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아이들과 함께 캠핑카를 빌려 캠핑을 2박 3일간 다녀왔습니다. 앞으로 2년 동안 힘닿는 대로 여행을 갈 계획이었는데 그 일환이었죠. 이번 여행이 조금 더 다른 점은 아이들의 여자친구를 데리고 갔다는 점입니다.
사실 아이친구의 부모님은 오후에 캠핑장에 후발대로 합류하기로 하셔서 제가 먼저 아이들을 데리고 움직이게 된 겁니다.
출발은 오전에 했고 캠핑장에 도착할 시간을 가늠해 보니 아무리 늦어도 오후 1시 정도였습니다. 휴게소에서 맛있는 군것질을 하고 가는 걸 감안하더라도 말이죠.
충주휴게소에서 자신의 취향껏 간식 냠냠
캠핑장에서는 오후 3시부터 입장이 가능하다고 하니 시간이 좀 애매해서 고민 끝에 괜찮은 아이디어를 하나 생각해 냈습니다. 바로 제천에 있는 캠핑장 근처의 덕주사라는 곳을 방문하는 계획입니다. 제천의 월악산 입구에 있는 덕주사는 꽤 유서 깊은 사찰입니다.
거기에 마애불(바위에 새긴 불상)이라는 곳이 있어서 직접 눈으로 본다면 아이들에게 꽤 괜찮은 역사교육이 될 거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렵게 주차를 하고 아이들과 함께 사찰 경내를 조금 구경한 뒤 곧바로 마애불이 있는 방향으로 올라갑니다. 이정표를 슬쩍 보고 살짝 당황했지만 아이들에게 따로 말을 하지 않습니다. 설마 별일 있겠냐며 안일한 마음으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초반에는 녹음이 우거진 숲의 공기도 좋고 경치도 좋고 물소리도 좋으며 새소리마저 좋습니다. 아이들도 이렇게 걷는 기분이 좋다며 제 마음에 공감을 해 줍니다.
소원을 비는 돌탑은 그냥 넘어가지를 않습니다. 새로 쌓으려고 하길래 돌 한 개당 소원을 하나 빌 수 있다고 장난처럼 말하니 어떻게든 하나라도 더 쌓겠다고 안간힘을 씁니다. 소원이 뭐냐고 물으니 따로 답을 해주지는 않네요.
여기까지는 분위기가 참 좋았습니다. 그런데 조금 뒤 아이들이 하나둘씩 목이 마르다고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면 되는데 뭐가 걱정이냐 하시겠지만 문제는 이 네 명의 일행 중에 손에 물을 쥐고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점이었습니다.
금방 도착할 거라 여기고 가볍게 시작했지만 의외로 코스는 꽤 길었고 갈수록 어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셋 다 그만 가고 싶다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물이라도 있었으면 좀 나았을 텐데 제 불찰이 미안해집니다. 그때 마침 기발한 생각을 해냈습니다.
삼국지에서 등장하는 인물이던 조조의 일화가 생각났던 것이죠.
주) 중국의 삼국시대 조조가 매실로 군사들의 갈증을 그치게 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되었으며 '망매지갈(望梅之渴)'이라고 부른다. "조조는 대군을 거느리고 남쪽으로 출병하다 길을 잃어 군사들이 몹시 힘들어했다. 아무리 둘러봐도 물 한 방울 보이지 않자, 군졸들은 모두 갈증을 느껴 행군조차 할 수 없었다. 이에 조조는 큰 소리로 군졸을 향해 '저 산을 넘으면 큰 매화나무 숲이 있다. 여기서 열매를 따 먹자'라고 외쳤다. 이 말을 들은 군졸들은 매실을 생각하니 금방 입안에 침이 돌아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얘들아, 위에 올라가면 음료수를 파는 매점이 있으니 거기서 레모네이드를 사 먹자. 와!! 레몬을 생각하니까 입에 침이 고인다. 좀만 더 가면 마실 수 있어!"
하지만 아이들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냉소뿐이었습니다. 사실 산 위에 매점이 있을 거라고 믿을 정도로 아이들이 순진할 나이는 지난 것이었죠. 게다가 아이 친구는 이런 거짓말은 이미 자신의 아빠에게서 너무 자주 들었다고 하면서 산통은 제대로 깨지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도전은 중도에 끝나나 싶었는데 다행히 아이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가준 덕분에 마애불에 도착하고야 말았습니다. 시계를 보니 얼추 한 시간 정도 걸었네요.
하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고 마애불도 음(飮)후경 아니겠습니까.. 저는 이곳에서 물을 찾지 못한다면 아이들의 크나큰 원망을 받을 처지였습니다.
그런데 마애불로 올라가다 보니 안내문에 이런 글귀가 적혀있었습니다.
"삼성각 아래에 감로수가 있습니다"라고 말이죠.
알쏭달쏭합니다. 일단 감로수의 '수'가 물 같기는 한데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하고 일단 계속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마애불의 왼쪽에 조그만 전각이 하나 있었고 그 현판에는 삼! 성! 각!이라는 글자가 적혀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리고 그 아래쪽을 보니 바위의 틈새로 약수터처럼 물이 고여 있는 곳을 발견하고 말았습니다. 아이들은 저기 있는 물을 마시는 거라고 하니 처음에는 걱정을 합니다. 별로 깨끗하지 않아서 배가 아플 것 같다면서 갈등을 합니다. 그냥 윽박지르듯 먹으라고 말하면 먹기야 하겠지만 그건 하수들이나 할 일이죠. 말빨 6단인 제가 또 원효대사 해골물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겠습니까! 그 이야기를 듣고 잠시 고민을 하는 듯하다가 제가 먼저 마시고 또 한 녀석이 마시고 나니 두 아이도 먹겠다고 합니다.
적당한 양으로 올라오는 내내 힘들게 만들었던 갈증을 모두 기분 좋게 해결하고 소중한 감로수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기와 옆에 약소하지만 시주도 했습니다.
그리고 전망이 기가 막히는 위치에서 월악산과 마애불의 전경을 즐기고 사진도 많이 찍고 잘 내려왔습니다.
여담이지만 마애불을 향해 올라가는 동안 동안 아빠, 엄마, 중학생, 초등학생 네 명의 가족도 저희보다 조금 앞선 페이스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올라가다 보니 결국 그 집의 아이 둘은 중도에 포기하고 바위에 걸터앉아 휴대폰 게임을 열심히 하고 있더군요. 우리 아이들 세 명에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서 기특하다는 칭찬을 한 번 더 해주고 싶습니다.
조조의 망매지갈 이야기는 심리학에도 자주 언급되는 유명한 일화지만 제가 제대로 활용을 하지 못해 아쉬웠네요. 하지만 원효대사의 이야기로 만회해서 아이들에게 물을 먹였으니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역시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으며 말 한마디로 정말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