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머리카락은 참 고생이 많은 친구입니다. 왜냐하면 주인이라는 작자가 살아오면서 별의별 짓을 다해왔기 때문이죠.
제 머리 관리에 대한 집착은 꽤 오래 전인 중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저는 중학교 3학년 졸업식 예행연습 때 학생주임 선생님께 머리를 싹둑 잘린 경험이 있습니다. 그 시절에는 중학교 때도 두발 단속을 했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기분이 풀어진 예비 고1의 머리는 기준보다 좀 길었고 그분께는 참을 수 없을 만큼 거슬렸던 모양입니다.
차라리 한 대를 쥐어박던지 엎드리게 해서 벌을 세우던지 지금은 상상할 수 없지만 그 시절이라서 가능했던 여러 가지 해결 방법(?)이 충분히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결과적으로 그 자리에서 가위로 머리를 싹둑 잘리고 말았습니다. 한 5cm 정도 잘렸을까요? 한 움큼이나 되는 머리칼은 저와 작별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떠나고 말았습니다. 너무 당황하면 할 말이 없다고 하잖아요. 그때가 바로 그랬습니다. 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머리채를 잘리고 말았죠.
소심한 반항의 의미로 쥐가 파먹은 것 같은 머리 상태 그대로 졸업식에 참석하는 것으로 제 중학교 생활을 마무리했습니다.
그래서 대학교를 갔을 때 처음으로 머리도 길러보고 염색도 해봤습니다. 염색을 해보니 새로운 세상이 열린 듯했습니다. 하지만 당연히 금세 좋은 시간은 지나갔겠죠? 저는 국가의 부름을 받아 다시 머리를 포기했습니다.
15개 이상 해당되면 중독자
군대에 가면 머리에 대한 스트레스가 엄청납니다. 남자들이 군대를 가기 싫어하는 것은 단지 갇혀서 지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대부분의 젊은 남자들은 짧은 스포츠머리가 어울리지 않습니다. 저역시도 모자란 외모를 헤어스타일로 커버해야 했기에 상황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정도쯤 되면 머리로 인한 수모는 마무리될 법도 하지만 결코 그리 호락호락하게 쉬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회사에 입사해서도 제 머리카락에 대한 수난은 계속된 것이죠.
일단 출근을 하면 왁스를 바른 제 머리를 마음껏 손으로 망가뜨리며 "니는 머리를 이래 바로 좀 하고 댕기라"라고 말하시는 꼰대 부장님이 계셨고,
"너는 머리가 왜 그래? 아침에 머리를 믹서기에 넣고 돌렸어?"라고 하시는 선배도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학생이나 군인처럼 헤어스타일에 통제를 받는 상황은 썩 유쾌하지 못했습니다. 화가 날 정도였죠. 이런 일들이 누적되니 저는 헤어스타일에 대해서 더욱 집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벼르고 또 벼르며 때를 기다렸습니다. 처음 회사에 들어와서는 머리에 무슨 짓을 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눈살을 찌푸릴 정도만 아니고 회사 내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할 일만 잘하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고 과감하게 다양한 변화를 주기 시작했습니다.
회사에서의 연차가 쌓이는 것은 머리에 대해서 간섭하는 사람이 없어진다는 점에서 큰 장점이었습니다. 그 후로 계속 머리스타일을 수시로 바꿔나갔습니다. 파마에 염색, 꽁지머리까지 섭렵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제 제게 가능한 헤어스타일은 삭발만 남아있을 뿐이네요.
그래도 이런 경험을 해보니까 더 나이가 들기 전에 해봤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사진을 연도별로 하나씩 살펴보며 헤어스타일의 변천사를 보니 눈이 썩을 것 같아 차마 못 보는 내용도 있지만 이런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보려 합니다.
두피도 이제 예전 같지 않아서 당분간은 어쩔 수 없이 차분한 색상으로 헤어스타일을 유지해나갈 예정입니다.
초창기 머리 2012년 경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파마머리, 2013년 경, 흑역사 인정
청담동에서 비싸게 커트를 했지만 개인적으로 안 어울림, 2015년 경
3대 7 가르마, 2016년 경
대충 망한 방송 머리, 방송도 망해서 이것도 맘에 안 듦, 2017년 경
염색머리, 2018년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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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띠까지 할 수 있는 뻔뻔함, 언제인지 알 수 없음
이제 거의 굳어진 머리스타일, 2021년 경
탈색+탈색+염색 후, 2022년 경
찬찬히 다시 살펴보니 제가 머리에 많은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 자리를 빌려 제 머리카락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