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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원 Jan 16. 2019

서초동 생활 4년 청산, 이제 삼성동으로

안녕, 서초3동.

첫 직장 정리해고 후 4개월을 쉬고 서초동에 두번째 둥지를 틀었다. 강남 치곤 외곽이긴 하지만 대로변 평지에 사무실이 있는 게 좋았다. 이전 직장은 언덕 위에 있었는데 아침마다 언덕을 오르는 게 너무 고되었기 때문..

서초동 첫 출근하던 날이 생각난다. 차가운 바람이 코끝을 스쳤는데 그게 참 좋았다. 10월이었다. 실업급여인 생활을 마치고 다시 임금노동자가 되었으니 의복 정비에 나섰다. 유니클로에 가서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자켓 두벌과 7부바지 한벌을 샀다. 발목양말에 단화를 신고, 백팩을 매고, 새옷을 입고 출근을 했다. 대로변을 뚜벅뚜벅 걷는데 그렇게 신이날 수 없었다. 당시만 해도 회사가 강남에 있다는 점도 설렘으로 다가왔다. 다른 직장인들 틈에서, 나도 어엿하게 회사를 다니며 다시 1인분의 삶을 산다는 것. 사회의 일원이 된다는 것. 어떤 식으로든 내가 사회에 기여를 할 수 있다는 것. 이론적으로 보자면 노동이란 참, 신성한 일이다.그 회사를 2년간 다니며 기억나는 출근길이 거의 없건만, 첫 출근의 그 기억만은 또렷하다. 모든 처음은 소중하다.


서초3동에서 3번의 겨울을 보냈다.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도 서초3동. 공교롭게도 걸어서 10분 거리의 회사로 이직을 하게 됐다. 덕분에 이전 회사에서 자주 가던 식당과 카페도 갈 수 있었다. 자주는 아니어도 추억이 있는 곳에 생각날 때마다 갈 수 있는 건 참 좋은 일이다. 여유가 있는 날엔 일부러 그쪽 길로 퇴근을 하며 단골 가게에 가곤 했다.

9 to 6로 회사를 다니다 보면 집보다 직장을 반경으로 모든 생활이 이뤄진다. 회사 앞 편의점 사장님과는 절친이 되고, 회사 앞 내과 원장님은 주치의가 된다. 자주 가는 식당, 카페, 우체국, 은행 .. 각종 업무도 출근한 뒤 점심시간에 짬을 내서 처리하기에 직장 주변의 환경은 참 중요하다.

이 회사로 이직을 하면서 심리적인 거부감이 적었던 건 생활반경이 달라지지 않은 영향도 있었다. 근무 여건은 완전히 달라졌지만 어쨌든 익숙한 동네였고, 보고싶으면 찾아갈 수 있는 예전 직장 동료들이 있었다.

4년 간의 서초동 생활을 마치고 다른 곳으로 떠난다. 그리워질 가게들이 많다. 사무실을 이전하기 전에 생각나는 곳들은 가보려고 한다. 이번에 여길 떠나고 나면 올 일이 거의 없을 것 같아서다.

여기는 일반적인 오피스단지가 아니다. 고급 주택과 학교 인근이라 좋게 말하면 조용하고 나쁘게 말하면 먹고 즐길거리가 없다. 이곳이 일상일 때는 지긋지긋한 순간들도 많았건만, 떠나려 하니 아쉬움이 남는 골목골목이 있다. 아침 일찍 나온 날엔 일부러 한정거장을 더 가 내가 좋아하는 카페에서 아침을 먹고 내가 좋아하는 골목길을 통해 출근하곤 했다.

공간이란 참 신기하다. 공간에는 추억이 묻어있다. 공간은 자연스레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새로운 공간, 새로운 장소에서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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