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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원 Aug 26. 2019

덜 열심히 살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아무래도 번아웃 증후군인 것 같다. 퇴근할 때면 늘 녹초가 되고 피곤하고 기력이 없다. 항상 시간에 쫓기고, 마감에 시달린다. 무언가를 하고 있는 와중에 새로운 일이 주어지고 새 일을 끝마치기 전에 또 다른 일이 생긴다.

오전에는 비교적 내가 정한 스케줄에 따라 일을 처리할 수 있지만 오후가 되면 회의가 많다.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회의를 하다 보면 어느덧 퇴근할 시간. 회의에서 나온 내용들에 대한 후속조치를 해야 한다. 내일 하고 싶지만 내일은 또 내일의 일이 있다. 일이 밀리는 게 싫어 급하게 처리를 한다.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하다 보니 잊어버리는 경우도 많다. 최대한 놓치지 않으려 기록을 해놓고, 일부러 메일로 보내 흔적을 남기지만 그래도 구멍이 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무척 화가 난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였다. 새로 해보는 일이 재미있었고, 나름의 보람도 있었다. 팀장이 나를 믿고 일을 많이 주니 잘 해내야 한다는 책임감과 부담감이 동시에 있었다. 힘들면 좀 나눠서 하라고 했지만 혼자서도 할 수 있다고 고집한 건 나였다. 처음엔 감당 가능한 수준이었지만 여러 가지가 겹치다 보니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이제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 때다.

내가 어려움에 처해있다고 말하고 도움을 구하는 건 용기 있는 행동이다. 자존감이 높으면 내 부족함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나는 그 용기가 부족했던 것 같다.

퇴근하고 나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집안일이 보여도 애써 무시하고 누워있는다. 평소에 힘들다고 투덜대면 핀잔을 주던 남편도 이제 걱정을 한다. 많이 힘들어 보인다며. 이유도 없이 울고만 싶다. 좀 내려놓고 편안해지고 싶다. 긴장감이 높은 것 같다.

밤낮없이, 주말 없이 일하는 건 아니다. 8시에 출근해서 4시간을 일하고, 1시간의 휴게시간 후 다시 4시간을 일한다. 큰일이 없으면 5시에 맞춰 퇴근할 때도 많다. 칼퇴하고 집에 오면 6시밖에 안 된다. 투잡이라도 뛸 수 있을 만큼 저녁에 여유가 있지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그냥 멍하니 누워서 시간을 보내고 티비나 보다 잠이 든다. 운동도 하고 여가생활도 하고 알차게 보내고 싶지만 별로 그럴 의지가 안 생긴다.

상대적인 힘듦이다. 예전에 비하면 여러 가지 여건들이 좋아졌지만 퇴근 후가 행복하지 않다. 일을 할수록 성장한다는 보람도 있지만, 소모된다는 느낌이 강하다. 지금 준비 중인 2개의 프로젝트가 9월에 무사히 런칭하고 나면 좀 괜찮아질 것도 같은데, 지금 당장 견디기 힘들다. 단 몇 주만 버티면 된다는 거 알면서도 위로가 잘 안 된다. 그러니 내가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인지 자책하게 된다

조금 덜 열심히 살아야겠다. 조금 덜 열심히 일하기 위해 노력해봐야겠다.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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