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페르세우스 Mar 12. 2022

캠핑카와의 전쟁 2탄

글 한 번 더 써야 안 억울할 것 같아요.

 1에서 계속..

https://brunch.co.kr/@wonjue/164



 캠핑카에 대한 글은 어제 한 번만 쓰고 마무리하려고 했는데 억울해서 도저히 안 쓸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강원도 양양에서의 차박은 첫날밤부터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추억을 선사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아래쪽에서 둘이서 사이좋게 자고 저는 차 지붕에 연결된 루프탑텐트에서 침낭을 덮고 자고 있었습니다. 어차피 외풍은 조금씩 텐트를 비집고 들어오고 있어서 공기가 조금 차긴 했습니다. 그래도 콘센트로 연결해 사용하는 캠핑카용 시동 히터가 있어서 크게 걱정이 되진 않았습니다.

강원도 바람 솔솔 불어오는 루프탑텐트


 그런데 정신없이 자다가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침낭 밖으로 노출되어 있던 제 어깨가 제게 황급하게 말을 걸었기 때문이죠.

"누가 어깨에 아이스팩을 대고 있는 것 !!"

 등골이 오싹했습니다. 램핑을 갔을 때 머리맡에서 선풍기를 틀어놓은 것 같았던 느낌과는 또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본능적으로 후다닥 운전석 쪽으로 내려왔습니다. 알고 보니 계속 가동되어야 했던 히터가 꺼져있니다. 저는 화들짝 놀라 다시 온풍기를 켰죠.  새벽 4시 반. 차 안의 온도는 겨우 10도밖에 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실제로는 10도 밖에 되지 않았던 실내온도...!!!!!


 혹시 몰라서 히터가 제대로 가동되는 것을 확인하느라 앉아서 30분을 뜬눈으로 기다립니다. 애들이 깰까 봐 화장실도 참습니다. 가엾은 내 방광...

 다행히 겨우 상황을 수습하고 다시 잠을 청하러 올라갑니다. 분명히 아주 잠깐 눈을 감았다 떴는데 어느새 8시입니다. 아이들이 재잘대는 소리에 깨고 맙니다. 아이들이 뒤척거리던 제게 갑자기 따집니다.

 

아이들 : 아빠 어제 왜 그렇게 왔다 갔다 했어요?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잤어요.

아빠 : 너네 어제 안 추웠어? 히터가 꺼져서 너네 감기 걸릴까 봐 히터 다시 트느라 아빠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아이들 : 응? 밤에 하나도 안 추웠는데요?



 제 입장에서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지만 안 추웠다니 천만다행이었습니다. 추워서 잠을 못 잤다면 그건 또 얼마나 미안한 일이겠어요.

 봇처럼 삐거덕거리는 몸을 겨우 일으켜 세우고 아침식사를 준비합니다. 합체되어 있는 몸뚱이지만 온몸의 관절이 따로 노는 느낌입니다.


 야외에서 한 번 자고 일어나 보니 야외취침을 시키는 1박 2일 제작진들이 얼마나 악랄한 사람들인지 잠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자고 일어난 출연자들의 추레한 모습을 보며 웃고 즐기던 제 자신이 참 나빴다 싶습니다. 아침의 제 모습은 더 가관이었으니까요.

같은 캠핑카로 온 다른 팀은 널찍한 텐트를 펼쳐놓았지만 애들 밥 챙기기도 힘든 저는 텐트를 펼 생각이 0.01g도 없습니다.


 설렁탕과 햇반으로 가볍게(?) 아침을 해결합니다. 햇반이 이렇게 고마운 물품이라는 것을 또 이렇게 깨닫습니다. 아이들에게 설거지를 시키고 저는 뒷정리를 합니다.

 캠핑장에서 서비스로 크로와상과 커피를 주셨는데 진짜 제가 지금까지 먹었던 것 중에서 제일 맛있었던 크로와상이었습니다.

고인돌캠프장 사장님의 서비스


 대충 정리를 마치고 오전에는 근처를 둘러보기 시작했습니다. 가까운 거리에 하천이 있어서 세 사람 모두 그리 가서 함께 놉니다. 갑자기 경쟁적으로 돌탑 쌓기를 했는데 제가 22층까지 쌓아 올리는 기염을 토하면서 가볍게 승리했습니다.

좌 : 제꺼(양양사지 22층 석탑),  중간 : 1호꺼,  우 : 2호꺼


 돌탑 쌓기를 끝까지 했던 이유는 나름대로 있었습니다. 최대한 높이 쌓으려면 바닥에서의 기초가 튼튼해야 하는 것처럼 공부도 그렇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였죠. 하지만 잔소리처럼 들리는지 제 열변아이들은 콧방귀도 안 뀌네요.



 점심은 치찌개와 카레로 해결합니다. 밖에 나와서 혼자 밥 챙기는 일은 역시 허리를 펼 겨를이 없을 정도로 정신이 없습니다. 캠핑카의 공간이 좁아서 더 그렇습니다. 별로 크지도 않은 키거늘 여기저기 부딪힙니다.

 아이들이 거들어 주긴 하지만 아직 어른도 아이도 왕초보 캠퍼라 눈에 띄게 도움은 되지 않네요. 힘들긴 하지만 대신 평소 집에서 먹는 것보다 굉장히 잘 먹는 것 하나는 좋습니다.

넘쳐흐르기 직전의 김치찌개. 5분 뒤의 참상은 상상에 맡깁니다.


 오후에는 오락 타임, 보드게임 및 휴식입니다. 캠핑카에서 준 오락실 게임기로 자동차 게임을 너무 신나게 하는 아이들을 보니 오락실에 미쳐있던 제 학창 시절이 떠오릅니다. 제 아들이 맞는 듯하네요. 적당히 조절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다시금 듭니다.

자동차게임에 빠진 둥이들


 드디어 해는 지고 저녁까지 푸짐하게 해 먹은 뒤에 짐을 미리 싸기로 했습니다. 오늘 밤부터 비가 온다고 하더니 8시부터 비가 벌써 내리기 시작했네요.

 제발 밤새 비가 너무 많이 오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건조경보 생각하면 많이 오다가 아침에 그쳐주면 제일 좋겠고요.

  이제는 제발 평범하게 이 여행을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이 주제로 3탄까지 쓰고 싶진 않으니까요. 

캠핑 최후의 만찬

3탄 결국 나왔습니다.

https://brunch.co.kr/@wonjue/166





#동사 #구안와사 #냉방병 #강제적아침형인간 #비시동히터 #삼겹살 #고인돌캠핑장 #크로와상 #22층석탑 #꼰대소리 # #건조경보


작가의 이전글 캠핑카와의 전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