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인생은 한 권의 책과 같다.
어리석은 사람은 대충 책장을 넘기지만
현명한 사람은 공들여서 읽는다.
그들은 단 한 번 밖에 읽지 못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장 파울 Jean Paul
한밤중 잠에서 깨워 다시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할 때가 있다. 자다 깨어나면 많은 생각들이 떠오른다. 그 생각들 속에서 헤매다 보면 잡념들이 더욱 정신을 또렷이 하며 잠이 달아난다. 이럴 때는 억지로 잠자기를 포기하는 편이 차라리 나은 것 같다. 잠자려 들면 더욱 또렷한 정신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오늘도 그러한 하나의 밤이 찾아온 것 같다.
쓸데없는 생각 같지만 나는 어떻게 사는 인생이 참된 세상을 사는 삶인지 생각한다. 그러면서 나는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도 생각해 보고 남은 생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생각한다. 뚜렷이 답을 찾아낼 수 없는 질문에 스스로 당황스러우면서도 뭔가 아쉬운 느낌은 나만 느끼는 감정은 아닐 것이다.
독일의 소설가이며 시인인 장 파울은 ‘인생은 한 권의 책과 같다’라고 말했다.
한 사람이 어디선가 태어나서, 무엇인가를 배우고, 누군가와 교류하며, 무슨 일인가를 하고, 좋아하는 어떤 이를 만났다 헤어지기도 하고, 흥미 있는 일에 푹 빠져 열심히 집중도 해보고 사랑도 미움도 겪는다. 즐거운 일과 슬픈 일이 교차하기도 하고 비 내리는 날과 눈 내리는 날, 흐리고 바람 부는 날, 그리고 화창한 날을 경험한다. 고독을 느끼는 순간이 있을 것이며, 깊은 사색의 순간도 존재한다. 짜증과 화를 못 참아 크게 소리 지를 때도 있었고 기쁨과 환희로 마냥 들떠있던 순간도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인생이라는 한 권의 책 속에 모두 들어있다. 단 한 번밖에 읽지 못하는 책 속에 들어있는 나의 소중한 인생!
나는 인생이라는 한 권의 책을 대충 페이지를 넘겨 읽는 어리석은 사람은 아니었는지 돌아본다. 재미있는 부분은 열심히 그리고 꼼꼼하게 살펴 읽고 힘들고 어려운 부분은 적당히 아니면 대충 건너뛴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아름다운 봄날, 꽃잎 휘날리는 날에 좋은 사람들과 함께 가는 들뜨고 아름다운 소풍의 페이지를 읽는다. 하늘은 파랗게 맑고 흰 구름은 조용히 흘러가고 봄에 피는 꽃들이 다투어 피어있다. 꽃들 사이로 산들바람 불어 꽃향기 은은히 흘러나오고 햇빛은 화사하고 따뜻하다. 노란 나비가 우아한 날개를 펼치며 꽃잎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맑고 투명한 개울물이 바윗돌 사이로 졸졸 소리 내며 흐르고 송사리 몇 마리 물살을 가르며 헤엄친다.
그냥 순하고 편하게 읽히는 인생의 아름다운 페이지들이다.
무더운 여름날, 뜨거운 해가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는 한증막 속 같은 비지땀을 흘리는 힘겨운 역경의 페이지를 읽고 있다. 대기엔 바람 한 점 불어오지 않으며 끝없이 이어지는 자갈길은 불에 달구어진 듯 열기를 내뿜고 있다. 그늘을 찾아 몸을 피해 보려 하지만 온통 끝없이 펼쳐지는 뜨거운 황무지만 있을 뿐이다.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고 그늘 한 점과 바람 한 점이 존재하지 않는 넓은 광야에서 홀로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걸어가고 있다. 타오르는 태양과 반사된 지열이 후끈후끈하게 달아오르며 땀이 눈에 스며들어 따갑고 얼굴은 벌겋게 익어가고 있다. 등에 진 짐의 무게가 삶의 무게를 더하여 더욱 어깨끈을 조여 오며 걸음이 느려진다.
그냥 덮어버리든 빨리 건너뛰고 싶은 힘들고 어려운 인생의 고행길이 이어지는 페이지다.
그러나 이런 힘들고 햇볕 지나치게 뜨거워 땀 흘리는 무더운 날만 계속된다면 여름 인생의 책은 너무 잔인하다.
구름 한 점 없었던 하늘 저 멀리 어디서부터 점차 어두워지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먹구름이 생성되고 무거운 바람 불더니 천둥소리 들린다. 굵은 빗방울 하나 얼굴에 튀는가 하였더니 곧이어 소낙비 내린다. 지축을 흔들며 내리는 소낙비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적시며 흘러내려 땀을 식히고 갈증을 달래준다. 뜨겁게 달구어진 황무지는 수증기를 내뿜으며 식어가고 힘들었던 인생의 여름 책 페이지도 숨 가쁘게 넘어간다.
들판에 누렇게 곡식이 익어가고 밤송이는 입을 벌려 매끄러운 진한 갈색의 알밤이 땅에 떨어져 구른다. 하늘은 높고 파란색으로 깊고 맑은 시원한 우물 속을 닮았다. 농부는 들판에 나가 한 해의 농사를 수확하는 기쁨으로 이마에 굵게 드리운 주름에 땀이 스며들어도 즐거움에 마냥 웃는다. 사과는 점차 빨갛게 얼굴을 물들이며 당도가 올라가고 배는 누렇게 살집을 키우며 포동포동한 몸매를 자랑한다. 감나무 가지에 주렁주렁 열린 감들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가지를 땅으로 점차 드리운다. 대추는 얼굴이 붉다 못해 쭈글쭈글해지기 시작하였으며 하나둘 땅에 떨어져 소리를 낸다. 결실의 계절, 수확의 계절, 바야흐로 농부의 곳간이 가득 차고 새들도 들쥐까지도 마음껏 배불리 먹으며 가을을 노래한다.
풍요로운 마음으로 노래하듯 뿌듯하게 가을의 책장을 넘긴다.
이제 남아있는 계절은 겨울이다. 가을이 결실의 계절이었다면 겨울은 가을에 거둔 결과물을 가지고 일하지 않고 먹으며 편안하고 조용히 난롯가에 앉아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는 정리와 사색의 계절이다.
예이츠(Yeats)의 시 ‘When you are old’를 난롯가에 앉아 무릎에 따뜻한 담요를 두르고 가만히 읊조려 보아라.
“그대 늙어 은발 되어 잠이 가득해
난롯가에서 꾸벅꾸벅 졸거든
이 책을 꺼내 천천히 읽으시기를,
그리고 한때 그대의 눈 속에 부드러운 눈빛과,
깊은 그늘을 꿈꾸소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당신의 우아한 순간을 사랑했으며
......
어떻게 사랑이 떠나 저기 높은 산으로 올라가
수많은 별 들 속으로 그 얼굴을 감추었는지”
노동운동가 시인 박노해는 그의 책 ‘걷는 독서’에서 이렇게 읊조렸다.
“좋은 날은 짧았고
(Good days were short,)
힘든 날은 많았다.
(hard days were many.)
그래도 우리는 살아왔다.
(Yet still we went living on.)
그래도 삶은 나아간다.”
(Yet still life goes on.)
그러면서 그는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말고, 미래를 위해 오늘을 살지 말라고”
(Don’t sell the past to live today, Don’t live today for the sake of tomorrow.) 말한다.
가만히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모든 것이 꿈처럼 흘러간다. 구름 위를 걷는듯한 인생길에서 내 발 딛는 곳을 모른 채로 허방을 내딛는다. 겨울은 한편으로 쓸쓸한 계절이다.
김영재 시인은 겨울과 함께하는 시정을 그의 시 ‘겨울 정동진’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나를 버리러 왔다가
너무 쓸쓸해
차마 버리지 못하고
다시 챙겨 돌아선
바닷가 겨울 간이역
첫사랑 언 새벽”
이제는 차분히 주위를 정리하고 따뜻한 차를 준비하여 등불을 밝혀 책을 읽을 시간이다. 아직 나무에 매달려 있는 늦은 잎들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침잠할 때이다. 겨울은 그렇게 우리 곁에서 우리를 읽히는 책장의 끄트머리로 남을 것이다.
네덜란드의 작가 ‘세스 노터붐 (Cees Nooteboom)’은 그의 책 ‘의식’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내 시대를 끝까지 살아갈 뿐이야.
다른 방법은 없거든.”
Tuesday, October 21st.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