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약 3개월간의 병원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온 지 한달이 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다른 문제로 다시 입원했다. 지난주에 소식을 들었고 지난주에 가보려고 했으나 가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퇴원하고 왔어도 아빠는 환자이고 병중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번 입원도 그냥 병중의 한 에피소드(?)라고 여겼다. 병문안을 꼭 가야하는가 스스로에게 물었는데 대답은 남편이 했다. "가봐야지."
내 마음은 아무튼 무관하다는 쪽이어서 가보지 못했어도 별 불편함이 없었는데 어제 엄마가 전화를 걸어와 그래도 한번 얼굴 보이라고 하셨다. 아빠가 섭섭해하는 것 같다는 거다. 나는 그 말이 불편했다.
아빠가 섭섭해도 되나?
그러나 잠자코 가서 조용히 다리 주물러드리다가 수형이 하교 시간쯤 나왔다. 수형이를 검도장에 데려다줘야 하는 걸 깜빡한 것이다. 수형이 전화를 받고 나오며 "내일 또 올게." 한 말을 지키려고 오늘도 점심시간 즈음 찾아갔다. 언니가 와 있었다. 신장에 생긴 염증이 혈관을 타고 온몸을 돌아다닌다는 것 같았다. 서울 병원을 가느냐 마느냐 하다가 올라가봐야 여기서처럼 항상제 맞는 것 말고는 더 할 게 없을 거라고 해서 그냥 차도를 기다려보기로 했다고. 어제 주무르다 만 다리를 잠시 주무르다가 오늘은 많이 불편하지 않으니 그만하라고해서 언니와 나왔다.
같이 밥을 먹으러 갔다. 아빠한테 가도 할 말도 없고, 추억같은 것도 없어서 정다운 것도 아니고 정신어지럽게만 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다 내 생각을 말하게 됐다. 병문안을 꼭 가야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아빠가 섭섭해하는 것 같다고 해서 어제 가봤다는 내용이었다. 아빠한테 '화'가 났던 섭섭한 날들이 너무 많다. 아빠는 그걸 알기나 하고 병원에 얼굴 안비춘다고 섭섭하다는 말을 한 걸까. 언니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냥 살아서 보호자의 자리에 있어준것만으로 감사해야할 부분이 있으니 그건 오케이. 안계셨으면 느꼈을 구멍을 모르고 살았으니 감사한 것 오케이. 그러나 나는 자주 부모님이 굉장히 차가웠다는 생각을 한다.
특별히 차갑게 행동하신 것 아니고, 따뜻하고 다정하게 행동하지 않으셔서 그렇다. 그래서 아주 많이, 자주 서운했다. 부모님께 서운하다고 말하지 못했다. 물어보지도 않으셨고, 말한다 한들 내 감정이 틀렸다고 말했을 것이다.
부모님께 무슨 일이 생겨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을 자식이라고 하지만 피차일반이다. 사는 동안 내내 부모님이 나에게 생기는 일에 크게 관심없고, 걱정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나는 나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부모님께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부모님이 주신 유산이다. 내 아이들에게 주고 싶지 않은 유산.
섭섭하게 느낄 수 있다. 섭섭하다고 말하는 건 어렵다. 그 말은 반드시 내뱉기 전에 '이 사람은 나에게 섭섭한 게 없을까' 돌아보게 하는 말이다. 내가 살아보니 그렇다. 이 사람도 분명 나에게 섭섭한 게 있었을테니 말하면 안되는건가? 그것도 아니다. '당신도 그때 섭섭했겠지' '당신도 나에게 섭섭한 일이 많겠지' 인정하는 것이 먼저 아닐까? 섭섭하다고 말하는 마음이 당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