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페르세우스 Jan 27. 2022

MBTI와의 전쟁

저기 혹시.. MBTI가 어떻게 되세요?

 이 자리를 빌어서 독자님들께 고백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사실 저는 점성술사, 점쟁이였습니다. 비싼 밥 먹고 웬 쉰소리냐고요?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제가 타로카드 점을 볼 줄 알기 때문입니다.

 꽤 오래전 이야기지만 2005년 정도에 독학으로 타로카드를 배운 뒤에 5년 정도 많은 사람들의 점을 봐주곤 했었습니다. 꽤 열심히 공부해서 진지하게 봐주었기에 지인들에게 입소문도 났었고 저를 찾아오는 분들도 적지 않았죠.


 그런데 타로카드를 봐주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점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서 두 가지의 공통적인 키워드를 발견했습니다. 바로 불안감과 아전인수(我田引水)이었습니다. 타로카드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무궁무진합니다. 애정운은 물론 재물운, 학업운, 건강운 등 못 보는 것은 없습니다. 카드를 해석할 수 있는 능력만 있으면 가능하니까요. 그러다 보니 사람마다 보고 싶어 하고 궁금해하는 내용이 다 달랐습니다. 자신의 불안이 어떤 것인지를 무슨 점을 보고자 할 때 어쩔 수 없이 드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전인수라는 말의 의미는 이렇습니다. 타로점을 보다 보면 저도 완벽한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도무지 해석하기가 힘든 카드가 나올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든 두리뭉실한 말로 때우고 넘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을 하면 상당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상황에 카드의 의미를 끼워 맞춰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 그러면 그게 이렇게 된다는 뜻인가?"라고 자신의 상황에 스스로 맞춰서 해석을 하는 것이죠. 그렇게 스스로가 해석을 하는 이유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자신의 불안을 해소하고 싶은 욕구가 강해서였으리라 생각됩니다.


 그 일을 직업으로 할 생각은 없었기에 아이가 태어날 무렵부터는 자연스럽게 그 바닥에서 떠나게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대화를 해야 하기에 시간적인 문제도 있고 입도 아프고 목 아파서 체력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어서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많이 흘러서 요즘 유행하고 있는 MBTI 열풍을 가만히 지켜보니 타로카드를 보던 때 느꼈던 것과 묘하게 겹치는 부분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불안감과 아전인수 두 가지 모두가 말이죠.



MBTI는 ‘레이블링 게임(특정 유형으로 딱지를 붙여 자기 정체성을 확실하게 하려는 시도)’에 열광하는 젊은이들에 의해 요즘 특히 더 주목받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은 4가지 유형으로 사람을 나눠 판단해버리는 혈액형보다는 훨씬 낫지 않느냐라고 항변하시기도 니다


그런데 가만히 지켜보니 이 엄청난 열풍에 부작용 있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일단 이 심리검사를 모르고서는 처음 만나는 사람과 대화를 쉽게 하기도 힘들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심지어는 MBTI로 우리 주위에 존재하는 모든 인물(연예인, 극 중 인물, 만화 주인공, 정치인)을 분석하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버렸습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관계를 맺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스크를 벗고 만나는 경우가 적어지다 보니 MBTI라는 것으로 사람에 대해서 더 쉽게 파악하고자 하는 욕구가 생기게 된 것이죠. 우스갯소리로 소개팅에서 상대방을 거절할 때 "MBTI가 안 맞아서 좀 힘들 것 같아요"라는 말까지 한다고 하니 당황스럽습니다.


 저는 작년 2월부터 인사이동으로 새로운 사무실에 출근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동료들을 만나서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죠. 이 상당수의 젊은 직원들은 이야기를 하다 보면 꼭 MBTI 이야기를 합니다.

"MBTI가 어떻게 되세요?", "제가 맞춰볼게요", "S 아니신 것 같은데" 등 그냥 단순히 가벼운 재미로만 치부할 범위를 넘어선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이미 공신력에 부족함이 있다고 하는 MBTI를 원래의 93개 문항에서 더 적은 숫자의 문항으로 결과를 확인할 수 있게 만든 사이트들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문항 몇 개만으로도 자신의 MBTI를 알 수 있다는 점이 과연 편리하다고만 할 수 있을까요?

 사실 저는 1997년 고등학교 2학년 때 MBTI를 처음 했었습니다. 그때는 ISTJ였고 대학교 때는 I와 E의 경계에 있는 ESTJ, 직장인이 된 뒤에는 완벽히 치우친 ESTJ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여행하는 방식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5년 전만 해도 5분 단위로 시간계획표를 짜던 것에서 지금은 무계획으로 가는 것을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치우친 J형에서 P형으로 변화가 생긴 것이죠.


 이렇게 자기 자신에 대해서 정의하는 것은 단순히 하나의 검사, 한 번의 검사로는 불가능합니다. 여러 번의 검사와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서 자신을 찾아나가야 하는 것인데 오히려 자신의 MBTI로 자신을 끼워 맞추는 듯한 웃지 못할 상황들이 생기는 것이죠. 심지어는 어린 학생들마저 MBTI 검사를 통해서 자신의 진로를 정하려고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해서 솔직히 굉장히 우려스럽기까지 합니다.



  요즘 들어 청소, 여행, 연애, 요리, 공부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16가지 소분류를 통해 분석해주는 콘텐츠들이 진짜 많습니다.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진짜 재미로만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최근 오랜만에 만난 동기들에게 MBTI가 뭐냐고 은 적이 있습니다. 그냥 관심이 없다, 모르겠다고 말한다 해도 크게 개의치 않을 생각이었죠. 그런데 갑자기 그 친구가 휴대폰을 꺼내며 저장해놓은 자신의 MBTI를 확인해서 알려주는 것이 아니겠어요. 지나가듯 우스갯소리로 물었는데 이렇게까지 해서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습니다.


 연 우리는 자기 자신의 MBTI를 알게 된 뒤로 더 많이 행복해졌을까요?

작가의 이전글 돌봄과의 전쟁 2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