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원 Nov 01. 2020

제아무리 미친놈도 큰 회사 가면 순한 양이 된다

중소기업에 다니면서 겪게 되는 설움 중 하나는 미친놈을 만날 확률이 아주 높다는 것이다. 회사에서 끔찍한 사람과 함께 일하게 되면 둘 중 하나는 그만두는 수밖에 없는데, 상대가 상사라면 높은 확률로 내가 그만두게 된다. 작은 조직에서는 문제를 일으키는 상사가 윗분들과 가까운 관계라면 내가 아무리 부당한 일을 당했다 할지라도 어려움을 호소할 수 있는 곳이 없다. 처음에는 이것이 인성의 문제인 줄 알았는데, 여러 직장을 거치다 보니 이들이 활개를 치는 이유는 시스템의 부재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됐다. 


대기업에도 이상한 사람들이 정말 많다. 하지만 그들을 강력하게 제재할 수 있는 규칙이 존재하기에 함부로 하지 못 한다. 특히나 2019년 7월부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라는 게 생기면서 상사가 부하직원의 인격을 말살하는 폭언을 하거나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면 정식으로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루트가 생겼다. 안타까운 건 이 법이 5인 미만 사업장은 해당사항이 없다. 신고 방법도 기업 규모에 따라 다르다. 쉽게 말하면 회사 규모가 클수록 괴롭힘 신고를 접수한 회사가 대처해야 할 부담이 커진다. 정식으로 신고가 접수되었음에도 회사 측에서 묵인하거나 적당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경우 곤란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중견기업으로 이직을 했는데 회사의 사업 분할로 중소기업 직원이 되었고, 1년 만에 다시 회사가 사업을 철수하면서 모기업인 대기업에 흡수 합병되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두 번이나 소속이 바뀌게 된 셈이다. 중소기업 시절 우리 회사에는 아주 특이한 상사 두 명이 있었다. 일에 대한 의욕은 넘치지만 부하직원들에게 폭언을 하고,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들이 소속이 바뀌면서 어떤 대응을 하는지 달라지는 것을 보고 아, 시스템이 인성을 만드는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인성을 만드는 게 아니라 괴팍한 성질을 참을 수 있게 만드는 제재 수단이 된다는 사실이다.


직장생활이란.. 퇴근길 신도림역 환승구간을 견뎌야만 하는 것.


물건 부수고 소리 지르고 욕하는 1번 상사


1번 상사. 아주 악명이 높은 사람이다. 소리를 지르고, 자기 성질에 못 이겨 물건을 때려 부수는 못된 습관이 있다. 부하 직원이 입사하면 3개월도 안 되어서 그만둔다. 한 팀원은 퇴사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다. 물론 1번 상사의 윗사람과 대표도 그의 악행을 널리 알고 있었지만 미처 어찌하지 못했다. 그때는 괴롭힘 금지법 같은 게 없기도 했고, 본인보다 상사들에게는 끔찍하게 잘하는 타입이었기 때문이다. 관리자들 입장에서야 갓 입사한 신입들이 하소연하는 것보다, 적당하게 애들을 관리해주고 악역을 담당해주는 1번 상사 같은 존재가 필요했을 수 있다.


나는 그 1번 상사와 중견기업-중소기업-대기업을 함께 움직였다. 내 직속 상사는 아니었고, 가끔 프로젝트가 겹치면 같이 일을 하는 정도였다. 대기업에 와서 함께 일하며 부딪힌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럴 때마다 혼잣말인 척 욕을 했다. 처음 몇 번은 못 들은 척했다. 같이 프로젝트를 하는 동안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메모장에 번호를 매기며 기록을 해 놨다. 내가 이 인간 때문에 이렇게 스트레스받는 일이 10번이 되면 무슨 짓이든 해야겠다고. 사내에 신고를 하든, 내가 회사를 관두든 말이다. 


10번도 많았다. 2번까지 채우고 나서 어느 날엔가 내가 뻥 터져버렸다. 전화 통화 중에 혼잣말인 척하며 내게 욕을 했다. "아오 씨, 왜 지랄이야.."라며. 나는 뭐 딱히 생각할 시간도 없이 반사적으로 받아쳤다. "욕하지 마세요." 그러더니 당황해서 "내가 언제 욕했어..? 나는 그냥 혼잣말한 건데."라고 하더라. "제가 지금 듣고 있잖아요"라고 했다. 자긴 욕한 게 아니라고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더니, 얼마 안 되어서 내게 사과를 했다. "그래요,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요"라고. 그 이후로 그 상사는 내게 욕을 하거나 함부로 말하지 않았다. 아주 차갑게 대하기는 했지만, 적어도 눈에 띄게 문제가 될만한 행동은 안 했다. 그것만으로도 성공이다.


반말은 기본, 성희롱 일삼던 2번 상사


2번 상사 이야기. 1번 상사랑 비슷한 타입이다. 말을 아주 함부로 하는데.. 실언을 정말 많이 하는 타입이다. 일단 대부분의 직원들에게 반말은 기본이다. 나는 회사 생활하면서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처음 봤다. 친한 사이도 아닌데 대뜸 '혜원아'라고 부른다. 저녁에 잔업하고 있으면 '맥주 한잔 하러 가자'라고 한다. (나뿐만 아니라, 여직원들한테만) 가끔 보면 그런 사람 있지 않나. 뇌를 거치지 않고 배설하듯 말을 내뱉는 사람. 2번 상사는 그런 타입이다. 


성희롱도 자주 해서 같이 일하던 팀원은 2번 상사의 말을 녹음해놓기까지 했었다.(그 팀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좋은 직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2번 상사는 한 때 내 팀장이었는데,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회식은 내 인생 가장 끔찍했던 회식 날로 손꼽힌다. 2번 상사만 남자, 팀원 5명 모두 여자였다. 그는 술이 좀 들어가자 한 과장님에게 "참 괜찮은 여자다. 내가 결혼만 안 했으면 어떻게.."라고 했다. 그리고 비교적 어린 우리 팀원들한테는 "남자랑 함부로 자지 마라. 그럼 남자들이 질려한다"는 밑도 끝도 없는 훈계를 했고, 본인은 지금의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에도 6명의 여자랑 자봤다고 자랑했다. 친근한 척하면 은근하게 어깨나 허벅지를 터치하는 것은 기본이었고.. 아, 끔찍했다. 막판에는 고깃집에서 큰 소리로 노래를 두 곡이나 완창 해서 우리 모두 도망치듯 뛰쳐나오면서 회식은 끝이 났다.


그 상사도 중소기업 시절부터 함께 흘러온 직원 중 한 명이다. 한 날은 메신저로 이야기를 하던 중 '또' 욕을 하길래 이 사람한테 "욕하지 마세요"라고 했다. 이런 사람들은 왜 이렇게 레퍼토리가 똑같은지 "너한테 욕한 거 아닌데"라고 맞받아치더라. 그래서 "지금 저랑 대화하고 계시잖아요"라고 했더니 "아.. 그랬다면 미안해요"라고 했다. 그 이후론 내 이름도 안 부르고, 반말도 안 한다. 


1번 상사와 2번 상사의 일을 겪으면서 여러 가지 오묘한 감정이 들었다. 가장 처음 든 감정은 아주 작은 일이지만 해냈다는 안도감이었다. 몇 년간 스트레스받던 일인데 이렇게 말해버리고 나니 정말 후련하고 앞으로는 나아질 것 같아 좋았다. 그러나 또 한 번으로는 좀 허무하다는 생각도 했다. 뭐야, 이렇게 쉬운 거였어? 그동안 나 왜 그렇게 스트레스받으며 참고만 있었지 라는 원망이 조금 들었다. 이런 건 줄 알았으면 진작에 이야기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을 걸. 


그러나 또 한 편으로는 그렇다. 내가 그들에게 문제제기를 할 수 있었던 건 회사라는 든든한 뒷 배를 믿었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는 징계 제도가 참으로 잘 되어 있다. 명백한 폭언을 하는 상사들을 문제 삼을 수 있고, 내가 문제 삼으면 그 상사들은 회사 생활이 아주 피곤해질 거다. 그들도 그 사실을 너무 잘 알기에 내게 사과를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과거 화려했던 악행들을 돌이켜보면 그렇다.) 규제는 직원들을 피곤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보호해주는 수단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제니의 첫번째 책이 나왔습니다! 

마케팅 부서 발령을 받았습니다. 5년간 기자로 일했기에 홍보 업무에는 자신이 있었고, 마케팅이라고 뭐 다를 게 있겠나 싶었습니다. 오만한 생각이었습니다. 누구나 마케팅을 말하지만. 진짜 체계적으로 잘 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며, 매우 전문적인 분야입니다. 5년차 마케터인 제가 감히 '전문가'라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 여러분과 같은 위치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던 과정들을 책에 담아 보았습니다. 너무 기본적이라 주변에 물어보기도 부끄럽고, 인터넷에 검색해 보아도 속 시원히 해결되지 않았던 부분들을 최대한 모아서 작성했습니다.

https://bit.ly/topgimil_mkt


이전 10화 사무실을 옮기고 달라진 10가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