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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호 Dec 15. 2017

행복 방정식에 이의 있습니다.

Income and Happiness in the United States. Source Layard(2006)


지난 수십 년간 평균 개인소득은 극적으로 증가했지만 '스스로 매우 행복하다'라고 하는 'Very Happy' 비율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경제학자인 폴 새뮤얼슨(1915~2009)은 행복 방정식으로 그 이유를 설명한다. 이 식에 따르면 '가진 것'이 많을수록, '원하는 것'이 적을수록 행복이 커진다. 그동안 수입과 더불어 '원하는 것'도 덩달아 커졌기 때문에 행복이 크게 늘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유명한 행복방정식. 이 방정식에 이의(異議) 있습니다.


이 방정식은 더 행복해지는 방법으로도 인용된다. '가진 것'을 늘리는 것이 어려우니 '원하는 것'을 적당히 줄여야 행복해진다는 논리다. 언뜻 맞는 말 같지만, 평범한 사람이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조절하는 것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실제 그럴 수 있으려면 어떤 종교적 경지에 올라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이 방정식을 처음 접했을 때부터 온전히 공감할 수는 없었다. 행복을 결정하는 변수는 '가진 것'과 '원하는 것'만이 아니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빠져 있는 변수가 무엇인지 꽤 오래 고민했는데, 적어도 하나는 찾은 거 같다. 바로 '과정'이다. 저 방정식에는 과정에 대한 변수가 빠져있다. '원하는 것'을 향해 가는 과정이 행복한 사람은 '가진 것'이 보잘것없더라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는 점을 이 방정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이것을 수식으로 어떻게 표현할지 계속 고민 중이다.)


예를 들어, 당장은 '가진 것'이 별로 없는 청년을 떠올려 보자. 그 청년이 간절히 '원하는 것'(평생을 통해 이루고 싶은 꿈일 수도 있고 취업과 같은 현실적인 목표일 수도 있겠다)을 향하여 간절히 노력하고 있다면 행복할 수 있을까? 행복 방정식대로라면 분모(원하는 것)가 분자(가진 것)보다 훨씬 크므로 행복값이 0에 가까워야 할 것이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그와 반대인 사례를 여러 책이나 강연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또한 '원하는 것'을 달성한 이후에도 '과정'이 포함되어야 한다. '원하는 것'이 '가진 것'으로 변하면 분모가 작아지고 분자가 커지니 행복이 증가한다. 한동안 행복 방정식이 맞아 떨어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만큼의 행복이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쾌락적응 때문이다. 원하던 직장에 들어가거나 내 집을 갖게 되면 영원히 행복할 것 같지만, 실제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반복하며 살지 않는가. 

(관련 글 :  https://brunch.co.kr/@wonimini/28 ) 


우리는 행복을 다음으로 미룬다. 고등학교 때는 대학만 가면, 대학에서는 취업만 하면, 취업하면... 돌이켜 보면 오늘의 행복을 희생한다고 내일의 행복이 보장되지는 않았다.  나중으로 미룬 행복은 내 손에 들어오더라도 결코 오래 머물지 않는다. 수많은 행복 교과서에서 강조하듯 행복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Very Happy' 비율을 올리는 방법은 '가진 것'과 '원하는 것'보다 '과정'에서 발견하는 행복에 있다.


그렇다고 행복 방정식을 비판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이 방정식은 많은 사람들 마음에 남아서 '지나친 욕심 때문에 행복에서 멀어지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돌아볼 수 있게 한다. 간단한 수식이지만 이 정도면 충분한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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