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나 읽자
도서관 서가를 훑다가 <살 만한 삶과 살 만하지 않은 삶>이라는 제목을 만나게 됐다. 첫째, 제목에 꽂혀서 펼쳤고 썩 읽히지 않았으나 둘째, '살 만한 삶과 살 만하지 않은 삶'이라는 반복되는 구문에서 벗어날 수 없어서 읽었고, 셋째, 읽다 보니 처음보다 읽혀서 읽었다. (읽기 힘든 책을 만나면 항상 '익숙하지 않을 뿐'이라는 자기 주문으로 극복하는 편. 도무지 나아갈 수가 없다는 판단이 들면 소리 내어 읽는다.
(61p. 비폭력의 하나라고 주장하는 윤리적 의무)
(90p. 보름스 : 시몬 베유는 (불운 또는 고통)이 (증오 또는 혐오)의 반응을 만든다고 했어요. 우리는 타인의 살 만하지 않은 삶 앞에서 거부감을 느낍니다.)
(99p. 우리 중 누구라도 그러한 근본적 불평등이 확정 또는 편향되어 재생산되는 이 세계의 모습에 동의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삶의 방식을 보존하려 하고, 그렇게 보존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 한편 이들이 외면하는 타인이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99p. 자신의 "생존"을 위해 불평등의 심화에 의지하는 것이죠. 그러니 이것은 삶의 충동일까요, 아니면 죽음 충동일까요? 바로 선생님이 설명하신 양가성, 즉 삶-죽음의 충동이 작동하는 순간입니다. )
(131p. 나는 내 삶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에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버틀러 : 네 그래서 삶은 소유와 재산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131p. 우리가 삶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나의 것이든, 우리의 것이든, 다른 누구의 것이든 죽음과 파괴를 한쪽으로 밀어둘 수는 없습니다. )
(60p. 제가 만다면, 삶 만한 삶의 상호주체적 조건은 타인의 삶에 대한 나의 일종의 의무를 암시하며, 그 타인 역시 나에게 의무를 지고 있습니다. 이 의무는 개인을 정의하고, 개인의 주장을 탈중심화하는 사회적 관계에서 비롯됩니다. 그런 조건을 명시한 계약서가 없더라도 나의 삶은 당신의 삶과 묶여 있습니다. )
(59p. 주체를 상호주체성으로 언급해야 하는 이유는 당신의 삶이 살 만하지 않고서는, 그리고 수많은 삶들이 살 만하지 않고서는 나의 삶도 살 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공통되게 서로에게 의존하고 있고 공통된 삶을 위해서 사회구조에 의존하기 때문이지요. 나라는 주체는 유아기만이 아니라 평생을 돌봄에 의존하며, 여기서의 "돌봄"은 모성적 특성이라기보다는 살 만한 삶을 위한 사회적이고 제도적..)
(51p. 살 만하지 않은 삶을 기술하는 것이 살 만하지 않은 삶에 대한 증언이라고 정말로 생각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는 부분에 주로 밑줄을 친 것 같다. 엄밀하게는 플래그 태그를 붙였다. 발췌를 보면 이런 말들이 오가는 까닭과 결론을 알 것 같다. 살 만한 삶을 사는 사람과 살 만하지 않은 삶을 사는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든 상호 의존하고 있다는 것, 그런데 살 만한 삶의 유지하기 위해 살 만하지 않은 삶을 외면하여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것, 그리고 결론을 이렇게 내버려도 좋을지 모르겠는데, 그것은 삶을 사는 사람이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라는 것.
답답한 것은 이런 논리들이, 살 만하지 않은 삶을 외면하는 사람에게 그러지 말자고 설득하는데 힘이 되어줄 수 있을까 하는 의문 때문이다. 바로 옆의 빌리에게도 먹히지 않을 것 같아 읽고 또 읽는다. 비난하지 않고 다저정하게, 뒷걸음칠 수 없도록 날카롭게, 빌리가 타인과 연결된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진다는 느낌을 꼭 한번 느끼도록, 그래서 다시 그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도록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