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마음이 좀 착잡했던 날이었습니다. 회사 동료의 어머니께서 급성 담낭암으로 유명을 달리하셨고 그 빈소에 조문을 다녀왔기 때문입니다. 같은 동네에 살고 있기에 직장 동료지만 평소에도 자주 왕래를 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자세한 상황도 전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정기 검진으로 문제가 발견되었지만 병세가 갑작스럽게 악화가 되는 바람에 손을 쓰기 어려운 지경이었다고 말이죠.
항암치료조차도 견뎌낼 수 없는 정도의 건강상태였기에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고 합니다. 동생 두 명과 돌아가면서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간호를 위해 짧은 휴직도 했죠. 그나마 다행스러운 부분이라면 모든 가족이 사는 곳이 서울이었다는 점과 남매가 사이가 좋아서 돌아가면서 짧은 시간이지만 어머니를 돌볼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임종하시기 며칠 전에도 동네에서 지인을 잠시 만나서 어떻게 지내는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을 하시더군요. 어머니의 병세가 악화되면서 고통스러워하시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많이 힘들다고 말이죠.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의 준비를 비롯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여러 절차들을 챙길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말도 하시더군요. 장례소식을 듣고 빈소를 찾아가 보면 마음의 준비를 할 겨를도 없이 혼이 나가 있는 분들을 볼 때가 있습니다. 보통 그런 경우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신 경우가 많았던지라 충분히 이해가 가더군요.
지금 되돌아보면 제 외조부님도 제가 대학교 1학년 때 갑작스럽게 병실에서 치료를 받으시던 중에 세상을 뜨셨던 기억이 납니다. 아직 철없던 나이의 저조차도 그 슬픔을 견디기 힘들었는데 그때 다른 어른들은 얼마나 놀라시고 힘드셨을까 싶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틀 전 새벽에 부고메시지가 와서 다른 동료들과 함께 빈소를 방문했습니다. 동료는 어머니를 보내드리던 그날의 이야기를 덤덤하게 해 주시더군요. 대화를 비롯해 거동조차 힘드신 상황이 왔기에 어쩔 수 없이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을 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대략적인 시점을 정해주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도 해줬다고 합니다.
예전에 의료인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 임종을 맞기 전의 환자에게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객관적 징후가 있었다고 합니다. 혈압 감소(87.5%), 의식 수준 변화(82.5%), 산소포화도 감소(75%), 맥박수 증가(73.8%) 등이죠. 그 이외의 주관적인 징후들도 보인다고 합니다. 임종을 짐작할 만한 징후들이 아마도 있으셨던 모양입니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 어느 정도 마음의 동요도 좀 잦아들고 세상사에 아주 조금은 초탈해질 법도 한데 장례식장에 조문을 하러 가면 확실히 전혀 적응이 되지 않습니다. 그 공간 자체에서 오는 슬픈 기운에 마음이 심란해져서죠.
이런 경험을 해야 부모님 걱정을 하면서 전화를 드리는 불효자라서 참으로 죄송스럽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제게 아직은 이런 시련을 주시지 않아서 사랑하고 존경하는 부모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100세 시대를 넘어 120세 시대를 바라보는 세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인공지능으로 인해 인간의 뇌에 칩을 심을 수 있고 인공장기도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등장하죠. 언젠가는 죽지 않는 날도 오리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은 아직도 우리 가까이에 항상 도사리고 있습니다.
내 인생의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잘 살았다고 할 수 있는지 그리고 마지막 순간이 왔을 때 이별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게 되는 하루였습니다.
한 줄 요약 : 철학에서도 가장 궁극적으로 하는 고민도 "생을 잘 마무리하는 방법은 과연 무엇인가?"라고 하니 언제나 죽음이라는 단어는 어려운 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