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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을 위한 긴 여정

사실 너희의 꿈이 농사꾼 인지도 모르겠구나..

by 페르세우스



지난 주말에는 오랜만에 가족들과 다 함께 친가인 경남 진해를 다녀왔습니다. 현재는 창원으로 불리는 곳이죠. 대략적인 일정은 토요일 새벽에 나와 일요일 낮에 올라오는 것이었습니다. 해도 뜨기 전인 5시 반에 모두 일어나 준비를 마친 뒤 정확히 6시에 집을 나섰습니다.


보통 새벽에 서울에서 출발하면 진해까지 3시간 50분에서 4시간 10분 정도가 소요됩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내비게이션에는 4시간 40분이 찍히더니 시간이 점점 늘어납니다. 이상한 노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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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생각을 해보니 답이 금세 나왔습니다. 이번 주에 벌초를 가는 분들이 많아서 길이 막히는 것이었습니다. 수도권을 벗어나지도 못했는데 도로의 정체가 꽤 심해서 당황스러웠죠.

3시간 만에서야 다리를 한 번 펴봅니다.



다들 곤히 자고 있는 틈을 타서 차를 열심히 몰아온 끝에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합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저는 확실히 운전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오래 앉아 있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죠. 그런 걸 보면 이렇게 엉덩이가 가벼운 제가 고등학교나 대학교 때는 어떻게 공부를 했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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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 무렵 제 고향 진해에 도착합니다. 늘 그랬듯 최초의 목적지는 친가가 아닌 아버지가 운영하시는 텃밭입니다. 아이들의 텃밭 사랑은 대단할 정도입니다. 그야말로 진정한 사랑입니다. 예전에도 한 번 언급했지만 물욕이라고는 없는 1호가 할아버지께 나중에 이 텃밭은 물려받아 자기가 가꾸겠다는 소리를 했을 정도니까요.


식물에 대해 관심이 많은 아이들이다 보니 20여 가지에 가까운 작물을 키우는 할아버지의 텃밭은 놀이터이자 공부방입니다.

텃밭에 와서 정말 기분이 좋아 나무마저 사랑스러워 보이는 1호
텃밭으로 가는 길에 있는 고등학교



텃밭 입구인 고등학교 앞에 주차를 하고 천천히 등산로를 거슬러 올라갑니다. 2~3분 정도 걸으면 꽤 지대가 높은 곳에 아버지의 텃밭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꽤 전망이 좋은 곳이죠.

텃밭 3호



퇴직을 하시고 이곳에서 햇수로만 10여 년 이상 농사를 지어오셨으니 거의 농부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이시죠.

아이들은 텃밭에 도착하자마자 할아버지와 짧은 인사를 나누고 곧바로 고추를 따는데 투입됩니다. 레를 먹은 것들이 간혹 보이지만 농약을 전혀 뿌리지 않기 때문에 이 정도는 감수할 수 있습니다.

고추 총각들



다양한 야채들이 여기저기서 눈에 들어오니 아이들은 구경하느라 신이 나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점은 비가 적어서인지 가까이서 보니까 많이 말라 있다는 사실입니다. '날이 가물어서 큰일이다'는 말을 통 흘려서 듣곤 했는데 직접 보니 실감이 납니다.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쌈야채, 비트, 고구마, 오이



파가 집에 없어서 가져가야 한다고 엄마가 말을 하자 아이들은 또 긴급하게 투입됩니다. 일단 뭐가 되었든지 시켜주기만 하면 신이 나서는 할아버지의 작업을 보며 열심히 따라 합니다.

파 다듬는 둥이들, 이 아이들은 농부인가 학생인가?



시커먼 그물이 쳐져있길래 무엇인가 궁금해졌습니다. 아이들이 할아버지를 도와서 함께 걷고 있길래 물어봤더니 무씨를 심어놓은 곳이라고 합니다. 아주 자그마한 무싹이 돋아나 있는 모습을 관찰하는 2호의 모습이 사뭇 진지합니다.

무를 심은 그물을 걷어내고 싹이 난 것을 살펴보는 아이들



호박도 있고 박도 있고 동네 마트에서 보기 힘든 야채들도 눈에 띕니다. 아직은 더 쑥쑥 자라야 하는 옥수수도 있고요.

호박&박
옥수수도 있지요



선명한 색의 나비는 사람이 무섭지도 않은 지 가까이 다가가도 날아서 도망가질 않네요.




짧은 시간 동안이었지만 아이들은 텃밭에서 많은 것들을 하고 내려갑니다. 물론 그 정도로는 부족했던 모양입니다. 이따가 다시 올라와서 잡초를 뽑고 싶어 하는 강력한 의욕을 보였으나 산모기가 너무 기승을 부려서 모든 가족들이 만류하는 바람에 고집을 꺾을 수밖에 없었죠. 다음 기회를 또 노리기로 했습니다.


왔다 갔다 할 때마다 굉장히 힘들지만 제 고향 진해는 참 좋은 곳입니다. 몇 시간씩 장거리를 차로 오고 가지만 막상 와보면 아이들도 좋아하니 더할 나위가 없죠.

진해관광지도(출처 ; 진해구 블로그)



이곳은 뒤쪽은 산이 둘러싸고 있고 앞에는 바다가 탁 트여있는 곳인 말 그대로 배산임수의 지형입니다. 20년 동안 살 때는 그냥 좁은 시골이라 생각했는데 어른이 되고 나니 참 살기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텃밭에서 올려다보는 산
높은 곳에서 바라다보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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