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원 Feb 21. 2019

사무실을 옮기고 달라진 10가지

관리의 왕국에 입성하였습니다


1. 출근길

6시 반에 집에서 나왔다. 집에서 서울시내까지 가는 고속도로는 아주 원활하다. 월요일치고도 나쁘지 않다. 출근시간이 30분 앞당겨졌는데, 교통상황이 나아져 좋다. 지하철 내부 상황도 한결 낫다. 역에 내리니 7시 35분. 회사 근처 지하철역은 이 시각에도 사람이 꽤 많다. 출근 시간이 빠른 직장인들이 많은 것 같다. 회사 가는 길에 맥도날드가 있어 들렀다. 캐셔를 아무리 찾아도 없다. 다른 손님들을 보니 키오스크에서 주문 중이다. 아-.. 무인화여. 젊은이답게 척척 주문을 해내려 했건만 생각보다 버벅거리게 된다. 예전엔 맥모닝세트 따뜻한 커피로 먹고 갈게요 한마디면 됐는데.. 컴퓨터를 잘 다루는 젊은이도 헤매는데 어르신들은 오죽할까 싶다. 땅값이 비싼 동네라 그런지 확실히 무인매장이 많이 보인다.


2. 음료

회사 카페테리아에서 전 음료 1200원이다. 오늘 하루에만 세 번이나 갔다. 점심 먹고 한 번 가고, 미팅 때문에 두 번 더 갔다. 아메리카노는 그저 그런데 시그니처 커피가 아주 맛있다. 연유라떼라고 해야 하나.. 자주 사 먹게 될 듯. 음료값은 현금이나 카드로 결제할 수 없고 사원증을 태그해야 한다. 그럼 이번 달 월급에서 자동 공제된다. 하루 3잔을 마셔도 바깥에서 마시는 커피 한잔 값이니 꽤 아낄 수 있을 것 같다.


3. 식사

구내식당은 아닌데 바로 옆 건물에 제휴된 급식업체가 있다. 정가가 6500원인데 3500원은 회사 지원, 3000원은 본인부담이다. 큰 기대 않았는데 생각보다 아주 맛있다!!!! 무엇보다 좋은 건, 구내식당답지 않게 자극적인 맛이다. 첫 직장에도 구내식당이 있었는데 몸에 좋은 음식을 제공하려다 보니 너무 싱거웠다. 그래서 몇 번 먹다 질려 바깥으로 나돌기 시작했다. 여긴 그렇지 않다. 짜고 맵고.. 결론적으로 말하면 맛있다. 김치를 포함해 반찬 8종에 국까지 하면 9종(국은 거의 안 먹지만.)이다. 요구르트나 작은 빵 같은 것도 주고. 3천원에 누릴 수 있는 호화로운 식사다. 이사 온 이후로 외식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


4. 생각지 못했던 문제 : 엘리베이터

2층에 지낼 땐 몰랐는데 11층으로 오니 엘리베이터 문제가 심각하다. 출근 때는 괜찮은 편이다. 이 건물을 우리 그룹사의 2개 계열사가 같이 쓰고 있는데 출근시간에 다르다. 우리 회사가 1시간 빨라서 사람이 많긴 하지만 못 견딜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점심시간은 겹치니 그야말로 지옥이다. 우리 회사에서도 부서별로 3개 조로 나눠 점심시간을 운영하고 있긴 하지만 붐빈다. 점심시간마다 11층에서 계단을 이용해 내려오는데 고역이다. 계단 오르기는 운동이라도 되지, 내려오는 건 무릎에 무리가 간다. 빙글빙글 11개 층을 내려오면 어지럽다. 그래도 뭐 어쩌겠나, 방법이 없다.


5. 자리 배치

직장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는데.. 원래는 팀장과 꽤 멀리 있어서 퇴근시간에 몰래 도망가곤 했는데 이젠 절대 불가다. 숨소리마저 들리는 가까운 자리에 배치됐다. 내 모니터가 훤히 들여다 보이는 것은 물론이다. 업무에 무척이나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딴짓할 엄두조차 못 낸다. 그래도 좋은 건 내 시야에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거다. 양옆, 앞쪽으로 아주 높은 파티션이 있다. 독서실 같다. 사람들 오가는 게 보이면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마련인데, 아무도 안 보이니 그냥 내 일만 하면 된다.


6. 방화벽 및 업무 제한

완벽하게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다. 카톡, 네이트온, 텔레그램,.. 모든 메신저가 차단됐다. 회사 내부에서 만든 모든 파일은 암호화되어, 외부에서 열어볼 수 없다. 얼마 전 바뀐 취업규칙에 따르면 회사에서 직원들의 사내 이메일을 열람할 수 있는 권한도 생겼다. 회사 이메일로 허튼짓하다 걸리면 가만 안 둔다는 얘기.. USB나 외장하드에 파일을 저장할 수도 없다. 클라우드 업로드가 안 되는 것은 물론.. 아무리 그래도 사내 메신저에서도 파일 송수신 안 되는 건 너무 한 것.. 모바일 그룹웨어에서 메일 열람 안 되는 것도 너무한 것.. 보안과 편의는 양날의 검 같은 존재. 적응할 수밖에.


7. 복장 제한 및 규율

내가 주변에서 본 그 어느 회사보다 복장에 대한 규제가 까다롭다. 세미 정장을 권장하는데, 안 되는 것들을 아주 세세하게 나열해 놓았다. 운동화 안됨, 백팩 안됨, 롱부츠 안됨, 뒤꿈치가 뚫린 구두(블로퍼) 안됨, 과도한 액세서리 안됨, ‘정치적이거나 성적인 문구가 적힌 티셔츠’ 안됨. 슬리퍼 신고 팀 내 이동 안됨. 새로 온 직원 몇 명이 슬리퍼를 신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곧바로 인사팀에서 메일 왔다. 품위를 지키라고. 그리고 팀장들에게는 복무규정 교육을 시킨 뒤, 교육한 흔적을 남겨 회신하라고 적혀있었다. 아.. 관리력, 최고다 정말.


8. 패밀리데이

매월 마지막 주를 제외한 수요일은 패밀리데이다. 퇴근시간이 되면 빨리 집에 가서 패밀리와 함께 시간을 보내라는 방송이 나온다. 예전엔 불도 껐다고 하는데, 요즘은 불까지 끄진 않는다. 업무가 남아서 피치 못하게 일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어서인가.. 패밀리데이에는 복장도 아주 약간의 이탈이 허용된다. 물론 츄리닝이나 미니스커트 같은 건 안 되지만.. 야근을 권장하지 않는 문화는 정말로 좋다. 우리 옆팀에 자주 야근을 하는 직원이 있었는데 그 팀 팀장은 또 인사팀의 메일을 받아야 했다. 그 직원은 대체 무슨 일을 하는 것이냐, 업무를 다른 직원과 나누라고. 팀장들이야 인사팀의 이런 개입이 귀찮겠지만 직원 입장에선 좋은 일이다.


9. 집중근무시간

집중근무시간이라는 게 있다. 이 시간에 돌아다니다 걸리면 경고 먹는다. 화장실도 웬만해선 못 가게 한다.(너무해) 단, 흡연자는 그 집중근무시간 중에서도 일정한 시간에 딱 10분 이내로 담배를 피우고 올 수 있다. 10분 이상 머물면 혼난다고 한다. 내가 회사에 다니는 건지, 학교에 다니는 건지 원. 1분이라도 지각하면 자동으로 팀장한테 메일이 간다. 덕분에 지각하는 사람들이 없어졌다. 나 역시도.


10. 총평

사무실 이전으로 이렇게 많은 것들이 달라질 줄 몰랐다. 큰 기대를 않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만족도가 아주 높다. 처음엔 이런 규율들이 답답했는데, 일단 받아들이고 지키니 편하다. 단, 이런 건 있는 것 같다. 이렇게 1분 1초 원리원칙을 중시하니, 나도 쓸데없이 더 많은 일을 해서 회사에 봉사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든다. 주어진 시간만큼 일하고, 미련 없이 퇴근한다. 회사가 제시한 의무를 충분히 이행했으니 내 권리를 응당한 누려야겠다는 생각이다. 뭐,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지만.




이전 09화 서초동 생활 4년 청산, 이제 삼성동으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