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이루었는가’ 보다 ‘어떻게 살아왔는가’로
“칸트는 모든 사람은 스스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산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스스로 존엄성을 지키는 것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함이며, 자신의 인격을 지키는 일이다.
사람은 이렇게 자신의 존엄성이나 인격을
어떤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고 목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칸트는 도덕법칙인 ‘정언명령’을 통해 가능한 행동만 계속하고,
그렇지 못한 행동은 하지 말라고 주장한다.
여기에 인격의 중요성도 함께 강조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받으려면 스스로 인격체임을 알고
다른 사람을 수단으로 사용하지 말고
목적으로 대하라는 것이다.
- 서정욱 ‘좋은 공동체는 어떤 곳일까?’에서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은 분명한 방향과 기준을 세우고, 그에 맞추어 하루하루를 꾸려가는 방식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지향하는 삶의 모습이다.
그러면서도 현대사회에서 자기 자신 스스로의 존엄성을 지키면서 자신의 목적을 지향하는 삶은 만만치 않은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
실제로 마주하는 현실의 벽은 늘 그 기준을 시험하듯 우리를 흔들어 놓고, 때로는 타협과 포기를 은근히 권유한다. 그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목적을 향한 의지만큼이나, 스스로를 돌아보고 지켜내는 내면의 힘이 함께 자라나야 한다.
현실의 어려움과 여러 가지 고비를 겪으면서도 기필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일은 오롯이 자신의 인격을 지키는 일과도 일맥상통한다.
왜냐하면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길 위에서 우리가 내리는 수많은 선택들이 결국 우리 자신을 형성하고, 그 자체로 하나의 삶의 품격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람은 자신의 존엄성이나 인격을 어떤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고 목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이유이다.
다만 우리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정진하는 과정에서 지켜내는 태도와 선택이 곧 자신의 삶을 규정하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자신을 단지 목표를 이루기 위한 도구로 전락시키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목적은 단순한 성취를 넘어, 우리 존재를 온전히 드러내는 의미 있는 인생의 여정이 된다.
이러한 흐름 위에서 임마누엘 칸트의 도덕법칙인 정언명령은 하나의 고요한 기준처럼 우리 앞에 놓인다. 그는 우리가 어떤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그 행위가 세상 모든 이에게도 흔들림 없이 적용될 수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묻기를 요구한다. 만일 그것이 보편의 빛 아래에서 부끄러움 없이 설 수 없다면, 그 선택은 비록 달콤해 보일지라도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결국 목적 있는 삶을 사는 인간의 길이란 욕망의 유혹을 따라 흔들리는 발걸음이 아니라, 스스로 세운 보편의 기준 위에 자신의 삶을 한 걸음씩 조심스럽게 얹어 가는 일인 것이다. 그 조용하면서도 꾸준한 축적 속에서 비로소 우리는 자신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살아가는 존재로 완성해 간다.
그리고 그때 우리의 삶은 더 이상 ‘무엇을 이루었는가’로 평가되지 않고, ‘어떻게 살아왔는가’라는 물음 앞에서 스스로 빛을 발하게 된다.
한 사람의 삶이란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끝까지 써 내려가는 한 편의 고요한 다큐멘터리인 것이다. 그리고 그 긴 기록의 끝에서 남는 것은 화려한 장면이 아니라, 끝까지 자신을 지켜낸 한 사람의 조용한 흔적일 것이다.
한 사람이 이 세상을 한평생 살아나가면서 꼭 필요한 것은 올바른 인격을 함양하고 그것을 소신껏 펼쳐나가는 것이다.
그 길은 결코 평탄하지만은 않아서, 우리는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 앞에서 망설이고 때로는 흔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스스로 세운 목적과 기준으로 다시 자신을 돌아보고, 그 목적과 기준에 기대어 한 걸음씩 나아가는 일이야말로 삶을 지탱하는 가장 깊은 힘이 된다.
비록 그 길이 더디고 눈에 띄지 않을지라도, 그 속에서 지켜낸 태도와 마음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우리 존재의 뿌리처럼 차곡차곡 쌓여 간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삶의 의미는 무엇을 이루었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끝까지 걸어왔는가에 있다는 사실을.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를 인격체임을 알고 다른 사람을 수단으로 사용하지 말고 목적으로 대하라는 것이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타인을 존중하는 마음속에서 자신의 가치 또한 함께 드러나게 되며, 관계는 이해관계의 얽힘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온전히 인정하는 자리로 나아가게 된다.
이러한 태도는 결국 관계의 결을 바꾸어 놓는다. 이해관계로 얽힌 얕은 연결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온전히 인정하는 단단한 신뢰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깨닫게 된다.
타인을 존중하는 일은 곧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일과 다르지 않으며, 그 둘은 하나의 뿌리에서 자라난다는 사실을.
그래서 인간의 존엄은 타인에게 요구하기에 앞서, 먼저 스스로의 태도 속에서 조용히 실천되어야 한다. 그렇게 쌓여 가는 작은 실천들이 모여, 결국 한 사람의 품격을 이루고 그 삶 전체를 하나의 신뢰로 빛나게 한다.
Chicken Soup for the Soul(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를 쓴 Jack Canfield(잭 캔필드)는 우리가 타인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말아야 할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누군가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할 때마다 사실은 우리 자신이 피해를 입습니다.
우리가 누구를 비판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판단을 투사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누군가를 비판하고 험담하면 내 안에 불만이 쌓이고, 정작 내가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타인을 향해 흩어지던 시선을 거두어, 조용히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때 나의 마음은 불필요한 소모에서 벗어나고, 진정으로 힘을 쏟아야 할 방향이 또렷해진다.
결국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타인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나 스스로의 내면의 평화와 인격 함양을 위한 태도이며, 그 고요한 전환 속에서 우리의 하루는 조금씩 더 단단해지고 성숙해진다.
일요일 오후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고 있다.
지금 이 시간 마음이 아픈 사람이 없었으면 한다.
모두가 용서하는 마음으로,
느긋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바라보며 평화로웠으면 한다.
Sunday, February 22nd.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