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봄은 아프다.

사랑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by James Kim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 황동규 ‘즐거운 편지 1’에서


봄이 오면 못 이룬 옛사랑과 만날 수 없는 옛사람이 생각나게 마련이다. 그러한 연유 중 한 가지는 볕 바른 곳에 싹이 돋고 꽃이 피니 벌 나비가 분주히 날아들어 마음이 어지러워지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창으로 스며드는 따뜻한 봄볕에 책을 들고 앉아 있으면 스르르 감기는 눈꺼풀 위로 지나간 젊은 옛사랑이 풋내 나는 미소를 보내온다.

이것도 다 봄날의 봄기운 때문이니까 뭐라 크게 탓 할이 없으리라 믿는다.


옛 신라의 젊고 아리따운 여승 ‘설요’는 꽃피고 새가 우는 어느 봄날, 봄기운을 도저히 어쩌지 못하고 다음과 같은 시 한 줄을 써놓고 속세로 내려왔단다.

“꽃피어 봄 마음 이리 설레니

아, 이 젊음을 어찌할거나.”


그때 그녀의 나이 스물한 살이라 하였다.

법당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이 고요함에 숨을 참다가 바람에 소리를 내듯, 그녀의 마음에도 봄의 시간과 젊음이 조용히 살아 숨 쉬고 있었을 것이다. 수행자의 길 위에 있었지만, 스물한 살의 봄은 경전 속 글자와 부처님의 미소만으로는 다스려지지 않는 또 하나의 흐름이었으리라.

그래서 설요는 스스로를 인내하고 꾸짖기보다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봄이 와서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 허물이라면 꽃이 피는 것도 허물일 것이고 새가 노래하는 것도 허물일 것이다. 그러나 피는 것은 피는 대로, 흔들리는 것은 흔들리는 대로 모두 또한 흐름 속에 있으니 이 또한 그대로 흘러가리라.


청춘의 봄은 아프다.

그러나 청춘은 이 아픔을 이겨내며 비로소 성숙해진다.

청춘의 시간은 꽃이 피는 봄의 계절이지만, 그 꽃이 피기까지 얼마나 많은 긴 겨울의 찬바람을 견디어 냈는지를 우리는 알고 있다.

마음이 흔들리고, 기대가 무너지고, 이유 없이 외로워지는 날들이 이어질 때 비로소 사람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어있다. 어쩌면 청춘의 아픔이란 우리를 쓰러뜨리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라, 아직 단단해지지 않은 마음을 한 겹씩 단련시키기 위해 찾아오는 성장의 통과의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젊은 날의 상처는 흉터로 남기 위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이해와 더 따뜻한 시선을 가진 사람으로 나아가게 하는 보이지 않는 뿌리가 된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알게 된다. 그때 청춘을 아프게 했던 일들이 결국은 젊음을 무너지게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청춘을 지탱하는 힘이 되어주었다는 것을. 마치 봄비에 젖은 땅이 더 단단해지고, 그 위에 피어나는 꽃이 더 깊은 아름다움을 담고 있듯이 말이다.

청춘은 완벽해서 빛나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면서도 쉽게 포기하지 않고 다시 중심을 잡고 피어나려 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


위에 쓰여있는 황동규의 시(詩) ‘즐거운 편지 1’은 그의 젊음이 시작되는 19세인 청춘 시절에 연상의 여인을 그리며 쓴 단 한 문장의 연시이다. 그도 이제는 늙어 9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으니 옛사랑과 옛사람이 다시 그리워질 법도 하다.

연시는 역시 청춘에 쓴 흔들림이 묻어있는 풋풋함이 함께하는 떫은맛이 제격이다.

그러나 19세 황동규의 청춘 연시는 노회 한 노장들의 글재주를 넘어선다.

글재주도 물림인가?

황동규는 ‘소나기’를 쓴 황순원 소설가의 아들이다.

그의 시 ‘즐거운 편지 2’를 함께 읽어보시길.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청춘의 젊었던 시인은 어쩔 수 없는 사랑을 바라보며 그저 상대를 기다리는 과정 속에 있는 감정을 차분히 억누르려 애쓰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랑이란 만나서 기쁜 것도 있겠지만, 기다리는 시간도 즐거워지는 마음의 상태라는 것을 보여주는 깊은 힘이 있다.

즉, 만나는 순간만이 사랑이 아니라 그 사람을 생각하는 모든 시간이 이미 사랑이라는 관점을 보여준다. 이것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사랑을 결과가 아니라 과정으로 보는 매우 성숙한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삶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사랑은 억지로 붙잡으려 하면 탈이 나고 억지로 잊으려 하면 병이 난다. 그저 마음에 머물게 두는 것 또한 사랑이다.

내 삶에 잠시 다녀간 사람들조차도 하나의 선물로 받아들이는 마음이 사랑이다. 서두르지 않고, 억지로 바꾸려 하지 않고, 지금 주어진 마음과 시간 속에서 조용히 성숙해 가는 삶이 좋다.

그래서 이제 나는 새로운 인연을 붙잡으려 애쓰기보다, 머물다 간 시간의 온기를 오래 기억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함께 웃었던 날들도, 말없이 돌아섰던 순간들까지도 모두 나를 여기까지 데려다준 조용한 동반자였다고 믿으면서 말이다. 서두르지 않아도 꽃은 제때 피고, 재촉하지 않아도 태양은 제시간에 뜨고 진다. 그러니 나 또한 내 삶의 속도를 믿으며, 오늘 주어진 하루를 너무 무겁지 않게 그러나 성실하게 살아가려 한다.

지나간 사람과 흘러간 사랑은 추억으로 남고 남아 있는 시간은 바람으로 남아 결국 삶은 지나버린 것이 아니라 조금씩 깊어져 가는 것임을 알게 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조금 더 부드러운 마음으로 조금 더 느긋한 걸음으로 내 인생의 봄을 맞이하려 한다.

봄아,

너, 참 아름답다.

오래오래 내 곁에 있어라!



Saturday, March28 th. 2026

작가의 이전글행복도 학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