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타령]

다시 시작

by 기나


“ㅇㅇ님 계획서 보니까 신나셨던데요”


계획서만 봐도 느껴지는 신남, 그게 어떤 건지 나도 안다. 그걸 알아본 동료의 눈이 예사롭지 않다. 지난여름에 도서관에 방문하신 마을회장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마을 이야기가 재미있고 의미 있어서 나만 듣기 아깝다고 생각한 것이 겨울방학 프로그램이 됐다. 애초에 ’ 알아볼 사람만 알아보라’는 식으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홍보하는 편이다. 각 관과 주민센터 등 프로그램이 넘쳐나는데 나까지 보태지 않아도 된다과 생각해서 그렇다. 거의 쇼핑 수준으로 이것저것 신청해 놓고 시간이 겹치면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하는 게 아닐까 짐작케 하는 통화를 했다. 실망하지 않았다. 예상한 건 아니지만 놀랄 일도 아니었다. 그래도 예상보다 적지 않게 관심을 보여주어서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마을 사람들 눈에 들지 않은 게 아쉬울 뿐이었다.


여행자보험 가입 같은 절차를 딱 번거로워하는 편인데 해야 하니까 했다. 화요일 일정이고, 월요일은 휴관이니까 일요일 낮에 문자 메시지 안내를 보내놨다. 일요일 야간근무자는 프로그램 관련 전화를 받은 게 없다고 했으니 다행히 취소자가 없는가 보다 했다. 프로그램 2시간 전, 두 팀이 취소했다. 프로그램 시작이 임박했을 때 남은 팀에게 전화했다. 결과적으로 세 팀이 취소했는데 날씨도 문제였고, 여행자보험료도 문제였다. 다른 일정이 생겼다고 한 팀은 양반이었다. 실망하지 않았다. 역시 예상한 건 아니지만 놀랄 일도 아니었다.


기온이 뚝 떨어진다고 해서 걱정을 했지만 알싸한 겨울 공기 기분 좋게 맡으며 마을길을 걸었다. 해설은 들어도 들어도 재미있었다. 한 시간가량 마을을 걷고 도서관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바로 가방 들고 나와 새로운 도서관으로 이동했다, 오늘.


좋아하고 존경하는 분의 팀으로 오게 됐다. 이래도 되나 싶다. 아니다 싶은 것, 틀렸다고 판단되는 것, 더 좋아질 수 있으리라고 기대되는 것들을 챙겨나가고 싶다. 다른 곳에서는 그런 다짐이 ’ 이상‘이고 ’ 욕심’이라고 느꼈다. 공감대가 충분하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이 분과 함께면 그냥 그리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별 각오 같은 것 없이도 그렇다. 아주 멀리는 가지 못하더라도 제자리는 아니다. 겨우 ‘제자리가 아닌 상태’를 원하는 건데도 함께 가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언젠가부터 그냥 나만 가자고 생각하고 살았다.


첫 출근만으로도 진일보한 기분은, 이전 도서관에서 나오면서 느낌 씁쓸함을 걷어내주었다. 이 도서관에서 나는 전혀 파이팅하지 않을 것이다. 힘 쭉 빼고 즐겁게 일할 것이다. 보호자 욕심 채우는 어린이 프로그램 대신 독서모임을 키울 것이다. 사람들에게 도서관의 방식으로 말을 걸 것이다. 도서관은 당신들이 키우는 것이라는 걸 보여줄 것이다. 그리고 고맙다고 인사할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대체로 그런 일들이다. 어떤 모습일지는 아직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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