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페르세우스 Mar 05. 2022

아미와의 예매 전쟁 2부

멀고도 먼 BTS 실물 영접의 길

1부에서 계속

https://brunch.co.kr/@wonjue/154




8시가 되는 순간 우리 팀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빛의 속도로 버튼을 눌렀습니다. 결기에 가득 찬 간절한 표정을 짓는 아내를 보며 저까지 괜스레 긴장이 되었습니다. 쟁률이 어느 정도 일지는 알 수 없지만 뜻하는 바를 이루기가 쉽지 않으리라는 정도는 예측할 수 있었으니까요.



 아니나 다를까 뭐든지 인생이 쉽게 되는 법이 없습니다. 버튼을 누르자마자 예매 화면으로 넘어가면 성공인데 대기화면으로 전환된 것이죠. 슨 말이냐 하면 다려야 된다는 소립니다.

 

 최초 대기인원은 약 10만 명. PC방 컴퓨터로 크롬과 에지 두 개의 인터넷 브라우저를 켜놓고 휴대폰 모바일 접속까지 총 세 방향에서 달려들었지만 단 하나의 기기도 고지에 둘 다 도달하지 못한 것이죠. 

인터파크 대기화면. 실제로는 대기인원이 10만명이 넘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재미난 상황이 생겼습니다. 대기화면으로 넘어가는 그 순간 PC방 여기저기서 갑자기 여자분들의 장탄식과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어차피 대기하는 시간도 있겠다 슬그머니 화장실가는 척하며 다른 좌석들을 염탐하듯 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놀랍게도 PC방 손님들 중 절반 15명 정도 되는 여자분들 모두가 위와 같은 대기화면을 띄워놓고 초조한 표정을 띄고 있었던 것이죠. 저희처럼 부부가 온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 동네에 아미가 이렇게 많았다니!!

 이 수치를 전국 PC방에 대입시켜본다면 최소 수천에서 수만 명의 아미들이 접속 전쟁을 PC방에서 했다는 계산이 나오는 것인데 순간 소름이 돋습니다. 


 이런 상황이 되자 저는 더욱 예매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가만히 띄워둔 대기화면이 두 번이나 초기화되어 대기 순번이 몇 만 번씩 뒤로 밀려버리자 조금씩 마음을 내려놓기 시작했습니다.



 렇다고 전혀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일 대기 순번이 빨랐던 아내의 휴대폰이 처음으로 예매 가능한 화면으로 넘어가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누르는 좌석마다 선택이 완료되었다는 메시지가 나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희미했던 희망의 불씨는 점점 꺼져가고 있었습니다.

남은 좌석은 간간히 있었으나 선택하는 좌석마다 뜨는 메시지. "선택완료된 좌석입니다"


 게다가 아내의 손은 마치 철천지원수라도 만난 듯 화면이 넘어갈 때마다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습니다. 좌석을 선택하고 결재방법을 쓱싹쓱싹 누르며 부드럽게 예매 완료까지 넘어가는 것은 잠시 연습할 때뿐이었습니다.

이 넓은 공연장에 내가 앉을 좌석 하나 없는 것인가


 하지만 답답한 마음에 제가 옆에서 긴장하지 말고 똑바로 하라는 잔소리를 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그 정도 눈치는 있는 사람입니다. 공공장소에서 부부끼리 멱살잡이를 하는 진풍경을 남들에게 굳이 보여줄 필요는 없었으니까요.



 결국 예매 전쟁은 슬프게도 PC방 비용 4천 원과 1시간 반의 시간을 사용하고도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한 채 비극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물론 티켓 가격이 만만치 않았던지라 제 입장에서는 되려 예매를 못한 그만큼의 비용절감의 효과가 있었다고 자평할 수 있었겠지만 마음속으로 삼킬 뿐입니다. 이럴 때의 보이는 침묵은 확실히 금이 맞습니다.

 


 그나마 또 다행스러운 점(?)은 그곳에 계시던 15명의 여성분들 중에 예매에 성공해서 환호하며 돌아간 분이 한 분도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남의 불행을 나의 행복이라 여기는 것이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동지들이 생긴 셈이니까요.



 안타까운(?) 마음을 삼키며 집에 돌아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티켓들은 과연 어떤 운 좋은 분들이 가져간 걸까요? 매크로라는 자동실행 프로그램을 알고 있는 공대 출신으로서 갑자기 음모론자처럼 매우 궁금해지긴 합니다.

 나중에 예매 후기라도 한 번 찾아볼까 싶습니다.



 아쉽지만 BTS공연 예매는 이렇게 직접 가는 대신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가족과 다 함께 즐기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ㅡ끝ㅡ


#BTS #예매전쟁 #서울공연 #PC방 #실패 #접속장애 #인터파크 #온라인스트리밍 #매크로 #음모론자 #부러움 #비용절감 #표정관리



작가의 이전글 아미와의 예매 전쟁 1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