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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원 Aug 13. 2018

결혼식에 대한 유일한 로망

웨딩파티 준비기 - 1

잊고 있던 사실 한 가지. 내가 결혼에 대해 갖고있던 유일한 로망은 단 하나, 야외 결혼식이었다. 그러나 그 로망은 피워보지 못한채 고이 접어야 했다. 야외에서 결혼을 하면 비가 올 수도 있고, 하객들이 불편하다는 등 부모님의 반대가 있었다. 여러가지 이유들이 귀결되는 문장은 하나였다. "남들 하는대로 해라" 거기서부터 기세가 꺾였다.


결혼 준비를 하며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도 없다고 느껴졌다. 지금 돌이켜보면 좀 더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 투쟁을 해볼 수도 있었을 것도 같지만 다시 돌아가도 역시나 아닐 것 같다. 결정해야 할 일이 수십가지가 넘는데, 하나하나 걸고 넘어지기 시작하면 원활하게 진행할 수가 없었다. 싸우고 싶은 의지도 없었다. 보다 현실적으로 얘기하자면, 신혼집을 마련하는데 부모님의 경제력이 절대적으로 작용했으므로 군말 않고 따라야한다는 암묵적인 룰이 있었다. 부모님의 도움으로 시작한 우리는 그들을 만족시켜드려야했다. 아들 딸을 이렇게 번듯하게 키워 새 가정을 꾸리게 됐음을 선포해야 했다. 부모님들의 행사였고,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들은 거기서 훌륭하게 기능해주면 되는 연기자였다. 


결혼식을 3개월쯤 앞둔 어느날. 밤 11시쯤 남자친구와 집 앞에 새로 생긴 치킨집에 갔다. 그무렵 나는 모든 것에 지치고 패배주의에 찌들어 있었다. 청첩장 디자인조차 내뜻대로 할 수 없다는 생각에 퉁퉁거렸다. 그맘때 내가 가장 많이 한 말은 "난 상관없어. 부모님 원하시는대로 하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는데 뭐"였다. 그러자 남자친구가 물었다. "네가 꿈꿨던 결혼식은 뭐였는데?"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에서 나오기에는 너무 늦은 질문 같았지만, 그랬다. 그제야 나는 다시 떠올려보기 시작했다. 내가 원하는 결혼식은 어떤 모습이었지? 파도처럼 휩쓸려 어느새 식장 예약에 신혼여행까지 모두 마친 상태긴 했지만. 


나는 야외 결혼식이 하고 싶었다. 영화 <어바웃타임>처럼 비가 와도 좋으니 야외에서 친구들과 하하호호 웃으며 이야기도 나누고, 잔디밭에서 사진도 찍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술도 곁들이고 싶었다. 순결을 상징하는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인형처럼 신부대기실에 앉아 사진을 찍히고, "평생 남편만을 사랑하겠느냐"는 주례의 물음에 조신하게 들릴듯말듯한 목소리로 "예"라고 대답하고 결혼식장을 찾은 친구들과는 두마디 이상 나누기 힘든 결혼식이 아니라. 돌이키기엔 늦었다. 그냥 그런 결혼식을 꿈꿨었다-라고 과거형으로 답했다. 그는 뜻밖의 제안을 했다. "한 번 해보자" 결혼식은 아니지만 원하는 사람들을 초대해서 내가 그렇게 원했다는 야외 결혼식 비슷한 파티를 열어보자는 거였다. 지금까지 한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적이 없었다. 머리를 얻어맞은듯 기분 좋은 충격이 들었고, 설렘에 가슴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내가 꿈꿔온 무언가를 시도해볼 수 있다는 생각에. 이유 모를 눈물이 펑펑 났다. 그날 치킨집에서의 대화는 지금까지도 내게는 감격적인 순간이다. 진짜 웨딩파티를 한 그날보다 더.


그리하여 성사된 웨딩파티 중의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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