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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르세우스 Oct 25. 2022

결국 이번에도 깨닫지 못했다. 캠핑이 왜 좋은지..



 지난 주말 저는 또 한 번 무모한 도전을 하고 맙니다. 올해 3월에 시도했다가 적당한 추억과 큰 고생을 안겨준 캠핑카 여행을 추진하게 된 것이죠.


 첫째 날 실내 히터가 설정 오류로 꺼지면서 새벽 3시 반에 실내온도 14도를 경험했던 저는

"집 떠나면 고생이다"

"이불 밖은 위험해"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일찍 죽는다" 

라는 교훈을 깨달았지만 여섯 달만에 잊어버린 모양입니다.

https://brunch.co.kr/@wonjue/164




 물론 제가 다시 반년만에 캠핑카 여행에 도전한 이유는 많았습니다.

1. 아이들이 지난 캠핑을 너무 좋아했기에

2. 아이들과 보낼 시간이 점점 없어질 것이기에

3. 여행은 아이들을 성장시킬 수 있기에

4. 고생 많은 아내의 휴식을 위해

5. 브런치 글감을 위해

6. 그래도 이번이 두 번째 도전이니까 저번보다는 잘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생겨서


1~5번을 생각했더라면 캠핑 말고도 다른 활동도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그런데 6번에 대한 제 생각은 완벽한 착각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저는 또다시 제 자신을 대환장파티의 구렁텅이로 밀어넣고 있었던 것이죠.


착각은 자유지만 착각의 대가는 어마어마한 것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일단 캠핑카와 캠핑장을 투트랙으로 예약합니다. 캠핑장비를 빌려서 가는 것도 잠시 고민했지만 텐트를 아이들을 데리고 어른 혼자서 설치하고 세팅을 할 자신은 없습니다. 신속하게 그 선택지는 포기합니다. 이런 점에서 전 제 자신을 너무나도 잘 아는 사람이었죠.


어렵게 캠핑카와 캠핑장 예약을 마친 뒤 준비를 합니다. 준비물도 적고 식단을 어떻게 구성할 지도 적어봅니다. 저는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J형(계획형) 인간이니까요.

J형의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캠핑 준비




 거기에 저는 갑자기 상상도 하지 못한 변수를 주기로 합니다. 아이들의 친구 한 명에게 같이 가겠냐고 제안을 해보라고 한 것입니다. 제안했던 시기가 주초였기에 금요일에 2박 3일로 출발하는 캠핑을 수락을 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생각을 했지만 혹시 모르니 물어보라고 아내에게 부탁해본 것이었죠.


 그런데 ㅇㅇ이네 어머니께서는 흔쾌히 수락을 합니다. 아이들이 친구와 함께 놀러 가면 재밌겠다고 생각해서 제안을 한 것이었는데 인간의 마음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간사해서 수락을 받고 나니 또 새로운 걱정이 시작합니다. ㅇㅇ이도 캠핑이 처음이라고 하니 더 불안해지긴 했던 것이죠.


ㅇㅇ이 어머니께 뭘 믿고 두 번째 캠핑을 가는 제게 아이를 맡기느냐고 여쭤보았더니 이렇게 답을 하십니다.





 이 글을 읽고 기뻐해야 될지 울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제가 아는데 이런 평가를 받을 정도의 사람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죠.


내가 초등학생 셋을 케어할 수 있을까?

캠핑카에서 네 명이 잘 수 있을까?

먹을 것이 모자라지는 않을까?

두 번째 캠핑인데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점점 쌓여가지만...


 일단 일은 벌어졌으니 어쩌겠습니까. 수습을 하나씩 해나가야죠. 금요일 아침이 밝았고 캠핑카를 빌려 집으로 옵니다. 기본 캠핑 세트에 있는 음식과 함께 먹을 추가 준비물들을 실어놓은 뒤에 이불 짐, 침낭, 옷가지까지 쑤셔 넣습니다.

2박 3일 동안 일용할 양식들




 아이들 셋을 태운 뒤 금요일 오후 세 시에 남자 넷은 캠핑카를 타고 홍천으로 출발합니다. 남자 넷 중에 얼굴색이 거무튀튀한 사람은 단 한 명뿐입니다. ㅇㅇ이는 수학학원 보강을 밤 열 시까지 하고 올 정도로 열정을 보였고 2호는 며칠 전부터 설레서 잠을 설쳤다니 말 다했죠.




2시간의 운전을 거쳐 홍천 깊숙한 곳에 위치한 캠핑장에 도착합니다. 이름이 참 낭만적입니다. 여기가 우리의 2박 3일간의 베이스캠프입니다. 경치도 참 좋네요. 단풍이 울긋불긋 해지는 가을산도 좋고 지척에 계곡도 있으니 그야말로 놀기 좋은 곳입니다.




 일단 2박 3일을 버티려면 제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합니다. 그러려면 3월과는 달리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시켜서 제 에너지를 아껴야겠죠. 이미 아이들에게도 단도리를 해두었기에 내리자마자 일사불란하게 일을 지시합니다. 업무분담을 잘하지 못하면 제가 힘들어지는 것은 뻔하니까요.




첫째 날 저녁은 삼겹살과 소시지와 김치찌개입니다. 아이들이 걸신이 들린 듯 엄청나게 잘 먹네요. 집에서도 좀 잘들 먹으면 좋으련만.. 그렇다고 밥 먹이려고 캠핑을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고..

삼겹살, 소시지, 김치찌개 그리고 먹깨비들




 지난 3월에 하지 못했던 캠프파이어도 합니다. 아이들이 불 앞에서 엄청 신나 하네요. 널브러져서 불멍을 하고프지만 혹시라도 아이들이 불에 너무 가까이 가서 다칠까 싶어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하룻밤이 지나가고 둘째 날 아침이 되었습니다. 저는 거의 좀비와 같은 모습으로 일어납니다. 1층에서 아이들이 자고 2층에서 저와 ㅇㅇ이가 잤는데 11자로 사람 두 명이 누워서 자고 있던 모양이 직각형태로  바뀌어있네요. 나중에는 몸을 뒤집으면서 거꾸로 눕는 신기술을 선보이길래 너무 놀라서 깨기도 합니다.


 저희 집 1호도 잠버릇이 만만찮다고 생각했지만 이 친구도 만만치가 않았던 것이죠.



 아침을 컵밥으로 간단히 먹입니다. 매번 해먹이기에는 제 능력이 따라주지를 못하네요. 그런데 컵밥도 다들 각자 하나씩 먹고 라면까지 먹습니다. 평소 이 정도의 먹성이 아닌데 놀라울 따름입니다.

컵밥이라도 괜찮아




 다 먹이고 정리를 하고 나서는 이제 놀아야 합니다. 캠핑장 옆에 있는 계곡으로 나가봅니다.


 계곡 구경을 하면서 겨울잠을 자고 있던 개구리도 발견하고 물수제비도 열심히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냅니다. 그러다가 저는 갑자기 아이들에게 기괴한 제안을 합니다.

까꿍~~~




"얘들아, 우리 여기를 건널 수 있게 돌다리를 만들어보자!!" 


다리 이름도 제가 마음대로 짓습니다.


"할머니도 건널 수 있는 돌다리"


저쪽으로 넘어가기 위해 밟을 수 있는 큰 돌은 두세 개 정도뿐입니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입니다. 아이들은 저와 수준이 비슷했는지 그때부터 일꾼으로 변신합니다.

아무것도 밟을 것이 없어 건널 수 없던 개울



평평한 바위를 모아 두고 커다란 돌멩이들을 던져 넣습니다. 그리고 작은 자갈들을 채워 넣고 마지막에는 떨어진 낙엽으로 빈틈을 채웁니다. 손이 시리지만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공정률 60%, 일꾼 1호




 두 시간 정도를 열심히 허리를 구부리고 작업을 한 끝에 결국 완공을 하고 맙니다. 처음 사진을 보면서 완공된 사진을 보는 아이들도 기분이 좋은 모양입니다.

결국 완성해버린 돌다리

이 정도 해냈으면 인간승리 인정?!




저는 돌에 손가락이 다치기까지 했지만 말 그대로 부상투혼을 발휘해 석재 교량 건설을 진두지휘합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어처구니없는 부상투혼




 결국 오후에는 맛이 가서 아이들의 점심을 챙긴 뒤에 의자에 거의 눕다시피 하면서 꿀맛 같은 낮잠을 잡니다. 사실 반강제 취침입니다.  

 아이들의 신발이 계곡에 빠져서 돌아가면서 젖는 바람에 이렇게 말리는 동안 제 신발을 빼앗겼기 때문이었죠. 계속 의자에 앉아있으면 당연히 자는 것 말고는 할 것이 없습니다.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신발이 젖어버리는 바람에 내 멘탈도 젖어버렸다..




 오후에 아이들과 영화도 하나 보고 저녁 준비를 하기 시작합니다. 토요일이라 그런 1박 2일의 캠핑을 하러 온 캠퍼들이 점섬 늘어납니다. 한산했던 캠핑장이 삽시간에 북적북적하네요.


 그 많은 캠핑장 데크 중에서 캠핑카를 가지고 온 집은 저희 집뿐입니다. 좀 창피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런 것 따위 제가 아랑곳 할리 없지요.


 저녁 메뉴는 목살, 닭꼬치, 새우 라면입니다. 이번에도 역시 아이들이 엄청 잘 먹어서 저는 눈치를 보면서 먹었네요. 여차하면 밖으로 나가서 더 사 오면 되지만 이틀째 저녁 때문에 아이들만 두고 나가기도 어렵고 더욱이 펼쳐진 캠핑카를 다시 접어서 나가기 또너무 귀찮습니다.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져 버린 음식들




 두 번째 캠프파이어를 할 때는 아이들이 제법 준비를 많이 했습니다. 장작으로 부족하다 여겼는지 주위에 있는 나뭇가지들을 집어오고 낙엽까지 주워와서 박스에 담아두네요. 거기에 불씨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상태에서 낙엽과 부채질로 다시 불을 살려보겠다며 돌아가면서 난리도 아닙니다.

 (동영상 참고) 저 짓을 열 번이 넘게 하더니 결국 저한테 혼이 나고서야 그만둡니다.  

밤에 오줌 싼다 얘들아~~!!




 집에 가는 날 아침이 드디어 밝았습니다. 눈물이 날 정도로 기쁩니다. 날씨가 흐려서 이슬비처럼 내리는 듯 하지만 제 마음에서 내리는 기쁨의 눈물 같이 느껴지네요. 둘째 날은 잘 잤느냐고요? 둘째 날은 더욱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범인은 ㅇㅇ이의 잠버릇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근처에 있는 양계장에서 "꼬끼오"라고 10~20분마다 울어대는 닭 때문이었습니다. 한밤중에도 울어대는 녀석은 새벽 2~3시에도 계속 울어댔고 잠귀가 밝은 저를 너무나도 고통스럽게 만들었죠. 그나마 아이들은 좀 잤다고 하니 다행입니다.


 얼른 일어나자마자 아침 준비를 하고 후다닥 먹입니다. 마지막 날이라 먹을 것이 좀 부실해서 아이들에게 왠지 미안합니다. 라면에 햇반뿐이었거든요. 밥을 다 먹고 좀 더 캠핑장에 있고 싶다는 아이들을 독려(?)해서 짐을 후다닥 쌉니다.


아름다운 사람은 떠난 흔적도 아름답다고 했던가요?




 그 결과 그날 아침 제일 먼저 퇴실한 팀이 되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차가 많이 막혀서 예정시간보다 30분이 더 걸렸네요. 아이들을 내려주고 또 캠핑카를 반납하러 왕복 1시간 운전을 더하고 나서야 제 올해 두 번째 캠핑은 끝이 났습니다.


 그날 오후 내리 세 시간을 기절하듯 자고 일어났네요. 아이들에게 힘들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좋았다고 합니다. 결국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에 져서 앞으로 일 년에 한 번은 캠핑카로 여행을 가자는 약속을 하고야 말았네요. 대신 닭울음소리로 잠을 설치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 그 캠핑장은 가지 않겠지만요..


 이번에는 캠핑의 매력에 흠씬 빠져볼 수 있으리라 여겼지만 결국 또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말았네요. 아이들만 감동받는 캠핑이 아닌 제 자신이 캠핑의 진정한 매력을 느끼려면 전문 캠퍼들을 따라 가봐야 할 모양입니다. 물론 저는 당분간 누가 데려가 준다 해도 가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한 줄 요약 : 결국 이번에도 깨닫지 못했다. 캠핑이 왜 좋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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