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차 서비스 기획자가 책 <에디토리얼 씽킹>을 읽고 난 소회
크고 작은 서비스를 기획하고 개선하면서 IT 업계를 누빈 지 어느덧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어디 가서 주니어라고 말하기엔 긴 경력이 되었지만, 체계적인 훈련이 아닌 부딪혀가며 길러온 감각과 업무 방식에 대해 가끔 의구심이 들곤 한다. 그렇게 더 나은 기획자가 되고 싶은 마음, 일을 잘하고 싶다는 욕심을 품고 살던 차에 최혜진 작가의 책 <에디토리얼 씽킹>을 만났다.
근래에 읽었던 책 중 술술 읽히면서도 생각이 말랑말랑해지는 시간이었다. 무언가를 기획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누군가 아직 이 책을 만나지 못했다면 꼭 한번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추천하고 싶다. 당신이 기획하는 것이, 서비스든/비즈니스든/콘텐츠이든 그리고 당신의 인생이든, 곁에 두고 읽어보는 참고서가 같은 책이 될 것이라 믿는다.
"편집은 결국 의미의 밀도를 높여가는 과정이다. 데이터를 이야기로 바꾸고, 사실에서 통찰을 끌어내는 행위이다. 에디토리얼 씽킹에는 우리를 더 높은 차원의 의미로 데려가는 힘이 있다."
- 에디토리얼 씽킹, 9p
의미를 손에 쥐면 같은 현실을 다르게 살 수 있다(13p)는 저자의 말처럼, 나 역시 '의미', '의의'를 중요하게 여긴다. 같은 현상이라도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스트레스가 될 수도, 성장의 동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브랜딩이 잘 된 제품이나 사람에게 자연스레 끌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제품은 같더라도 어떤 스토리로 탄생했고, 어떤 문장이 쓰였고, 그 사람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가 분명한 의도와 맥락 속에 있음을 발견할 때, 그 세계관에 깊이 공감하고 매료되곤 했다. 이것이 내가 그동안 경험한 잘 된 기획물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 대한 고민은 서비스 기획자로서 내가 마주하는 일상적인 과제와도 맞닿아 있다. 서비스 기획에서 단순히 데이터만을 바라보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가끔 그런 기획자들을 보면 안타깝다.) 데이터는 사용자의 행동을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일 뿐, 그 뒤에 숨겨진 맥락과 이유를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우리는 데이터 추이를 통해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며 숫자 뒤에 숨은 사용자의 진짜 니즈를 발견해야 한다. 때로는 정량적 데이터로는 포착할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이나 경험의 맥락을 읽어내기 위해 정성적 인사이트를 함께 고려해야 하기도 한다.
특히 책에서 다루는 '범주화'와 '객관성과 주관성' 부분은 내가 데이터를 분석하고 인사이트를 도출하는 과정과 맞닿아 있었다. 사용자 행동 데이터를 단순히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패턴으로 범주화하고, 객관성 사이에서 주관적인 해석으로 설득을 해나가는 것 말이다. '프레임'과 '질문'이라는 챕터에서는 문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도 얻을 수 있었다. 같은 현상이라도 어떤 프레임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해결책이 도출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좋은 답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좋은 질문을 던질 줄 알아야 한다는 점이 특히 와닿았다.
이런 다층적인 사고방식은 서비스 기획의 본질과도 맞닿아 있다. 단순히 기획서를 잘 쓰는 일이 아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데이터 분석과 사용자 심리 이해, 비즈니스 통찰, 그리고 스토리텔링까지 아우르는 종합 예술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커뮤니케이션으로 풀어내야 하는 일이기에 더욱 매력적이고, 또 그만큼 끊임없는 고민과 노력이 필요한 영역이기도 하다. 그래서 참 어렵다.
이 책을 통해 기본기를 정비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 기능이 필요한가?'라는 단순한 질문을 넘어서, '이 기능이 사용자의 어떤 맥락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서비스만의 차별화된 관점은 무엇인가?'와 같은 더 깊이 있는 질문들을 던지며 업무에 적용해 볼 것이다.
이 책은 나의 약점을 돌아보게 해 주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이해를 위해 최대한 많은 정보와 맥락을 공유하려는 성향이 있어서, 간단한 설명이 필요한 순간에도 종종 장활해지곤 했다. '생략'과 '요점' 파트에서 배운 것처럼 핵심에 집중하고 군더더기를 덜어내는 법을, '컨셉' 챕터에서 배운 것처럼 서비스의 본질을 날카롭게 드러내는 방법을 실천해보려 한다. 넓은 시각으로 영감을 얻되, 이를 서비스만의 고유한 맥락으로 해석하는 작업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그녀와 그녀의 일에 보내는 감사편지라는 마지막 문장은 마음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얼마나 그녀가 치열하게 일을 사랑했는지, 엿볼 수 있는 귀한 책이다. 문장 하나하나 밑줄을 그으며 수집하며, 존경을 건네고 응원을 보내고 감사를 전한다.
이 책을 읽기 전에 그녀의 인터뷰 글 하나를 읽었고 다음 문장에 밑줄을 쳤었다.
"어떤 내면의 필요한 서사에 의해 이런 삶을 택했는지, 점을 연결해 맥락으로 만들 수 있는 주체는 자기 자신 밖에 없다. 그리고 맥락이 있는 희한함을 우리는 '독창성'이라고 부른다."
- 최혜진, BE(ATTITUDE) 매거진 에세이 중
묘비명은 누가 지어주는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내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람이었는지, 내가 직접 말하고 표현하고 드러내야 하는 게 먼저지, 가만히 있는 나에 대해 누가 알아주는 게 아니라는 것을.
"세상을 보는 당신의 두 눈, 정보를 해석하고 세상과 호응하는 당신의 방식은 귀하고 소중하다. 뛰어나서가 아니다. 화려해서가 아니다. 유일해서다. 당신이 이 세상 누구와도 같지 않은 사람이어서 그렇다. 그러니 부디 질문하기를, 입장을 갖기를 드러내기를!"
- 에디토리얼 씽킹, 165p
이 책을 읽고, 용기를 많이 얻었다.
운영하지 않던 인스타그램에 게시글을 올리기 시작했고, 나만이 가질 수 있는 키워드가 무엇일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만의 맥락을 만들어 내는 힘을 더 기르고 힘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에서도, 내 삶에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