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

2014년 언제가.

by Wondoo Lee

10년전 쯤인가 어느 모임에서 순수하게 연애의 "설렘과 재미" 만 따지면, 사귀기 직전 "서로의 마음을 점점 확인하는, 고백하기 전 하루 이틀 정도"가 최고라는데 의견이 일치했었다.


"썸"이라는 단어가 생겨나면서 그 새콤달콤상콤한 "타이밍"이 점점 길어지기 시작했다. 예전 같으면 이미 고백을 하고 사귀었을만한 시간 or "난 오빠를 그런 감정으로 만난건 아니었어"라는 얘기를 듣게 되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음에도 "썸타는 중"이란 말로 포장하면 양 쪽 모두가 행복해졌다.


게다가 "썸"이라는 단어는 몹시도 안전하다. 남자들은 "농밀한 육체관계"의 가능성을 낮추는 대신 언제든 다른 "썸"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여자들은 관계의 안정성을 어느 정도만 포기하면 "어장관리녀"라는 비난을 듣지 않을 수 있게 된다.


연애, 결혼, 사랑 등등을 목적으로 하는 어떤 두 사람의 관계가 다음 관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리스크를 감수해야만 한다. 누군가의 "우리 커피나 한 잔 마실까?"부터 "나랑 결혼할래?"까지의 모든 말에는 용기와 함께 거절의 위험이 포함되어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누군가는 용기를 내야만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대부분 이런 상황에서는 약자가 용기를 낼 수 밖에 없다).


페이스북 "알 수도 있는 사람" 추천을 한참 동안 보고나니, 문득 "썸"이 가지고 있는 안전함은 연애나 사랑의 속성과는 정반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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