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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르세우스 Aug 03. 2023

돌아가자, 집으로! 대신 조금만 돌아서

백일백장 백일장



저는 현재 책과강연에서 운영하고 있는 글쓰기 모임인 백일백장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백일동안 글을 쓰자는 취지의 온라인 모임인데요. 이번에 재미난 이벤트가 있어서 도전해 보게 되었습니다. 주제는 바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낯선 여행지에서 길을 잃었다. 집까지 돌아오는 나만의 기상천외한 방법'입니다.


그런데 제가 버려진 장소를 임의로 정하자니 그건 재미가 없겠다 싶어서 신선한 방법으로 골라봤습니다.



먼저 6개 대륙으로 나눠서 사다리를 한 번 타고요.  

 

남아메리카가 당첨되었네요. 남아메리카에 있는 주요 나라 12개국을 대상으로 또 한 번 사다리를 돌렸습니다.

볼리비아에서 고립된 상황에서 이야기 시작합니다.






아, 아뿔싸..


내가 이런 실수를 하다니.. 우유니 사막으로 향하면서 주머니 안에 지갑을 넣어두었는데 버스에서 내릴 때 확인해 보니 없어져 있다. 잠결에 뒤척이면서 좌석에 떨어진 모양이다. 그 사실을 버스가 다시 출발하고 10초도 되지 않아 황급히 깨달았지만 아무리 뛰어서 쫓아가도 버스는 멈추지 않는다. 알고 가는 건 아니겠지? 



처음 혼자서 남미여행을 다고 했을 때 모두가 뜯어말리고 걱정을 했다. 그런 우려에 대해 워낙 계획적이고 조심성이 많으니 괜찮을 거라며 자신 있게 말한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패기만만했던 여행자는 순식간에 남미의 중심인 볼리비아에 홀로 버려진 노숙자로 전락할 처지가 되었다. 일단 주머니에 있는 50 볼리비아노(약 만 원) 가량의 돈으로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사를 하면서 고민을 했다. 이미 일은 벌어졌고 배낭과 지갑을 다시 찾을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말도 통하지 않는 이곳에서 나는 이제 여행이 아닌 탈출을 해야 한다.



물론 대사관에 연락을 하면 지금 발생한 문제들의 대부분은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이 여행은 너무 재미없게 끝나버릴 테니 아쉬웠다. 새로운 도전과 고통을 즐기기 위해 이 여행을 왔으니 이 선택지는 일단 가장 뒤로 미뤄두기로 했다. 짧고 굵은 고민 끝에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글을 쓰는 사람이 글로 이 상황을 극복해 보기로. 

SNS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결국 이 상황에서 내가 쓰는 글을 읽어줄 수 있는 사람은 온라인상에 있는 사람들뿐이었다. 빠르게 이 세상에 존재하는 SNS를 모두 휴대폰에 설치했다. 트위터, 메타, 인스타그램, 카카오스토리, 브런치스토리, 스레드, 틱톡 등 계정을 설치한 뒤에 돈 한 푼 없이 세계일주를 하는 여행자라는 제목으로 짧은 영상을 찍기로 했다. 



그리고 챗GPT를 통해서 볼리비아에서 영향력이 많고 소통을 많이 하는 인플루언서를 찾기 시작했다. 번역기를 통해서 내 사정을 설명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거나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알려달라고 요청하기로 했다. 



"안녕, ㅇㅇㅇ! 만나서 반가워. 나는 양원주라고 해. 대한민국 서울에 살고 있는 40대 남자이며 글을 쓰는 사람이자 우유니 사막에 여행을 와서 경비를 잃어 고립된 가엾은 사람이기도 하지. 물론 지금 내가 처한 문제는 대사관에 바로 연락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어. 


하지만 나는 볼리비아가 얼마나 멋지고 친절한 나라인지를 경험해 보고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어. 이 여행의 끝이 어떻게 마무리가 되든 이 추억은 책으로 낼 테고 영상으로도 만들어서 널리 알릴 생각이거든. 나는 네게 볼리비아가 좋은 나라라는 사실을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어. 네가 만약에 도움을 준다면 나는 어떤 식으로든 꼭 그 도움을 잊지 않고 갚을게. 혹시 네가 도와주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이 상황에 필요한 다른 멋진 친구들을 소개해줄 수 있을까? 그것도 내게는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야. 


몸은 아직 건강하니 호의를 받는 대가로 일을 하거나 내 능력이 필요하다면 그것도 충분히 가능해. 너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할게. 너의 새로운 친구가 되고 싶은 한국 여행자가.. 


Hola, ㅇㅇㅇ! Encantado de conocerlo. Mi nombre es Wonju Yang. Es un hombre de unos 40 años que vive en Seúl, Corea del Sur, escribe, y también es una persona lamentable que perdió su seguridad en un viaje al desierto de Uyuni y quedó aislado. Por supuesto, el problema que estoy enfrentando en este momento se puede resolver contactando directamente a la embajada.


Pero quiero experimentar lo maravilloso y amable que es Bolivia y presentárselo a mucha gente. No importa cómo termine el final de este viaje, estos recuerdos se publicarán en un libro, y planeo hacer un video y difundirlo ampliamente. Quiero darle la oportunidad de que la gente sepa que Bolivia es un buen país. Si me ayudas, lo recordaré y te devolveré la ayuda de cualquier manera. Si se encuentra en una situación difícil de ayudar, ¿puede presentarme a otros amigos maravillosos que necesita en esta situación? Eso también podría ser de gran ayuda para mí.


Mi cuerpo todavía está sano, así que si trabajo a cambio de un favor o si se necesita mi habilidad, eso también es posible. Espero poder mostrarles el alcance de su influencia. Un viajero coreano que quiere ser tu nuevo amigo..



이 내용으로 글을 작성해서 인플루언서들에게 DM을 보내고 짧은 영상도 만든 뒤 업로드를 하고 사람들에게 알리기 시작했다. 물론 답이 많이 올 것이라고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이 세상은 얼마나 바쁘게 돌아가며 얼마나 사기꾼들과 나쁜 사람들이 많은가. 나 같은 사람의 문제가 무슨 대수겠는가. 외국이라고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한 20분만 기다렸다가 대사관에 연락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생각보다 많은 반응과 답장이 왔다. 직접 데리러 온다는 친구도 있었고 더 자세한 설명을 원한다는 친구도 있었다. 물론 일단 의심부터 했다. 인터넷으로 장기밀매와 원양어선으로 검색도 해봤다. 아마 걱정이 많은 누군가는 "제발 그 미친 짓을 그만하고 그냥 대사관에 연락할 수는 없을까?"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런 기회는 다시 태어나더라도 오지 않을지도 모르니 그런 걱정은 금방 사라졌다. 검증된 인플루언서에게만 연락을 했기에 걱정했던 정도보다는 위험이 덜하리라 믿고 잠시 고민을 하다가 빠르게 회신을 하기 시작했다. 


예상보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내가 이렇게 손이 빠른 줄 몰랐다. 그렇게 해서 만난 볼리비아 친구는 자신의 자동차로 우유니사막을 구경시켜 주었고 수도인 라파스까지 동행해 주었다. 스페인어를 할 수는 없지만 바디랭귀지를 섞어가면서 최대한 소통하려 애를 썼고 정말 이해가 되지 않을 때는 번역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첫 번째 만난 친구 이후로 계속 많은 친구들을 새롭게 만났고 하다 보니 소통하는데도 점점 더 수월해졌다. 내 여행기는 그날그날 글과 영상으로 만들어 올리기 시작했고 새로운 인플루언서들의 홍보로 인해 사람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볼리비아에서 수많은 친구들에게 도움을 받았고 페루로 갈 수 있었다. 친절한 사람들을 만나서 잠도 잘 수 있었고 오토바이도 타고 승용차도 타고 버스도 타고 트럭도 타고 기차도 타고 배도 타고 이동할 수 있었다. 볼리비아를 나와 페루를 시작으로 해서 에콰도르 -> 콜롬비아 -> 파나마 -> 코스타리카 -> 니카라과 -> 온두라스 -> 과테말라 -> 멕시코 -> 미국 -> 캐나다까지 일명 팬 아메리칸 하이웨이로 불리는 경로로 여행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국경에서의 문제는 영향력 있는 새로운 친구들의 도움으로 생각보다 빠르게 해결되었다. 


그렇게 알래스카까지 간 뒤에 러시아 -> 몽골 -> 중국을 거쳐서 결국 한국으로 돌아왔다. 장장 3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죽지 않고 돌아온 그때의 경험으로 나는 책을 썼고 영상도 만들어 대박이 난 뒤 엄청나게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여행작가가 되었다. 마치 영화 <마션>에서 돌아온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 역)처럼 말이다. 


SNS를 싫어하고 아이들에게는 금지시켜야 한다는 입장이었던 내가 SNS로 새로운 경험을 했다는 점은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렇지만 그 상황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그 뒤로 나는 더 재미있게 살기 위해 회사를 그만둬버렸다. 도움을 준 친구들에게도 모두 선물을 보내주고 그때의 호의에 대한 감사함을 조금이나마 표현할 수도 있었다. 한국에 여행을 올 계획이 있는 친구나 친구의 친구가 있다면 시간을 내서 꼭 만났다. 


지갑을 잃어버리는 일로 인해 내 인생은 그렇게 바뀌었다. 


-끝- 

 



너무 길어지면 읽기 지치실까 하여 이 정도로 끊습니다. 픽션은 역시 어렵네요.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한 줄 요약 : 사람의 인생은 끝이 결코 정해져 있지 않다. 정말 뜻하지 않은 계기로도 방향이 바뀌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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