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전환기 3

계류유산

by 우너지

8주 4일 차

어제보다 밥을 잘 먹게 되었다.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8주 5일 차

입덧의 패턴이 바뀌었다. 오전 일찍에는 메슥거리는 게 심하지 않았는데 오늘은 아침부터 힘들었다. 내 차는 잘 타고 다녔는데 이 날은 출퇴근 10분 거리를 운전하는 것도 차 냄새가 나서 고역이었다. 입덧이 갑자기 멈추거나 패턴이 바뀌는 건 유산의 징조일 수 있다는 글이 떠올랐다. 불안한 마음에 검색해 보니 입덧은 갑자기 멈추기도 심해지기도 하니 걱정 말라는 글도 많았다. 산부인과를 가볼까, 했는데 미팅이 끝나고 나니 병원 진료가 1시간도 안 남은 시각이었다. 애매하네.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퇴근하려 차를 탔는데 순간 냄새가 역하게 느껴지면서 구토감이 올라왔다. 어차피 내일 오전 병원 예약인데, 집에 가서 쉬어야겠다. 무슨 일이 생긴지도 모른 채 집으로 왔다.


8주 6일 차

산부인과에 남편과 가는 건 처음이었다. 아침 샌드위치를 배달시켜 먹으며, 성인보다 태아의 심장은 엄청 빨리 뛰더라는 지난번 검진의 감상을 읊었다. 집 근처 산부인과에 가서 이런저런 설명을 듣고 초음파를 하러 들어갔다. 간호사 선생님이 남편 분 핸드폰으로 심장 초음파 찍어주겠다고, 핸드폰을 챙겨 초음파실로 함께 들어갔다. 초음파를 시작하고 간호사 선생님이 영상을 찍으려고 하니 의사 선생님이 갑자기 찍지 말라고 화를 낸다. 뭐지? 의사 선생님이 초음파를 한참 더 보더니 "아기 심장이 안 뛰네요."라는 말과 함께 심장은 아무리 작아도 빨갛게 혈관이 보이고 콩닥콩닥 뛰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아기 크기 상으로 2~3일 전에 심장이 멈춘 것 같다, 12주 이내 초기 유산은 흔하고 대부분 유전자 이상이라 엄마의 잘못이 아니라는 등의 이야기를 한참 덧붙이셨다. 인터넷에서나 보던 계류유산이었다.

옷을 챙겨 입고 진료실로 가니 남편에게 내게 했던 설명을 똑같이 하고 계셨다. 아기와 태반을 꺼내는 수술이 필요하니, 동네 작은 병원보다는 분만 가능한 큰 병원에 가보라는 조언을 덧붙였다. 네이버 지도를 꺼내 병원 몇 개를 추천해 주셨다. 샌드위치를 먹었다는 말에 공복이 아니라 오늘 수술은 힘들 수도 있지만, 아직 2~3일 밖에 안 되어서 월요일 수술해도 문제는 없다고 한다. 진료실을 나와 남편이 서류를 받고 계산을 하는 동안, 갑자기 울음이 터졌다. 간호사 선생님이 휴지를 갖다주셨다. 병원을 나와 건물 복도에 한참을 앉아있었다. 아기가 생기기 전에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오히려 생기고 나니 2cm의 작은 생명에 많은 애정을 갖게 된 것 같았다. 우리 부모님의 마음이 이랬겠지.

주변 큰 병원 중 바로 진료를 볼 수 있는 곳을 찾아 예약을 했다. 오후 2시까지 오세요. 2시간이나 남았다. 혹시 모를 수술에 대비해 점심은 먹지 않고 집에 가서 누웠더니, 공복감에 입덧이 심해졌다. 유산에도 여전히 입덧을 하는 내가 싫었다. 누워서 캘린더를 열어 보니 월요일 중요한 미팅이 많아 수술을 화요일에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상반기 말이라 바쁜데 마지막 정리하고 화요일부터 휴가를 쓸까. 이런 생각을 하는 내 모습에 현타가 왔다. 남편도 핸드폰으로 뭘 한참 찾아보더니 자기 정자가 건강하지 않아 나를 고생시킨 것 같다고, 임신 과정에서 자기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미안하다고 한다.

큰 병원에서 다시 한 초음파에서도 동일한 소견이었다. 수술하려면 공복 8시간이 필요해서 오늘은 어렵다고 한다. 내게 배정된 선생님은 월요일 휴진이라 화요일 수술이 가능하다고 한다. 아기를 계속 품고 있는 것에 찝찝한 마음이 들었지만, 아까 고민하던 회사 문제에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했다. 수술 시간을 예약하고 안내를 받고 병원 앞 한일관에서 갈비와 우거지탕, 골동반까지 시켰다. 허기에 거한 식사를 했다. 최근에 이렇게 잘 먹은 적이 있었나. 그때 시간이 오후 4시, 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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