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이머문자리 Dec 16. 2022

스타트업은 마이크로 매니징을 할 수밖에 없다.

'마이크로 매니징이 왜 생길까?'에 대한 고민 없이 마이크로 매니징은 안 좋으니까 하지 말라고 하면, 안 할 수가 없다. 내가 마이크로 매니징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도 모를 것이다.


사업을 하면서 디테일을 챙겨야 한다는 점은 반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어떻게' 챙겨야 하냐에 대해서는 정해진 바가 없다.


대기업에서 관리자 직급(과장 이상)이 되면, 일을 시키는 법을 배운다. 그 과정에서 이건 이렇게 해라, 저건 저렇게 해라 하고 시시콜콜 지시할 필요가 없었다. 이유는 SAP으로 구축돼 거대한 전사 ERP 인프라가 대부분의 업무를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업무 프로세스가 인프라 안에 녹아 있어서, 절차를 누락하면 업무가 진행이 안 되는 구조라고 보면 된다.

그렇기 때문에, 'ㅇㅇ 대리, 이 계약 진행해~'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상대방이 알고 있다. 그리고 그 계약을 진행함에 있어서 특별히 신경 써야 하는 절차가 있다면, 'ㅇㅇ 절차는 누락하지 말고 해요.' 정도의 관리만 하면 된다. ㅇㅇ절차를 발로 하건, 손으로 하건, 뛰면서 하건, 걸으면서 하건, 누워서 하건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그래서 대기업에서는 마이크로 매니징이라는 말보다는 오지랖이라는 말을 많이 썼다. 팀장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까지 신경을 쓴다는 볼멘소리라고 보면 된다.


대기업은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1년은 그냥 가르치는 시간이라고 본다. 사수가 배정돼서 관리하고, 업무 매뉴얼(전결 규정 포함)과 시스템 매뉴얼을 숙지하고, 업무를 단계별로 해보면서 체득화 할 수 있도록 한다. 문서로만 있는 매뉴얼로는 업무를 통제하기 어렵기 때문에 몸이 익히게 가르치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목표만 주어주면, 알아서 일할 수 있게 된다. 물론, 게을러서 일을 안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논외로 한다.



반대로 스타트업은 전사적인 인프라는 없다. 당연하다. 그리고 매뉴얼이라고 하는 것들도 파편화되어 있다. 평균 근속연수가 1년이 안되다 보니, 직원도 자주 바뀐다. 그래서 개개인이 갖고 있는 노하우들도 쉽게 증발해 버린다. 내부에 wiki나 구글 드라이브에 '인수인계'라는 파일로 많은 데이터가 있지만, 하나로 통합되기 어렵다. 게다가 사수, 부사수 개념도 약해서 업무를 차근차근 배울 기회도 없다.


앞의 문단에서 말한 것들이 스타트업이 마이크로 매니징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업무 프로세스가 정확히 정해져 있지 않을 수 있고, 정해져 있더라도 구체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팀장도 업무 지시를 하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이지 않다. 그래서 업무가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이 보기에 수정이 필요한 부분을 지속적으로 매니징 해야 한다.


업무 담당자도 마찬가지다. 업무 처리를 하면서도 확신을 갖기 어렵다. 그렇지만 스타트업 정신으로 해내야 하니까 무조건 실행한다. 업무를 처리하는 방식에 대해 80%는 정의가 되어 있고, 20%만 개인의 융통성으로 처리하면 된다면, 디테일을 챙길 여유가 있다. 하지만 그 반대로, 처리 방식은 20%밖에 정의가 되어 있지 않다면, 디테일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팀장이건, 담당자건 업무 처리 방식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태다. 나는 이것을 '업무 처리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규정하고 싶다. '난 업무에 두려움 같은 것 없어'라고 반론할 것이다. 하지만, 업무 처리 방식에 대한 사전적 합의가 없기 때문에  생기는 두려움을 인정하지 않으면 개선되는 것이 없기 때문에 마이크로 매니징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 두려움은 단순히 업무 처리 방식을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처리해도 내 조직, 그리고 팀장이 보호해줄지 모르기 때문에 오는 두려움이다. 대기업에서는 일을 하다가 일이 터져도 내가 불법적인 일을 하지 않았다면, 조직과 시스템이 나를 보호해준다. 물론 내부적으로는 무진장 혼나고 깨지더라도 말이다. 반면 스타트업에서는 일이 잘못되면, 사전적으로 정해진 업무처리 방식이 없기 때문에 개인의 과실로 보는 경우가 많다.



업무 처리에 대한 두려움의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프로세스화하고 매뉴얼화할 수 있는 것들은 만들고 체득화해야 한다. 매뉴얼화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챙길 것인 지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

어떻게 챙길지에 대한 부분은 매니징이라기보다는 모니터링의 형태여야 한다. 그리고 되도록이면 자동화된 인프라로 모니터링하는 쪽으로 고민하면 좋을 것 같다. 모니터링하다가 튀는 값들만 매니징을 해주면 된다.


대기업에서 일할 때는, 업무 처리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신입부터 대리까지 근 8년간을 일을 하는 방법에 대해서 체득하기 때문이다. 근속연수도 길고 차근차근 배워둬서 무슨 일을 시키든지 그냥 하면 된다라는 생각만 있다. 이 일을 맡았는데 어떻게 해야 되지?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조직과 인프라가 나를 지켜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에게 인프라를 갖추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조직이 매니징보다는 모니터링하면서 업무 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갖추길 바란다.


다만, 프로세스 정리한다고 프로세스 맵 만드는데 시간을 허비하지 말자. 팀원들과 이야기하면 프로세스를 만들고 모니터링할 수 있는 포인트를 찾을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상식적인 것도 상대적인 개념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