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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의 아이

by 펑예

겨우내 겨울잠을 자듯 몸을 웅크리고 있던 것이 따뜻한 봄 햇살과 훈풍에 기지개를 켰다.


고망이 안에 '교류하고 싶은 욕구'에 대한 이야기다.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12월 네 돌이 무색하게 고망이는 작년 초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친구들에게 다가가지 않고 인사도 쭈뼜거렸으며 밖을 나가지 않으려 했다. 놀이치료 수업도 들어가기 싫다며 울었다. 어린이집에서도 비슷한 피드백을 받았다.


한동안 덩달아 기운이 빠졌다. 육아를 버티게 하는 것은 성장의 징후인데 오히려 퇴보라니. 뭐가 잘못된 걸까. 좋아하던 친구와 멀어졌나? 친구들에게 안 좋은 소리를 들었거나 소외감이라도 느낀 건가. 티키타카가 한층 정교해지다보니 빨리 따라잡지 못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다. 나는 원인에 대해 골몰했다.


그렇게 긴 겨울이 지나고 이거 아주 봄이네 했던 3월의 어느 주말, 고망이는 복수초처럼 활짝 피었고 박새처럼 재잘거렸다. 한동안 대단히 심드렁한 얼굴로 대하던 이모에게 활짝 웃어주며 대답도 곧잘 해 우리를 감탄하게 했다. 이제야 겨울잠에서 깬 것 같았다. 그간은 인간세계에서 꾸여꾸역 시간을 보낸 모양으로.


'날씨가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게 하다니.'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날씨의 아이>를 보면 이런 내레이션이 나온다. 일면 이해가 된다. 런던 사람들 중에 우울한 사람이 많고 하와이 사람들은 낙천적이라고 하지 않나. 우리 고망이를 보며 나는 '날씨의 아이'라는 말을 종종 떠올렸다. 날씨를 만드는 아이는 아니지만 날씨에 아주 좌지우지되는 아이. 그러고 보면 나도 날씨의 아이다. 일단 혈압이 다소 낮아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힘들고 아주 서서히 잠이 깬다. 그런데 날씨가 흐리다면? 온종일 머리에 먹구름을 이고 있는 기분이다.

출처: 핀터레스트


반대로 맑고 온습도가 쾌적한 날이면 밖으로 나가 걷고 싶어지고 그러다 보면 여러 일을 몰아서 하는 저력이 생긴다. 특히나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하고 부딪히는 게 기껍다. 그렇게 햇볕을 쬐는 게 중요하다. 정확히는 세로토닌. 절기마다 내가 호르몬의 노예라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챗GPT와 이 점에 대해 이야기해봤는데 또 꽤 의미있는 응답을 들었다.




특히 이것을 자연스러운 선택으로 봐줘서 겨울엔 정서 충전기, 봄엔 사회성 추진기로 목표를 잡고 루틴을 조정해보라는 게 아주 실용적인 해결책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또래보다 어린 느낌이 큰 시기에는 "고망이는 천천히 자라는 멋진 나무야~"라는 자기 리듬 존중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주라고 조언한다. 죄송하지만 전문가쌤보다 낫다;


4월에 한파가 몰아닥쳐 주말 동안 고망이의 날씨도 저기압이었다. 그야말로 심기불편. 마구 떼를 쓰고 엄빠가 자기 말을 따라주는 것으로 안정감을 찾으려했다. 하지만 그 마음을 짐작한다 해도 엄마 역시 저기압이었기에 전선이 충돌해 번개가 여러 번 콰광 내리쳤다.

오늘은 쾌청하다. 고망이는 걷는 법은 없다는 듯 어린이집까지 내달렸다. 지 세상이라는 듯 날뛴다. 나는 위험한 구역마다 겁이 나 가방 손잡이를 고삐처럼 잡아보지만 마지막에 놓쳐버렸다. 같이 가자고 오라했더니 뒤로 가는 법은 없다는 듯 그저 섰다. 화가 끓었다. 아이를 보내고 돌아오는 길,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래, 운동화를 신었으면 됐을 걸. 망아지가 가던 길을 돌아와 같이 천천히 걷기를 바라는 건 욕심이다. 특히나 화창한 날의 망아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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