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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원 Jul 20. 2016

사드와 참외 농활의 추억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랐다. 그래도 시골에 대한 아련한 기억들이 몇 가지 있다. 대학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 매년 여름 갔던 경북 성주 농촌활동도 그 중 하나다. 한 번 가면 일주일에서 열흘 쯤 지내다 왔는데, 주로 참외 따는 일을 했다. 국내에서 나는 참외의 70%는 성주산이다. 전국 제1의 참외생산지다.


난생 처음 농사일을 해봤다. 농사의 하루는 오전 4시30분에 시작된다. 여름엔 날이 뜨거워지기 전에 오전 일을 마쳐야 해서다. 졸린 눈을 부비며 동기와 선후배를 깨운다. 보통은 한참 자고 있을 시각인데 일어나려니 다들 쉽지 않다. 긴팔 남방에 몸빼 바지를 입은 다음 선크림을 바르고 밀짚모자를 쓰면 준비 완료다. 우리는 마을회관 입구에 일렬종대로 앉아 대기했다. 참외밭으로 데려다 줄 트럭을 기다리는 거였다. 깜깜한 새벽 계단에서 서로의 몸에 기대 꾸벅꾸벅 졸았던 기억이 난다.


왼쪽은 마을잔치 초대장 만드는 모습, 오른쪽은 낮잠시간. 서로의 몸을 베고 잤다. 힘들 때도 벽에 기대는 대신 서로 등을 맞대고 기대고 있었다. 그게 농활의 규칙이었다. 너무 귀여운 얼굴들이지만 본인들은 원치 않을 수 있을 것 같아 모자이크를..


밭에 가면 잡초도 뽑고, 참외와 방울토마토, 수박도 따고 비닐하우스 걷는 일도 했다. 일을 하고 있으면 지역주민들이 새참을 준비해 주셨다. 서울 올라오기 전날에는 마을회관을 내어준 지역주민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잔치도 열었다. 동기들은 삼계탕을 준비하고 나는 잡채를 맡았다. 잡채 50인분을 만들어 본 건 난생처음이었고, 그런 일은 그후에도 없었다. 도시에선 미처 경험하기 힘든 일들이었다.


한동안 잊고 있던 농활의 추억을 꺼내게 된 건 요즘 성주가 자주 신문지상에 오르내려서다. 지난 13일 정부는 미국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인 사드 배치 지역을 성주로 발표했다. 사전협의 없는 일방적인 통보에 성주군민들은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사드 레이더의 전자파 때문에 참외농사에도 차질이 생길 것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국방부와 일부 언론에선 ‘전자파 참외’ 괴담으로 치부하며 잠재우려는 모양새다.


기습적인 사드 배치지역 발표는 영리한 선택인 듯 보인다. 처음엔 사드를 한국에 둬야 하는지가 논점이었다. 그런데 일단 성주라고 발표하고, 지역주민들이 반대를 하니 성주 대 비(非) 성주로 싸움의 본질이 바뀌었다. 당초 사드에 찬성했던 군수가 성주에 배치하는 것은 반대한다고 나서자 전형적인 님비현상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주민 4만5000명에 불과한 성주로서는 애초에 이길 수가 없는 싸움이다. 언제가 됐든 사드는 성주에 들어설 듯 보인다. 애꿎은 군민들만 안타깝게 됐다. 달콤한 참외가 넘실거리던 성주의 풍경은 어떻게 바뀌어갈까. 추억이 깃든 그 동네가 예전의 모습을 간직할 수 있을까. 안타까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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