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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원 Nov 09. 2017

퇴근길 낯선이 앞에서 뻥하고 터져버린 울음

예상보다 일찍 지하철역에 도착해 맥도날드에 갔다. 맥모닝을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회사의 다른 팀 과장이다. 오며 가며 인사만 했을 뿐 대화해본 적은 거의 없는 사람이다. "아침 드시러 오셨나봐요" 예의상 몇 마디를 주고받고, 각자 아침을 먹고 출근했다.


그런 날이 있다. 평소와 똑같이 일을 하는데 갑자기 회의가 드는 날. 현실을 자각하는 날.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내가 말해도 절대 바꿀 수 없는 것. 옳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입밖에 낼 수 없는 것. 대체 가능한 부품이 된 기분. 조금 더 유능한 부품과 그렇지 않은 부품이 있을 뿐. 회식 날이라 다들 떠났지만 혼자 냉기가 감도는 사무실에서 잔업을 했다. 불을 끄고 퇴근하는데 발걸음이 무겁다. 나는 왜 여기에 있는 걸까, 다른 회사에 간다고 달라질 일도 아닌 것 같다. 덧없다. 터벅터벅, 느릿느릿 골목길을 걸었다.


뒤에서 남자 구두 소리가 들린다.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내 옆에서 멈춘다. "무슨 일 있어요?" 아침에 만났던 그 과장이다. 내가 걸어가는 걸 보니 뒤에서 봐도 무슨 일 있는 사람처럼 보인단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속상할 때 누가 말을 걸면 눈물이 나곤 했다. 꾹 참고 있던 게 펑하고 터져버리는 거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 앞에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는 생각보다 침착하게 나를 달랜다. "회사 일 때문에 그래요? 누가 뭐라고 했어요?" 대답도 못하고 고개만 가로저었다. "회사 일이 힘든 것도 여러 종류인데.. 뭔진 모르겠지만 자괴감이 드는 것만 아니면 괜찮아요" 손수건이 내 앞에 나타났다. 귀여운 무늬가 그려진 가제수건이다. 아기 아빤가보다. 눈물을 훔치고 돌려주며 연신 고맙다고 했다. 그는 다시 빠른 걸음으로 멀어져 갔다. 조금 위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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