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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깅과의 전쟁

by 페르세우스



얼마 전에 아이들과 아차산 가면서 쓰레기를 한 무더기 주웠던 이야기를 글로 남긴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적당한 표현밖에 생각나지 않아서 옛날 사람처럼 제목을 '환경미화와의 전쟁'으로 했더랬죠.

나중에 이런 활동에 대해 사용할 수 있는 요즘 사람들이 만든 신조어가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https://brunch.co.kr/@wonjue/160




바로 '플로깅'입니다. 조깅을 하면서 길에 있는 쓰레기를 줍는, 체육활동과 자연보호활동이 합쳐진 개념을 의미합니다. 2016년 스웨덴에서 처음 시작되었으며 '이삭 줍기'를 의미하는 스웨덴어 플로카 우프(Plocka Upp)와 영어 조깅(jogging)의 합성어입니다.

우리나라에는 대략 2018년쯤부터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등산을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다는 의미인 클린 하이킹 (clean hiking) 개념과도 꽤 유사합니다.



이 단어에 대해서 제대로 알게 된 것은 제가 살고 있는 지역의 사회복지관에서 주관하는 플로깅 이벤트를 통해서였습니다. 생각보다 적은 20명의 참여자만 선정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후다닥 신청했는데 다행히 많이 늦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가족 4명이 다 뽑혔습니다.

이런 활동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인기가 있었으면 하는데 생각보다 그렇지 않은 건가 싶어서 살짝 안타까운 마음도 듭니다.




토요일에 하는 첫 번째 오리엔테이션에서는 플로깅에 대한 설명과 활동하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PT는 이야기만 하는 것으로 마무리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쇠뿔도 단김에 뺄 기세로 교육에 참여한 분들과 함께 첫 번째 플로깅을 함께 나갔다고 합니다. 저는 안타깝게(?)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함께 하지를 못했네요.

첫 번째 공식 플로깅 활동 중에 한 컷...



첫 번째 플로깅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어땠냐고 물으니 별의별 쓰레기가 다 있었다고 합니다. 플로깅에 참여하시는 할머니들에게 아이들이 칭찬을 많이 받았다고 해서 어깨가 으쓱하기도 합니다.

그러고 나서 아이들이 가지고 온 플로깅 키트를 찬찬히 살펴봅니다. 하나씩 확인해보니 다양한 아이템들이 있습니다.



구성품 : 목장갑, 대나무 칫솔, 고체 치약, 쓰레기봉투(생분해 성분), 집게, 시가랩(담배꽁초 쌀 수 있는 종이) 등


하나하나 살펴보니 익숙한 물건들인데 시가랩이라는 것은 처음 보네요. 담배꽁초를 안전하게 처리하기 위해 개발된 제품이라고 합니다. 그냥 좀 직설적으로 이런 생각도 듭니다. "피고 버리는 놈 따로, 치우고 버리는 분 따로."

http://www.planet-times.com/862




첫 번째 플로깅에 참여하지 못했던 저는 지난 선거일에 다행히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갈 예정이었는데 알고 보니 휴관일이었던 것이죠. 그러면 플로깅이나 하자고 이야기가 된 것입니다.

두 번째 플로깅을 나서며..
다 함께 치우자! 동네 한 바퀴.



원래 처음에는 한강으로 나가자!!!!

라는 것이 계획이었습니다. 20리터짜리 쓰레기봉투를 채우려면 그 정도까지는 해야 되지 않겠냐는 생각이었죠. 20분 정도 걸어 나가면 한강이 나오기 때문에 진정한 조깅을 겸한 환경미화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였죠.




그런데 계획은 초장부터 틀어졌습니다. 동네를 나오자마자 내려오는 길에 줍게 된 쓰레기만 해도 한 무더기였기 때문이었죠. 그것 때문에 시간이 걸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한강도 나가고 싶고 오다가다 얼굴을 아는 사람이 많다 보니 집 근처에서는 줍고 싶지 않은 마음이 좀 있었나 봅니다.


아이들에게 한강 안 갈 거냐고 슬그머니 이야기를 했지만 눈앞에 보이는 환장의 쓰레기 뷔페를 그냥 넘어갈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바퀴를 돌면서 부지런히 주워 담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20리터 봉투를 가득 채우고 세 번째 플로깅을 마무리했습니다.




쓰레기봉투를 발로 꾹꾹 눌러 담으면서 결산을 해봤습니다. 무슨 쓰레기가 제일 많았는지 말이죠. 참고로 부피가 아닌 개수로 순위를 정했습니다. 궁금하신가요? 소리 질러~~!!


5위는 길에서 나눠주는 홍보용 전단지입니다.

4위는 별의별 잡다한 비닐봉지였습니다.

3위는 플라스틱 페트병, 테이크아웃 컵입니다.

2위는 선거홍보용 명함이었습니다. 버리실 거면 그냥 받지 않으면 될 텐데요.. 책갈피로도 쓰면 되잖아요.


대망의 1위는.... 두구두구두구두구!!!!!

바로 담배꽁초였습니다. 압도적 1위였습니다.




제가 그날 주운 담배꽁초만 해도 최소한 100개는 넘었던 듯합니다. 쓰레기를 주우면서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솔직히 기분이 많이 불쾌했습니다. 제 주위에도 담배를 피우면서 담배꽁초를 함부로 버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기에 아마 담배를 피우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 그렇게 행동한다고 봐야겠죠. 그러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담배꽁초가 버려지고 있는지 순간적으로 대략 계산이 되었기 때문에 더욱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참고로 담배꽁초는 타다 남은 담뱃잎, 담배 섬유, 필터 등으로 구성됩니다. 필터 소재는 ‘셀룰로스 아세테이트’의 극세사 다발로 포장되며 이는 목재, 목화씨 등 식물에서 유래한 재료로 제조되는 미세플라스틱입니다. 분해에 걸리는 시간은 14년이며 온도, 습기, 가열된 질소 함량 조건이 미생물 분해를 어렵게 만든다고 합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담배꽁초와 물이 닿았을 때 유독물질과 섞여 나오는 침출수입니다. 여기에는 인체나 환경에 심각한 오염원인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 니코틴과 비소와 카드뮴, 포름알데하이드, 사이안화수소, 휘발성 유기물질이 포함됩니다.

미국식품의약국(FDA)는 98개의 담배꽁초 침출수에 포함된 화학물질 중 1/3은 매우 유독하고 10%는 급성 및 만성 독성을 나타낸다고 밝혔습니다. 정말 심각하죠?


https://www.sciencetimes.co.kr/news/%EB%8B%B4%EB%B0%B0%EA%BD%81%EC%B4%88-%EC%95%84%EB%AC%B4-%EB%8D%B0%EB%82%98-%EB%B2%84%EB%A6%AC%EB%8A%94-%EC%88%9C%EA%B0%84-%EC%83%9D%ED%83%9C%EA%B3%84%EA%B0%80-%EB%A9%88%EC%B6%98%EB%8B%A4/




앞으로도 플로깅을 하면 담배꽁초보다 많은 쓰레기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그런 티를 내지 않고 정말 수고했다고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다음번에 플로깅을 할 때는 눈을 질끈 감고 한강으로 바로 나갈까 봐요. 한강에는 담배를 피지 못하게 하니 동네보다는 담배꽁초가 덜하겠죠?



#플로깅 #환경미화 #사회복지관 #담배꽁초 #플라스틱병 #비닐봉지 #선거용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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