고,
자라나면서 그들을 비판하게 되며,
때로는 용서하기도 한다.
오스카 와일드_리안 그레이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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