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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시된 제품의 부속품을 비난하지는 않잖아?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고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는 나

by 바람이머문자리

나는 MBTI로 보면 ISTJ이고, 감성보다는 이성에 의존하는 인간이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아내와 대립하게 되는데, 마음으로는 알면서도 뇌에서는 공감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오늘도 같이 앉아서 TV를 보다가, 여행 프로그램이 나왔다.

아내는 연예인들이 돈 벌면서 노는 프로그램이니까, 가서 식비는 본인들이 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이런 비난을 세간에서도 많이 한다고 하는데,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안 보면 되는데 왜 비난을 할까?'라고 생각했다. 마음으로는 아내의 말에 공감해야 한다고 외쳤지만, 뇌는 "안 보면 되잖아?"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난 그 견해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방송 프로그램도 하나의 상품이고, 그걸 만들어서 내놨는데, 잘 팔리면 계속되는 것이고, 아니면 중단될 것이니까."


이 말에 아내는 '절레절레'하는 느낌으로 나를 '또 저러는구나'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속으로 미안했지만, 이것을 고치는 것이 내 뇌는 영 어려운가 보다 한다.



그러고 나서 곰곰이 다시 이 사안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우리가 갤럭시나 아이폰이 출시됐는데, 그 속에 메모리를 무엇을 썼냐고 불평은 하더라도, 그 메모리 자체를 비난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방송 프로그램의 출연진이 사람이기 때문에, 인간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나로서는 공감이 안 된다.


PD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그 기획에 어울릴만한 부속품(연예인이 됐건, 촬영지가 됐건)을 정하고 촬영을 해서 방송을 한다. 시청률이 높으면 계속 만들어서 팔 수 있는 것이고, 시청률이 안 나오면 중단될 것이다. 경제적이면서, 시장의 논리로 들이대면 사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안 보면 그만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프로그램 자체가 윤리적이거나 도덕적인 문제를 야기했다면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TV 프로그램은 그냥 재미로 보면 좋겠다.



오늘의 일을 돌이켜 보면서 일을 할 때, 이와 유사하게 나를 불편하게 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상대방이 '공감과 지지'를 원하는 경우였다.

앞서 말한 나의 성향은 회사에서는 더욱 극명하다. 감성적인 것들이 업무에 영향을 거의 주지 않기 때문인데, 함께 일하는 상대방이 본인의 의견을 내고, 그에 대해 공감해 주고 지지를 원하는 경우에 나는 잘하지 못했다.


반면, 의견을 구하고 토론을 원하는 상대방과는 합이 잘 맞는다. 찬성과 반대만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고, 각자의 의견을 개진하고 그에 합리적인 논리를 펼치면서 더 좋은 방향으로 결론을 맺을 수 있는 상황에서 나는 내 역량을 더 잘 발휘할 수 있었다.


대기업에서 13년 반, 스타트업에서 3년 반을 일하고, 현재는 초기 스타트업 CFO로서 일을 하고 있다. 돌이켜보니,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동안에 만난 업무 상대방의 상당수는 '공감과 지지'를 원하는 타입이었던 것 같다. 반면, 대기업에서는 의견을 구하고 토론을 할 수 있는 상대방이 많았다.


두 가지 유형 중에 어느 것이 좋고 나쁜지를 논하려는 것은 아니다.

* 그리고 그 외에 더 많은 유형이 있겠지만, 여기서는 이 둘만을 논하려고 한다.


다만, '공감과 지지'를 원하는 상대방에게 의견을 제시하고, 토론을 원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면 상대방은 나를 '반대하는 사람'으로 인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상대방이 이야기하는 것을 대부분 찬성하고 지지하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어느 누구도 완벽할 수 없기 때문에, 상대방이 제시한 의견에 일부 보완점이 보이면, 그것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것일 뿐이고, 절대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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