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나
엊그제 저녁 식사 초대를 받아 나갔다 왔다. 우리 성당 신부님이 내 견진 대모님과 나를 초대하신 거였는데 부부동반 요청이 있어서 빌리도 함께였다. 나는 소를 먹지 않고, 빌리는 술을 먹지 않아서 빌리는 소만, 나는 술만 먹었다. 물론 다른 음식도 있어서 적당히 안주삼아 먹었다.
엊그제 아침에 톡이 왔었다. 돼지, 소를 먹는지 먹지 않는지 확인하는 내용이었다. 얼마 전 같이 식사할 때 피자에 올려진 하몽을 먹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한번 확인하려는 듯했다. 먹지 않지만, 준비하시는 분이 신경 쓰지 마시라고 그냥 뭐든 드셔도 좋다고 답을 보냈다. 나는 정말 괜찮았는데 생각해 보니 먹지 않는다고 미리 말했어야 했나 싶은 게, 내 몫의 돼지, 소를 준비하실 수도 있을 것 같은 거다. 그리고 먹다 보니 정말 소가 남았다. (빌리는 배가 차지 않았는데 더 굽지 않아서 아쉬웠다고 했지만)
어색했던가? 내가 말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와인까지 왕창 마셨으니 하지 않아도 될 말들을 했을까, 친한 척이라도 했을까, 다음날이 되자 생각이 많아졌다. 특별히 짓궂은 말이나, 거슬리는 행동을 한 것 같진 않은데 아무래도 불편한 자리여서 일까, 운동하는데 별 생각이 다 들어 운동도, 오디오북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 말이 원수다. 말을 아껴야 하는 이유를 제대로 체감했다. 무슨 말을 했는가 보다, 입을 연 것 자체가 문제였다. 내가 보이고 싶은 내가 아니었을까. 상대에 대한 관심과 호감을 표현하는 수준의 질문은 괜찮지 않나? 그런 것도 많이 한 것 같은데 내 이야기도 많이 했나? 뭔가 '투머치'한 느낌적인 느낌. 아무튼 총체적 후회. 그런 자리는 왜 만들어졌나.
운동 다녀와서 계속 '말을 말자'라고 되뇌며 그 전날을 떨쳐내려고 용을 쓰고 있는데 신부님이 톡을 보내셨다. 정말 내가 실수라도 했을까 싶어, 딱히 생각나는 건 없지만 심정적으로 불편함을 드렸을까 싶어 긴장하면서 열었다. 신부님이 사과하셨다. 돼지, 소를 먹지 않는 나에게 농담을 하셨는데 그런 농담도 하면 안 되었고, 존중하지 못한 것 같다고 하셨다. 나는 신부님의 그런 말씀들을 전혀 개의치 않았고 조금의 불편함도 없었는데?
내가 돼지, 소들을 먹지 않는 이유를 물으시길래 먹는 사람들이 듣기 불편할 수도 있는 말을 했던 게 그때 바로 생각이 났다.
돼지, 소들을 먹지 않는 내가 비난받을 이유 없고, 먹는 사람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먹지 않는다고 비난한 건 엄마뿐이다. 어느 누구도 속으로 별 생각을 할지언정 내 선택을 나무라거나 걱정하거나 한적 없다. 요즘 다 그런가 보다 했다. 신부님 정도의 반응도 거기에 속하기 때문에 정말 별생각이 없었다.
그런 내용에, 마음 쓰지 않으셔도 된다고 답을 보냈다. 말한 사람은 진심이었는데 듣는 자가 너무 천진해서 진심을 알아듣지 못한 결과일까 뒤늦게 물음표를 가져본다. 어쩌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