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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행복에 대하여 생각해 보는 아침에

by James Kim



“그리고 당신,

저는 당신을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합니다.

이 죽음의 이름으로, 사랑을 스쳐 지나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당신을 고발합니다.

당신에게는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지만, 고독형을 선고합니다.”

프랑스아즈 사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오늘 아침 세상을 살아오면서 ‘사랑을 스쳐 지나가게 한 죄’를 생각해 본다. 나도 모르는 새에 내게 왔던 사랑을 흘려보낸 적이 있는가? 또는 알면서도 내게 왔던 사랑을 스쳐 지나가게 한 적이 있는가? 내가 알면서도 또는 나도 모르는 새에 지나간 사랑이 있는가?

분명히 나는 알게 모르게 누구에게 사랑을 스쳐 지나가게 함으로써 한때 가슴 아픈 일을 겪게 했을 것이다. 분명히 그 사람에게 크든 작든 마음의 상처를 주었을 것이며 그 사람을 밤에 홀로 깨어 눈물짓게 한 일이 있을 것이다.

손으로 꼭 쥐고 있던 떡 한 조각을 건네준 꼬마의 성의를 거절한 일, 등교 시간이 늦어 어머니가 주는 아침밥을 무시하고 건너간 일, 혼자의 생각이지만 사랑이 이루어질 줄로 생각하고 순수한 미소를 보내온 쌀집 딸의 웃음을 못 본 체 한 일, “나 이제 그만 결혼해요”라고 말하며 쓸쓸히 고개 숙이던 한 여인의 눈물이 내가 알게 모르게 스쳐 지나간 버려버린 사랑이 아니던가?

그러므로 지금 나는 고독형을 선고받았다.

또한, 오늘 아침 세상을 살아오면서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를 생각해 본다.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순간의 행복을 나는 버리고 무시해 왔던가?

아침에 부는 신선한 바람의 행복을 수시로 무시하였고, 창밖으로 들리는 아름다운 새의 울음소리를 소음으로 치부해 버린 적이 너무나 많았다. 철 따라 피어나는 형형색색의 꽃들에게도 감사함을 제대로 표현한 적이 없었으며, 계절의 순환에도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지나친 적이 많았다. 푸르른 하늘에 떠 있는 흰 구름의 깨끗함을 제대로 보지 않았으며, 연녹색의 새잎을 틔우는 나무의 수고로움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아 왔다. 무더운 여름날 더위를 식히는 먹구름과 소나기의 등장에도 행복해하지 않았다. 입시에 합격한 날의 감격과 흥분이 며칠을 넘기지 못하였으며 친구의 성공에 크게 기뻐하지도 않았다. 작은 것에 감사함과 행복함을 느끼지 못하고 더 큰 성공과 더 큰 물질에만 매달렸다. 세속의 기쁨만을 추구하고 내면의 기쁨을 추구하지 않았다. 학문의 깨달음에 크게 만족함을 못 느꼈고 진리 추구에 게을렀다. 이 모든 것을 온몸으로 느끼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했으므로 행복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지금 나는 고독형을 선고받았다.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 또한 가볍지 않다.

바쁘다는 핑계로 어린 아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고, 손잡고 골목길을 자주 걷지도 못했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청소하는 아내를 도와주지도 않았고, 요리하는 부엌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학습 진도에 방해된다는 핑계로 학생들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고 반응해 주지 않은 적도 셀 수 없이 많았던 것 같다.

또한 나는 세상을 살아오면서 많은 편법을 저질러왔다. 세금을 줄이기 위해서 가지가지의 절세에 관한 편법을 동원한 적이 있으며, 운전할 때 에도 교통법규를 자주 무시했으며 무리한 끼어들기도 자행한 적이 여러 번 있다.

체념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거의 대표주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운동하다 힘이 들면 책정한 시간을 채우지 않고 그만두었으며, 책을 읽다가도 난해한 부분에 들어서서는 과감히 책갈피를 끼우고 다음에 읽는다고 미루어 둔다. 무슨 일을 하다 힘에 부치면 이건 내 능력 밖의 일이다 생각하고 체념하곤 한다. 분명히 그 힘에 부치는 일은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노력이 부족해서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리하곤 한다.

이렇게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나는 지금 고독형을 선고받았다.


프랑스와즈 사강은 내게 “당신에게는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지만, 고독형을 선고합니다.”라고 말한다. 고독형 선고는 슬프고 언짢은 상황인 것은 틀림없지만 사형 선고에 비하면 가뿐한 편이다. 가볍게 받아들이고 지금부터라도 작은 사랑도 그저 스쳐 지나가게 하지 않을 것이며, 모든 일에 감사함으로 행복함을 듬뿍 느끼도록 노력할 것이다. 또한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삶을 정당함과 노력함을 가진 삶으로 점차 바꾸어 나갈 것이다.

고독함을 선고받은 나는 겸허히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의 시(詩) ‘가을날’의 뒷부분을 읊조리며 오늘 아침을 보냅니다.


........

“지금 고독한 사람은 오랫동안 외롭게 살아가면서

잠 못 이루어 책을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그리하여 낙엽 뒹구는 가로수 길을 불안스레 이리저리 헤맬 것입니다.”


Wednesday, September 3rd.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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