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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빼로를 싫어하게 된 이유

by 페르세우스



11월 11일은 개인적으로나 대외적으로도 의미가 여러모로 있는 날입니다.

일단 아내와 처음 만난 날이기도 하며 어머니께서 수술을 받으시고 다시 태어나신 날이기도 하며 친조카가 태어난 날이기도 합니다.


공식적으로 달력에 기재되어 있는 것으로 따져보면 오늘은 또 농업인의 날이자 지체장애인의 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비공식적으로는 가래떡 데이로도 회자되지만 아무리 여러 날이 있다고 한들

빼빼로 데이라는 이름보다 더 알려져 있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11월 11일은 여러모로 특별한 날이지만 빼빼로 데이라는 이벤트는 제게는 썩 좋지 않은 기억도 만들어준 날이기도 합니다.


때는 바야흐로 제가 입사한 지 2~3년 차가 되던 해였습니다. 근무하던 사무실에서 막내였던 저는 빼빼로 데이라고 같은 건물에 근무하는 여직원들(약 20명)께 모두 빼빼로를 돌렸습니다.


빼빼로 데이에 보통 엄청난 매출이 발생하는데 저도 거기에 일조를 한 것이죠.

출처 : https://cm.asiae.co.kr/article/2022110410350422821



그간 크든 작든 도움을 주신 분들이 많았기에 그렇게 한 것이었죠. 한편으로는 이런 선물을 남자들에게 주는 것은 서로 민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여직원들에게만 드린 것이었는데 문제가 거기서부터 생겼습니다.


제게 빼빼로를 받은 여직원들께서 다른 남직원들에게 "ㅇㅇ씨 좀 본 좀 받아요, 이렇게 빼빼로도 주잖아요"라고 말을 하셨고 급기야 한 남자 선배가 저 때문에 남직원들이 욕을 단체로 먹는다면서 공개적으로 요즘 말로 저격을 하신 것이었죠.


결국 저는 그다음 해 빼빼로 데이가 왔을 때는 가격이 가장 저렴한 빼빼로를 전체 직원들에게 다 돌렸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또다시 "너는 되게 할 일이 없나 보다"라는 하셨습니다. 그냥 제가 싫었던 것이었죠. 그 이후로는 빼빼로 데이 때 아무에게도 주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 일은 10년이나 된 일이고 그 사람은 퇴직을 했기에 이제는 다 잊었습니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딱 일 년에 한 번, 오늘만 그때의 기억이 납니다. '그래, 그때 그런 일이 있었지' 수준의 기억이죠. 지금 시간을 되돌려 곰곰이 생각해보면 저는 그걸 나눠주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팠던 욕구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고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받으며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일 수 없다는 것을 빨리 깨닫지 못했던 것이죠. 멍청하지만 나름 철없고 순수했던 시절의 제가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오늘 아침에 출근을 하니 빼빼로가 책상에 두 개 놓여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냥 보자마자 뜯어서 먹기도 하고 옆으로 밀어놓고 일을 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저는 형사처럼 탐문수사를 하면서 이 빼빼로를 누가 놔뒀는지 찾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누가 둔 것인지를 알게 되었고 그분께 감사인사를 전했습니다.




10년 전 그 시절 많은 직원들에게 빼빼로를 돌리고서도 고맙다는 인사를 절반 가까이 못 받았던 것이 솔직히 좀 서운했기에 저는 앞으로 그러지 말자고 생각했던 것이죠. 이것도 참 유치한 생각이긴 합니다. 그래도 어찌보면 빼빼로 데이의 아픈 추억은 저를 좀 더 경우 바른 사람으로 만들어 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줄 요약 : 뒤끝 있지만 경우는 바른 남자, 그게 바로 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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