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건물 지하에 있는 모닝글로리에서 편지지와 봉투 4개를 샀다. 사무실로 올라와 엑셀을 켜고 편지를 썼다. 수신인은 본부장과 내가 했던 프로젝트의 담당 파트너 3명이다. 별로 할 말이 없을 줄 알았는데 막상 쓰다 보니 이런저런 이야기가 따라왔다. 육아휴직 중 면접을 보며 두근거렸던 순간부터 함께 프로젝트를 하며 고생한 것, 그리고 워킹맘이라는 특수한 상황에도 나를 믿고 기회를 주어서 감사하는 메시지까지. 엑셀에 글자수를 맞춰 미리 적어본 뒤, 편지지에 꾹꾹 마음을 눌러 담아 글자를 적어 내려갔다.
임신으로 인해 입사한 지 8개월 만에 다시 육아휴직을 하게 되었다. 출산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지만 곧 남편이 복직을 하고, 여러 상황을 고려했을 때 지금 육아휴직에 들어가는 것이 맞겠다 싶었다. 개인적으로 보자면 둘째 임신을 더 늦출 수는 없는 상황이었지만 회사 입장에서 보자면 입사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휴직에 들어가는 것은 충분히 당황스러울 수 있다. 파트너들에게 편지를 쓴건, 이런 불편한 상황에 대해서 최소한의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이렇게 해야 내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해질 것 같았다.
워킹맘을 거의 찾아보기 힘든 조직에서 임산부로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 가에 대해 고민되는 순간이 많다. 여성 비율이 높고 육아휴직을 많이 쓰는 대기업에서는 임신을 하면 2시간 단축근로를 신청하고, 정기검진일에는 병원에 갈 수 있고, 초과근무는 법적으로 금지된다. 출산이 임박하면 출산휴가를 쓰고, 뒤이어 육아휴직을 일정기간 사용한 뒤 회사로 복귀한다. 이러한 분위기가 자리 잡혀 있지 않은 조직에서는 모든 것이 조심스럽다.
프로젝트 중 임신 사실을 알았지만 단축근로는 언감생심이다. 컨설팅 프로젝트는 인력을 투입한 시간만큼 고객사에 비용을 청구하기 때문에, 내가 매일 2시간씩 단축근무를 하려면 고객사와 조율이 필요하다. 내가 덜 일한 만큼 다른 걸로 보상을 해주거나, 양해를 구해야 할 것이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조직에 폐를 끼칠 수는 없으니 임신 사실을 숨겼고, 병원에 가야 할 때는 반차를 쓰고 적당히 둘러댔다.
임신 사실은 고객사 상주 프로젝트가 끝난 뒤 본사로 돌아와 오픈했다. 신체적으로는 배려를 받을 수 있어 좋지만, 불편한 상황들은 피할 수 없다. 제안서 리뷰 회의를 하다가 저녁 6시 30분쯤 되었는데, 파트너가 나에게 '이거 한 장 더 그려봐'라고 했다. 그러더니 '아, 임산부라서 야근하면 안 되나?'라며 나를 봤다. 나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랬더니 내 옆에 있는 동료에게 '니가 좀 도와줘. 임산부니까'라며 일을 넘겼다. 나는 그 동료에게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다. 이런 배려는 잘 익숙해지지 않는다. 고마움과 함께, 조직에 폐를 끼치고 있다는 생각이 따라온다.
그럼에도 무리해서 '나는 비록 임산부지만, 다른 직원들과 똑같이 일할 수 있습니다!'라고 어필하기 어려운 것은, 그것이 나쁜 선례를 만들기 때문이다. 아마도 내 앞의 많은 선배들이 그런 길을 걸어왔으리라 생각한다. 조금 힘들지만 참고 일을 하는 것이다. 물론 하려면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내가 그렇게 하고 나면 내 뒤에 임신하는 다른 직원들에 대해서도 '할 수 있지 않나?'라는 기대가 생기게 된다. 임산부도 초과 근무를 할 수 있다는 문화를 만드는데 일조하게 되는 건 아닐지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첫째를 임신했을 때는 다른 컨설팅펌에 다니고 있었는데, 그때 이러한 경험을 선명하게 했었다. 내가 임신하기 1년 전쯤, 동료 한 명이 임신을 했다. 우리 팀이 생긴 이래 첫 임산부라 그 친구는 모든 것을 처음으로 해내야 했다. 그 친구는 임신 중에도 야근을 꽤 많이 했었다. 주변 사람들이 나서서 '임산부는 야근을 시키면 안 됩니다!'라고 하는 일은 없다. 나 역시 그런 주변인 중 하나였다. 본인이 일을 하고 있으면 그저 괜찮은가 보다 짐작만 할 뿐이다. 그러니 본인이 힘들다면 스스로 어필을 해야 한다. 어찌 됐든 나는 그 친구 덕에 육아휴직을 쓰는 것 자체는 큰 무리가 없었다. 없던 길을 내 준 덕분에, 그저 그 길을 따라가면 되는 것이었다.
한때는 컨설팅펌에서 워킹맘으로 잘 살아남는 모습을 보여주자는 포부가 있었다. 이 업계에는 어린아이를 둔 엄마들이 없다. 그들은 다 안정적인 대기업으로 떠났다. 나는 비록 쉽지 않지만, 그 어려운 길을 걸어 나가 보자,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몇 안 되는 동료들을 찾아 같이 어려움을 나눠보자는 마음도 품었었지만 어느새 사그라들었다. 일을 할수록 조직은 견고하며, 나 자신은 무기력한 존재로 느껴졌다.
내가 그런 말을 할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라는 자기 검열에서도 통과하지 못했다. 현업 시절 나는 늘 자신감이 넘치고 자기 효능감이 높은 사람이었지만, 이 조직에 와서는 아직 내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컨설턴트로서 갈 일이 멀다. 그런 내가 감히 워킹맘으로서 일과 가정의 균형을 논할 위치가 되는가 라는 자문을 하게 되고, 그러지 않기에 내가 하는 말에도 힘이 실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것은 수많은 불편한 순간과 맞닥뜨리는 과정이다. 배려해 주는 동료들에 감사한 마음이 드는 동시에, 일과 육아 모두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절망감에 좌절하게 된다. 지난 2025년은 그것을 뼈저리게 경험한 시간이었다. 8개월 된 아이를 남편 손에 맡기고 복직을 했던 연초에는 다시 일을 할 수 있다는 설렘이 컸다. 그러다 회사를 옮기고 난 뒤 혹독한 야근에 주말근무가 이어지고, 남편이 지치기 시작하며 전쟁이 시작됐다.
왕복 4시간 거리를 통근하면서 돌도 안 된 아기를 집에 두고 커리어에 집중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아이 케어는 남편이 전담했지만 내 나름대로도 쉽지 않았다. 지친 몸을 이끌고 살금살금 집에 들어와 잠만 자고 새벽에 출근하는 생활을 이어갔다. 겉에서 보이는 커리어는 화려했을지 모르지만 내 마음은 병들었다. 무엇을 위해 일하는 건지, 왜 이렇게 어려운 길을 택한 건지 혼란스러운 상태로 몇 달을 보냈다. 어떤 날은 집에 들어오니 불 꺼진 거실에 남편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너무 지쳐 보여 꼭 안아주었더니 과묵한 남편이 꺽꺽 거리며 울었다. 우리 둘 모두에게 너무 힘든 시간이었다. 나는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 2025년은 내 인생에 가장 힘든 해였다.
그럼에도 어떻게 둘째 낳을 결심을 했느냐 묻는다면, 나는 논리적으로 답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저 응당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라 믿고 있다.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힘들 것이고, 첫 번 째보다 더 힘들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 힘든 시간도 언젠가는 지나가고, 그 시기를 과거형으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