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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 좋은 날

사실은 진짜 운이 좋은 날

by 페르세우스



며칠 전 하루는 제게 여러모로 놀라운 날이었습니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중에 아이가 갑자기 전화를 해왔습니다. 귀가 아프다고 말이죠. 아무래도 중이염 같다고 합니다. 스스로 자신의 증상을 설명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긴 했습니다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병원을 혼자서는 갈 수없어서였습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사무실에서 나오자마자 달리고 달려서 아이와 병원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원래 가기로 한 병원이 6시가 진료마감이고 5시 20분에 아이가 먼저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접수마감이라며 축객령을 내린 것이죠.


너무 황당하고 짜증이 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뒤에는 자전거를 타고 저녁 메뉴를 포장하러 길을 건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거리의 작은 횡단보도 앞을 지나던 중 차에 치일 뻔한 일촉즉발의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저는 정상적으로 천천히 지나가는 상황이었는데 차가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려오고 있었던 상황이었죠. 너무 깜짝 놀라서 자전거를 멈춰 세웠습니다.


자동차도 급하게 멈춰 섰습니다. 자동차와 자전거의 거리는 겨우 두 뼘 남짓했습니다. 운전자가 어르신이었지만 너무 놀라고 화가 난 나머지 5초 동안 운전자를 쳐다보며 놀란 가슴을 다스렸죠.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도 들렀습니다. 2+1 과자상품이 있어서 오랜만에 집어 들었습니다. 하나에 1,500원인데 세 개 사면 3,000원이었죠. 그런데 물건을 사서 집으로 오니까 영수증에 4,500원이 찍혀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부랴부랴 다시 편의점에 갔더니 잘못 붙여놓은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결국 환불을 하고 말았습니다. 헛걸음을 한 것이죠. 화가 났습니다.


피부과에 갔을 때도 사건이 생겼습니다. 얼굴에 시술을 해주는 의사 선생님이 너무 빠르게 하시길래 불만스럽게 한 마디를 했습니다. "너무 빨리 하시는 거 아닌가요? 느낌이 별로 없는데요?"라고 말이죠. 저는 "좀 더 꼼꼼하게 해 드릴게요"라는 말 정도를 기대했지만 그 의사 선생님도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무슨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죠? 숙련도의 차이가 있고 저는 지금 더 해드리고 있는데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라는 말이 돌아왔습니다.



하루에 일어난 일이라고 하기엔 정말 어마어마한 수준입니다.







피부과에서도 순간 울컥하고 다음 말이 지만 여기서 더 언쟁을 해봐야 다른 분들에게까지 피해를 드릴 것 같아 보여서 바로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죄송하게 되었습니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분께서도 더 싸울 각오를 하고 계셨던 모양인데 제가 바로 누그러지자 저도 앞으로 더 꼼꼼하게 봐드릴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답을 하셨습니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은 제목 속에 반어적인 의미가 있지만 저는 오늘을 진짜 운수 좋은 날로 생각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힘든 상황들이 있었지만 그 안에서 나름대로 장점을 얻었으니까요.




병원이 비록 일찍 문을 닫았지만 늦게까지 운영하는 다른 더 좋은 병원을 부랴부랴 찾아서 진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차와 사고가 날 뻔했지만 지금보다 훨씬 더 자전거를 안전하게 타야겠다는 마음을 들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과자를 사지 못해서 헛걸음을 했지만 결재를 취소함으로써 돈도 아끼고 뱃살이 찌는 걸 예방할 수도 있었죠.


피부과 선생님과는 쿨하게 언쟁을 마무리하면서 좀 더 돈독해졌습니다.


이번 하루는 멋지게 마무리했습니다. 하지만 이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좀 더 마음이 너그럽고 여유로운 사람이 되도록 더 노력해보려 합니다.


한 줄 요약 : 내 인생을 만들어나가는 건 내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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