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되어간다는 것

책 한 권, 나를 쓴 시간

by 원지윤

오늘, 나의 에세이 인쇄 주문이 들어갔다. 누군가에게는 흔한 일이겠지만, 내게는 조용한 축제처럼 느껴진다. 낱장의 문장이었고, 단어였다. 때로는 휴지통을 거쳐 나와 고친 듯한 문장이었고, 밤마다 다듬은 생각들이었다. 그 조각들이 하나의 책으로 묶인다. 아직은 완성본이 아니라 샘플책 한 권이지만, 그것만으로도 내 안의 작가라는 존재가 슬며시 허리를 편다. 종이에 인쇄된 내 문장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손끝에서 넘겨지는 질감은 어떤 느낌일지. 설레면서도 긴장되는 기다림이다.


우선 샘플책을 받아보고, 오탈자를 고치고, 문장 간의 호흡을 다시 들여다볼 생각이다. 책의 외형도 다시금 살피고, 조금 더 단정하게 묶일 수 있도록 만져볼 것이다. 그리고 나면, 이 책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건넬지 생각해보려 한다. 어디서,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모습을 드러낼 것인지. 단순히 책을 파는 것이 아니라, 내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다. 독립출판이기에 가능한 자유로운 상상 속에서, 나는 마케팅 기획자이자 디자이너이고, 동시에 독자이기도 하다.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건 글을 쓰기 시작했던 그날의 메모한 줄에서 시작되었다. 어떤 마음은 누군가에게 말로 꺼내는 대신, 조용히 문장으로 숨는다. 나는 그런 문장들을 모아 왔다. 마음 깊은 곳의 이야기였고, 때로는 혼자 보기엔 아까운 고백들이었다. 그 기록들을 책이라는 형식으로 내보내는 것은, 나 자신에게 보내는 격려와도 같다. ‘이만하면 괜찮다’고, ‘이제는 꺼내도 된다’고.


이제 시작이다. 샘플책이 내 손에 들어오면 나는 또 하나의 문을 열게 될 것이다. 아직은 미완의 책이지만, 그 안에는 내가 써온 시간과 고요한 진심이 담겨 있다. 어쩌면 그 조용한 진심이 누군가의 마음에도 가 닿기를, 그리고 나처럼 작은 용기를 품은 이들의 손에도 닿기를, 나는 조심스럽게 바란다. 책이 되어간다는 건, 그렇게 세상과 조금씩 연결되어 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 연결의 첫 독자는 늘 나 자신이었다. 가장 솔직하게 읽어내는 독자이자, 가장 가혹한 평가자. 그런 나를 통과했기에, 이제는 다른 누군가 앞에 조심스레 내어놓을 수 있을 것 같다. 글을 쓴다는 것은 늘 ‘들킨다’는 두려움과 ‘알아봐 줬으면’ 하는 기대 사이를 오간다. 그 경계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쓰는 편지를 조금씩 외부로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이 여정이 얼마나 오래 갈지는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나는 이제, 누군가의 글을 읽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가 읽을 글을 쓰는 사람으로 한 발 내디뎠다는 것. 오늘의 인쇄 주문은 그 조용한 선언이었다. 글쓰기로 숨 쉬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이, 이런 한 걸음으로 이어지기를, 그렇게 나는 다시 다음 문장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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