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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과 마라톤

이우백두와 이우런

by 바람이머문자리

10여 일 전에 아내가 할 말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바짝 긴장하고 아내를 바라보았는데, ‘러닝’을 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아이 학교 학부모 동아리로 이우런이 있다는데, 기초 체력 증진을 위해서 본인은 가입할 것이라고 했다. 나는 백두대간도 타고, 축구 훈련도 하고, 헬스도 해서 운동량이 충분하다고 맞섰다.


그 주 일요일, 아내는 백두대간 17구간을 다녀온 다음날, 저녁 8시에 러닝 하러 간다고 했다. 아내의 표정이 ‘내가 가는데 안 갈거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같이 하자는 아내를 혼자 보내기는 그래서 같이 나갔다. 그런데 몸 풀고 40여분을 달리면서 땀을 쪽 빼니, 개운했다. 어제 백두대간의 피로가 갈무리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도 러닝 동아리에 가입했다.



그런데 다음날 아내에게서 카톡이 왔다.

“여보 10월 3일 10km 마라톤 나가자”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러닝 동아리 가입 하루 만에 마라톤이라고? 난 그래도 5km 마라톤이라도 해봤는데, 운동하곤 담쌓았던 아내의 입에서 나온 문장이라기에는 이질적이었다. 어쨌든 아내 덕에 러닝 동아리 가입과 3달 후 마라톤 신청까지 마쳤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달리기도 싫어한다. 등산도 싫어한다고 해놓고는, 백두대간 입산을 열심히 하고 있다. 왠지 러닝도 내가 더 열심히 하게 될까 두렵다.



그러고 보니 이우백두와 이우런은 닮았다.

등산과 달리기는 운동이라고 하지만, 농구나 축구처럼 재밌지 않고(남자는 기본적으로 승부가 걸리면 재밌어 하는 경향이 있다), 어느 정도의 고통이 수반된다. 그리고 아무도 그 길을 걷거나 달리라고 하지 않는다. 나도 이우백두를 하기 전까지는 산과 담을 쌓았었으니까.


그런데 둘의 차이가 있다.

등산은 하다가 바로 멈출 수가 없다. 반면, 달리기는 트랙이건 탄천변이건 달리다 멈춰서 택시 잡아 타고 집으로 가면 된다.


이번에 중앙대장님과 후미대장 맡기를 경합하다가, 내가 후미를 맡아서 산행에 임했다. 백학산 컷오프 11시라고 되어 있었는데, 새벽 3시에 출발해서 컷오프 구간을 11시에 통과 못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래서 컷오프 하산 내용을 잘 안 봐뒀었다. 그런데 발생하고 말았다.


10시 좀 넘어가서 아무래도 안전 하산이 필요할 것이라고 판단하여, 안전 하산 루트를 펼쳐봤다. 1.05km, 15분이라고 되어 있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리고 백학산을 목전에 둔 오르막에서 대원들에게 너희들은 안전 하산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 대원은 그 말에 열이 받았는지, 힘이 났는지, 쪼르륵 산행을 이어가서 완주를 했다.


그리고 다시 지도를 보니, 안전하산 루트는 산에서 임도까지 내려간 이후의 길만 표시되어 있었다. 백학산에서 임도까지 1km 가까이 이동해야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거기에서 택시가 잡힐만한 곳까지 나가는데 2km는 걸었던 듯 하다.

대원들에게, 이럴 거면 완주가 낫지 않겠냐고 말했다. 임도부터는 시멘트 도로에 그늘 하나 없고 뙤약볕이라서 거의 사막을 걷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이번처럼 등산은 멈추고 싶은 데서, 택시 불러서 돌아가기가 너무 어렵다.


우리들 인생은 등산 같기도 하고, 달리기 같기도 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언뜻 보기에는 지금 하고 있는 무언가를 바로 그만두기 어려운 등산처럼 보이지만, 달리 생각하면 달리기처럼 바로 그만둘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화이팅을 외치는 것이 인생이지!


2024. 7. 13 백두대간 17구간(큰재~지기재) / 난이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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