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며칠 전 학교에서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연수에 참여했습니다. 연수 제목은 바로 '바리스타 체험'이었죠. 선착순으로 스무 명만 모집하는 소규모 클래스였는데 운이 좋게 신청도 잘 되었고 근무일정을 보니 참여가 가능한 날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요즘 커피를 거의 마시지 않습니다. 카페인을 섭취해도 낮에는 딱히 각성효과가 생기지 않고 되레 밤에 잠을 설치는 희귀한 체질 때문이었죠. 거기에 이뇨작용으로 인해 밤에 화장실을 다녀오는 날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커피를 올해부터는 거의 끊다시피 해서 딱 두세 번 정도밖에 마시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이 악마의 음료가 주는 매력을 마냥 거부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기본 상식의 영역이기도 하고 향을 또 좋아하거든요. 비록 교육을 받을 때 시음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하루 정도는 괜찮겠지 하며 학교로 향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학교에서 하는 행사나 연수에서 가장 힘든 점은 아빠들이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이번에도 연수를 받으러 온 열네 명 중에서 아빠는 저 혼자뿐입니다. 저를 아는 분이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아는 분은 계시지 않더군요. 이제는 이런 상황에 크게 개의치 않고 그러려니 합니다. 저는 은근히 이런 쪽에서는 뻔뻔하거든요.
그나마 교육을 진행하러 오신 교수님이 남자분이라서 다행입니다.
연수는 두 시간 동안 진행되었는데
첫 번째 시간은 이론수업이었습니다.
커피를 구분하는 방법이나 원산지, 특징, 효능, 원두를 추출하는 방식 등을 다뤘죠. 예전에 기회가 있어서 한 번 접했던 내용이라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모범생 코스프레를 열심히 하는 편이라 중간에 질문도 하나 했죠.
커피도 열매인데 그 과육은 어떻게 하느냐고요. 과육의 양이 엄청 적은 데다가 카페인도 많아서 그냥 폐기한다고 답을 주셨습니다.
두 번째 시간은 기다리던 실습입니다.
핸드드립 방식으로 추출을 해보기로 합니다. 테이블 별로 드립포터, 드립서버, 드립퍼, 여과지, 종이컵과 같은 도구를 전달받았습니다.
총 네 가지의 원두로 추출을 하되 두 번씩 나눠서 2인 1조로 진행하는 방식입니다. 저는 짝이 없어서 혼자 해야 했기에 옆에 계신 두 분이 짬짬이 거들어주시기로 했습니다. 둘이서 실습을 하면 두 번밖에 못하지만 저는 혼자서 네 번이나 하니까 오히려 더 좋았죠.
커피는 이렇게 총 4가지를 준비했는데 다 초면이었습니다.
El Salvador Dante SHG EP Washed
El Salvador Victoria H3 Honey Natural
Colombia La Roca Red Caturra Anaerobic Natural(무산소 발효)
Colombia Sugarcane DeCaffeinated(마운튼 워시드 디카페인)
나름대로 이름난 품종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먼저 소량의 물로 가루를 적셔주는 뜸이라는 작업을 하고 조금 기다렸다가 물을 뱅글뱅글 돌려가면서 붓습니다. 자세한 이론은 바리스타 수업에서 들으실 수 있으니 생략하겠습니다. 강사님의 밥줄은 소중하니까요.
모든 커피를 모두 핸드드립으로 내린 뒤 시음을 해보는 과정도 있습니다. 제가 우려낸 4종 드립커피뿐만 아니라 옆자리 계신 분들 그리고 옆 테이블에 계신 어머님들의 작품까지 다 맛을 한 번씩 보고 차이점을 찾아보라고 하시는데 고역이었습니다.
일단 가장 큰 문제는 하나도 맛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점이었죠. 다들 고개를 끄덕이면서 "음, 그렇구나. 조금 다르네"라고 하고 계시는 동안 저는 제 둔감한 혀를 탓하고 있었죠.
게다가 나눠마시는 과정에서 다들 너무 많이 따라주시는 바람에 그 부분도 힘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주시는 대로 홀짝홀짝 물처럼 마시는데 세 번째쯤 되니까 오늘 이러다가가 잠을 못 이루는 밤이 되겠다 싶더군요. 한 번 내릴 때마다 300ml씩 나왔던지라 1팀당 1.2L의 커피가 만들어지는 셈이었죠. 저만 그런 상황이 아니었는지 나중에는 모든 분들이 컵에 따를 때 "조금만 조금만... 그 정도면 됐어요." 하시기까지 했습니다. 아깝지만 나중에는 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금 지나니까 여유도 좀 생기고 옆자리 분들과도 말문을 좀 터서 사진도 찍어주시더군요. 앞모습은 못생기게 나와서 덜 못생긴 사진 하나 올려봅니다.
마지막 순번에 디카페인 원두로 만든 가루로도 추출을 해봤는데요. 디카페인은 원두에서 카페인 제거하는 작업을 거치는데 그로 인해 다른 맛도 좀 빠져나갈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반 제품보다 맛이 떨어진다고 말이죠.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이번 교육 덕분에 여러모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커피산업과 커피소비량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을 다툴 정도로 폭발적으로 늘어나있습니다. 이미 포화시장이라고 보이지만 이 산업은 아직까지도 성장하고 있죠.
그러니 커피를 마시지 않더라도 상식의 범위 내에서 충분히 이번 연수는 참여해 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날 시장이기도 하니까요. 왜 바리스타들이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다만 장점이 많은 이 커피도 지나치게 많이 마신다면 카페인 중독에 노출되어 각성효과는 못 보고 다른 부작용을 겪을 수 있으니 적당한 수준으로 즐기시기를 권해드려요~
한 줄 요약 : 뭐가 되었든 간에 배우는 일은 즐겁고 행복하다. 결국 피가 되고 살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