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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르세우스 Mar 22. 2022

최후의 1인이 되기 위한 전쟁

내가 이렇게 대단한 인간이었던 건가..

  어제 제가 사무실에 같이 근무하시는 분들이 확진이 되는 바람에 혼자서 4인분의 근무했다는 이야기를 보신 분들이 계실 겁니다.


 그런데 제게도 알고 보면 나름대로 큰 위기가 있었습니다. 확진되었던 부서원과 지난주 금요일 점심을 함께 먹었기 때문입니다. 금요일 오후에 일찍 퇴근한 그 후배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수화기를 대자마자 다급하게 제게 말을 했습니다.


 "선배님, 저 지금 신속항원 검사받았는데 확진됐어요. 선배님도 빨리 받아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요?" 그 후배와 그날 오후 사이좋게 마주 보고 점심을 먹었기에 더 당황한 듯했습니다.


 여담이긴 한데 정말 놀라운 사실이 그 후배가 낮에 하는 기침 소리를 듣고 부장님께서 "XX 씨, 기침 소리가 심상찮네. 느낌이 좋지 않은데?"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진단키트 저리 가라 할 정도의 로나 감별사셨던 거죠.



 아무튼 후배의 당황한 목소리를 들으며 그때 저는 오히려 차분했습니다. 그리고는 이런 생각이 들었죠. '아.. 이제 내게도 올 것이 왔구나.'  그러면서 제 머리는 빠른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합니다. '다음 주에 내가 회사에서 처리해야 할 일들이 뭐가 있지?', '내가 격리가 되면 어느 방에 있어야 하는 걸까?', '다른 사람들처럼 아예 모텔을 잡고 며칠을 따로 지내야 하나?' 등등 별의별 생각이 들었습니다.


 회사를 5일 못 가고 집에서 5일을 꼼짝 없이 갇혀있어야 한다는 것은 절대 즐거운 일이 아닐 것 같았거든요.



 그런 생각들이 꼬리의 꼬리를 물고 있던 차에 제게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 순차적으로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18일 금요일 저녁 병원 신속항원검사 : 음성

19일 토요일 점심 병원 신속항원검사 : 음성

20일 일요일 저녁 자가진단키트 : 음성

21일 월요일 아침 자가진단키트 :

22일 화요일 오후 자가진단키트 : 음성




 이런 황당하면서도 놀라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확진자랑 마주 보고 점심을 먹었다는 사실을 감안했을 때 쉽게 보기 힘든 결과였죠.

 일단 금요일에는 혹시 모르니 집에서 마스크를 낀 채 생활하고 최대한 움직임을 자제했습니다. 잠복기가 있을 수 있다고들 주위의 수많은 확진자 동지들께서 친절하고 자세히 알려주셨거든요.

 토요일까지 음성이라는 결과가 나왔을 때도 동지들은 아직 방심하기는 이르다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격리를 하라고 지속적으로 충고했습니다.  


 

 그런데 일요일까지 음성이라는 결과가 나오자 저는 어느 정도 불안감을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월요일에 출근을 할 텐데 큰 의미가 없겠다 싶었죠. 그리고 지금도 별다른 증세가 없이 잘 살아있습니다. 아직까지도 미스터리입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를 생각해봤습니다. 두 가지 정도의 가설을 세울 수 있겠더군요.


첫 번째는 제가 뉴스에서 말하는 코로나19가 침투하지 못하는 특별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거나,


두 번째는 이미 제가 코로나19를 조용히 겪고 지나갔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동거가족이 있고 평소 아이들과 스킨십을 굉장히 열심히 하는 저이기에 아이들에게 옮기지 않았을 가능성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 번째는 신뢰도가 PCR보다는 신속항원 검사나 자가진단키트가 떨어져서 사실은 제가 확진인데 못 잡아내는 경우입니다.



제가 큰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하지 않는 이상 진짜 이유는 계속 알 수 없겠죠. 그리고 이렇게 음성이라고  글로 방정을 떨다가 내일이라도 걸려버릴지도 모를 일입니다.


 현재 우리 부서는 17명의 인원 중에서 미확진자가 4명입니다. 그중 제가 있는 것이죠. 요즘 저를 보시는 분들마다 확진자와 밥을 먹고도 살아난 생존자라는 수식어를 붙여주시고 계십니다.

 

 게다가 오늘 또 한 분의 생존자께서 남편분의 확진으로 PCR 검사를 받으러 조기 퇴근을 하셨습니다. 최후의 3인으로 줄어들지 않기를 바라지만 어찌 될지 걱정입니다. 이게 무슨 서바이벌 게임도 아닐진대 결말이 어떻게 될지 저도 모르겠네요. 어차피 상금을 주는 것도 아니니 최후의 1인이 된다는 것이 크게 의미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점점 제 주위로 코로나의 포위망이 죄어온다는 느낌은 피하기가 어렵네요.



 아무튼 혹시라도 제가 코로나에 걸리게 되면 이 글 때문이라도 엄청나게 창피할 테니 관련된  쓰지 않조용하게 잘 요양을 하다가 돌아오겠습니다. 무운을 빌어주세요.  


#신속항원검사 #자가진단키드 #음성 #자가격리 #서바이벌게임 #최후의생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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