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덧
초기 임산부의 80%는 입덧을 겪는다고 한다.
입덧에는 토덧, 체덧, 먹덧, 양치덧, 냄새덧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친구들이나 회사 가까운 분들이 임신하고 출산하는 과정을 지켜봐 왔고 임신 과정에 대해 꽤 잘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오만이었다. 나도 직접 겪기 전까지는 몰랐다. 입덧이라는 게 얼마나 괴로운지.
내 입덧은 먹덧과 체덧이었다. 먹지 않으면 멀미하는 듯이 속이 메슥거렸고, 정작 먹고 나면 속이 체한 것 같았다. 굳이 비유하자면 소주 3병을 마시고 다음날 퀴퀴한 냄새가 나는 오래된 택시를 1시간째 타는 느낌, 그리고 어릴 적 급하게 먹다 체해서 엄마가 손 따주기 직전의 답답한 느낌이었다. 드라마에서 보던 입덧은 음식 냄새를 맡으면 갑자기 헛구역질을 하며 화장실로 뛰어가던 "순간"으로만 그려졌지만 현실의 입덧은 24시간 지속되었다. 심지어 자다 깼을 때에도 입덧을 했다. 한 번은 자다 깨서 물을 마셨는데 순간적으로 구토감이 들어 토하기도 했다.
예전 팀 동료의 입덧은 새콤달콤, 레몬사탕, 비빔국수로 기억된다. 평소 단 걸 즐기지 않던 사람인데 임신을 하고부터는 하루 종일 입에 뭔가를 물고 있었다. 그녀는 임신의 힘듦을 그다지 호소하지 않았고 묵묵히 할 일을 하다가 퇴근할 뿐이었다. 그녀의 입덧은 어땠을까. 어떤 증상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회사에서 굳이 이러쿵저러쿵 설명하며 임산부에 대한 배려를 요구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4주 차부터 나타난 입덧은 5주, 6주 차가 될수록 심해졌다. 오전보다는 오후, 오후보다는 저녁이 더 힘들었다. 평소 퇴근은 빠르면 7시이고 그보다 늦을 때가 더 많았는데 6주 차부터는 버티기가 어려웠다. 임신하더라도 업무는 평소 하던 대로 해내고 싶었지만 몸이 따라주질 않았다. 임신 12주까지는 하루 2시간씩 단축근무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루 6시간 근무로 업무를 다 할 수 있을지 걱정부터 앞섰지만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은 사무실에 앉아있는 것 자체가 곤욕이었다. 당장 내가 살아야겠는걸. 상사에게 임신으로 단축근무를 신청하겠다고 말했다. 업무에 지장 없도록 하겠다는, 굳이 덧붙일 필요 없는 말도 함께 전했다. 매일 6시간 근무를 지키진 못 했다. 야근을 하지 않고 8시간 근무만 하더라도 평소 대비 업무량이 크게 줄어든 거니까 그래도 숨통이 트였다.
다행히 나는 냄새에 민감하지도, 구토를 많이 하지도 않았다. 된장 같은 일부 식재료나 튀김 같은 음식을 제외하면 웬만한 메뉴는 곧 잘 먹었다. 인터넷을 보면 아무 음식도 못 먹고 구토를 너무 많이 해서 포카리스웨트에 의존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에 비하면 나는 아주 양반이라고 위로가 되다가도, 이렇게 힘든데 언제쯤 괜찮아지나 막막하기도 했다. 엄마, 시어머니, 출산을 경험한 친구들 지인들 모두 입덧은 정말 힘든 게 맞다고, 견디다 보면 다 지나간다고 다독여주었다. 다들 이런 시간을 보냈구나. 엄마도 나를 이런 시간을 거쳐 낳았구나, 친구들 입덧할 때 내가 충분히 공감해 주지 못했구나, 자녀를 잘 키우고 계신 워킹맘들도 입덧과 회사를 병행했겠구나. 여러 마음이 스쳐 지나갔다. 다들 어른 같이 느껴져 존경심이 샘솟았다. 시어머니는 입덧이 정말 심하셔서 출산 직전까지 토하셨다고 한다. 남편에게 네가 잘해야 한다고 하루가 멀다 하고 잔소리하셨다. 그런 응원 덕분에 힘들다 말은 했지만 버틸 수 있었다. 만사에 감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