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증편향이라는 심리학 용어가 있습니다. 원래 가진 생각이나 신념을 확인하고 싶은 경향성을 뜻합니다. 자신이 늘 맞다고 여기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성향을 말합니다. 보통 이 확증편향은 정치 같이 민감한 분야에서 자주 사용됩니다.
하지만 이 확증편향은 자녀를 키우는 부모에게 나타나기도 합니다. 자녀보다 부모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더 옳다는 신념에서 말이죠. 저도 자주 제가 말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며 아이들이 그것을 따라야 한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습니다.
그런 저의 생각을 좀 더 유연하게 바꿔야겠다고 마음먹게 만든 사건이 잇달아 생겼습니다.
사건 1
등장인물 : 아빠, 1호, 2호
아이들에게는 매일 줄넘기를 500개씩 하는 자신과의 약속이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 지키지만 그렇지 못한 날도 생깁니다. 어느 날 1호가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줄넘기를 못 했다고 말하자 저는 화가 좀 났습니다. 그 약속은 저와의 약속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그러자 1호가 능청스럽게 밤 10시가 다 된 시간에 양말을 주섬주섬 신는 시늉을 하더니 줄넘기를 하고 오겠다고 합니다. 제가 당했네요. 오밤중에 줄넘기 500개를 해서 숙면을 취할 수 있을 리 없기에 다음 날 아침에 아빠와 일찍 일어나서 나가자고 절충안을 찾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었고 저와 아이들은 7시에 일어나 다 함께 집 밖으로 나갔습니다. 줄넘기를 하기에는 몸이 무리가 될 것 같아서 동네 산책을 셋이서 하자고 새로운 제안을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아이들과 10~15분 정도 살고 있는 단지를 돌고 들어왔습니다.
잠도 덜 깬 아침 댓바람부터 산책이라니!!!!!
그런데 문제는 그날 저녁 생겼습니다. 1호가 아침에 함께한 시간이 마음에 들었는지 내일도 아침에 일어나서 다 함께 산책을 하자고 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저는 미라클 모닝을 시전할 수 있는 뛰어난 의지의 한국인이 아닌 올빼미 족에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침에 그렇게 움직이기 귀찮았던 것이죠.
교수님, 지금 하신 말 확실한 정보죠?
그렇지만 그런 이유로 아이가 스스로 건강관리를 하고 아침 시간을 알차게 보내겠다는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오늘도 아이들과 걷고 말았죠.
건강관리에 대해 차일피일 핑계를 대며 미루던 제 자신에 대해 아이의 의지를 통해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사건 2
등장인물 : 아빠, 2호
2호가 입시미술을 다녀온 저녁, 제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서 잘 때 침대로 오라는 당부를 했습니다. 재미난 이야기를 해주려고 그러는 건가 싶어서 아이들이 잘 준비를 마치고 누워있는 2호 곁으로 갔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이야기는 그리 가볍지 않았습니다.
어제 수업시간에 닭을 그리는 연습을 했는데 선생님이 알려준 방법대로 되지 않아 애를 먹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2호가 자신의 지도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그린 것처럼 생각했는지 평소보다 강한 어조로 혼을 냈다는 것이었습니다.
눈물이 왈칵 솟아오르는 느낌도 들었답니다. 선생님이 다른 학부모와 상담하는 동안 집에 그냥 와버릴까, 다른 학생을 지도할 때 몰래 와버릴까도 생각했다고 합니다. 잠자코 듣고 있던 저는그동안 학원을 다니면서 아이에게 이런 일이 한 번도 없었기에 화가 나기도 했지만 그 이야기의 결말이 궁금했습니다.
결국 2호는 끝까지 4시간의 수업을 마치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밖으로 나오니까 기분이 나아졌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마트에서 무거운 것을 나르고 있는 아저씨, 가게에서 일을 하고 있는 아주머니, 배달을 하고 있는 남자, 너무나도 피곤해 보이는 얼굴을 한 중학생 형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힘든데 이 정도는 이겨내야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선생님께 전화를 드려 자초지종을 물어보고 아이의 입장을 대변해주어야 할지에 대해서 고민했던 제게 아이의 태도는 제가 생각했던 것에 비해 훨씬 어른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부모라는 존재는 모름지기
아이들을 보호해야 하고
세상 사는 방법을 가르쳐야 하고
솔선수범을 해야 한다고
부모의 생각이 더 지혜로울 거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이랬던 제 가치관을 이제는 좀 내려놓고 바꿔도 되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이번에 아이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 많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三人行, 必有我師焉.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
(삼인행, 필유아사언. 택기선자이종지, 기불선자이개지)
이렇게 공자께서도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가면 거기에는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고 하셨으니 저는 아이들에게 이제 부지런히 배워야겠어요.
제 스스로 배우는 것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키우면서 배울 수 있는 교훈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 좋은 여운이 많이 남는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