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페르세우스 Jan 10. 2023

저는 돈이 아닌 추억이 아까웠던 거요!!

 


 연말에 1호가 열이 오르면서 아팠던 적이 있습니다. 아이가 눈이 온 날 밖에서 너무 열심히 노는 바람에 감기가 온 것처럼 보였죠. 다행히 독감 검사를 비롯해 코로나 검사를 받았지만 음성이 나와서 한시름 놓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난관은 뜻밖의 상황에서 생겼습니다. 아이는 아픈데 집에서 쓰던 체온계가 완전히 먹통이 된 것이죠. 이 체온계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아이들을 낳으면서 샀던 제품으로 10년이 넘은 제품입니다.(광고 아뉩뉘다~)

 생각보다 튼튼해서 오래 사용하긴 했는데 작년부터 부쩍 배터리도 빨리 방전되고 제대로 체온 측정이 되지 않는 등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예전 체온계




 아이의 몸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체온을 측정해야 하는데 체온계가 먹통이 되니 아내는 스트레스를 받는 모양이었습니다. 제게 당장 새로운 체온계를 구매해달라고 부탁을 했죠. 대부분 온오프라인 장보기는 제 담당이거든요.


 그런데 이상하게 금방 새로운 체온계를 골랐음에도 결버튼을 쉽게 누르지 못했습니다. 혹시라도 예전 체온계를 고쳐서 쓸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미련이 생겼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돈이 아까워서가 아닌 이 체온계와 함께한 세월들이 생각이 나서였습니다.

새 체온계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앓을 때면 이 옛날 체온계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이 녀석이 알려주는 숫자 하나에 긴장하며 불안해할 때도 많았고  안도하며 편히 잘 때도 있었으니 가족의 일상을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물건이었죠. 그렇기에 체온계를 보면서 그동안 겪어왔던 위기의 순간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듯 떠올랐습니다.

 제 기준에서는 엄청나게 신비로운 경험이었죠. 일기를 쓰기에 웬만한 일들은 일부러 기억하려 노력하지 않아 기억력이 시원찮은 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기억들이 떠오르니 이상하게 이제는 너무 오래되어 고장이 나서 쓰지도 못하는 체온계를 버리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찌 보면 주책이었죠. 그래도 아이의 건강이 우선이었기에 빠르게 결를 마쳤습니다.


 결국 새로운 체온계가 도착한 뒤 예전 체온계는 마지막으로 증명사진을 남기고 제 마음을 아련하게 만든 채 우리 집을 떠났습니다.



 물건을 정리하고 버리는데 선수인 제 입장에서는 옛 것을 보내고 새로운 것을 맞이한다는 송구영신이라는 사자성어를 무색하게 만드는 이색적인 경험이었네요.



한 줄 요약 : 술 마시고 쓴 글 아닙니다~!!



작가의 이전글 피싱에 당하는 새로운 경우의 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