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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가장 소중한 보물

by 페르세우스



아이들과 함께 지내다 보면 질문을 받고는 합니다.

"아빠한테 가장 소중한 보물이 뭐예요?"라고 말이죠. 질문의 의도는 자신들이라고 이야기해 주기를 바라는 눈치고 그 기대에 늘 화답을 해줍니다.


그렇게 몇 번을 대답하고 나면 아이들은 시시해졌는지 질문지를 바꿔서 다가옵니다.

"아빠, 그러면 아빠한테 가장 소중한 물건은 뭐예요?"라고 묻죠.


그때도 쉽게 대답합니다.

"일기장이지"

물건으로 한정된 질문이라면 23년 간의 제 삶이 녹아있는 일기장이 가장 소중하긴 하죠.




"그다음에는요?"

"음.. 필사노트?"

일리아스를 비롯해 다양한 책들을 필사한 노트가 30권 정도 되니 그 자료도 매우 중요한 보물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그다음에는요?"

"책장에 모아둔 책이지. 아빠가 아직 반도 못 읽었지만 다 못 읽으면 너희한테 물려줄 거니까"




지치지도 않나봅니다.

"그 다음에는요?"

"그다음은......음... 노트북?"


매일 글을 쓰고 자료를 찾으며 소통을 하는 창구니까 아무래도 노트북 또한 제 소중한 보물이라 할 수 있었죠. 그동안 써왔던 제 원고들도 이 안에 있기도 했고요.




그런데 요놈들이 또 이상한 질문을 이어갑니다.

"그러면 일기장이랑 우리랑 물에 빠지면 누구를 먼저 구할 거예요?"

질문이 참 일차원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이들은 진지합니다. 제가 일기장을 어지간히 아끼는 듯해 보였나 봅니다. 농담으로 받아칠까 하다가 괜히 서운할까 봐 진심으로 말해줍니다.

"아빠한테 우리 가족보다 소중한 물건은 없어"라고 말이죠.


이렇게 말을 마치면 아이들은 시시하다는 듯 가버리죠.




아무튼 그 대화를 통해서 제 인생의 소중한 보물 1, 2, 3, 4위 정도는 확고하게 정해진 듯해 보였습니다. 서열도 크게 문제될 부분이 없었고요. 그런데 얼마 전 그 순위가 순식간에 바뀌어버렸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바로 노트북 때문이었습니다.


멀쩡하게 사용하던 노트북의 자판이 덜렁거리더니 아예 눌러지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자판도 헐겁거나 제대로 눌러지지 않는 부분이 보였습니다. 중고로 산 노트북이 너무 혹사를 당해서 이제 파업을 하려나보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얼마 전에 한 번 모니터의 화면이 가로로 깨져버린 듯 깜빡깜빡거렸던 적이 있어서 그때도 화들짝 놀란 적이 있었기에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발열현상이 심해지기도 했죠.




문제는 이런 증상들이 점차 발생 횟수가 증가하고 있었음에도 제가 노트북 안의 데이터들을 백업해두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 안에는 제 원고가 다 포함되어 있으니 적지 않은 분량의 자산이 들어있었죠.


자판이 고장 난 뒤 다른 조치 없이 일단 컴퓨터를 그냥 꺼두었는데 이대로 컴퓨터가 이대로 저를 떠나버릴까 봐 불안하 지기 시작했습니다. 상상만해도 현기증이 나는 순간이었죠.





이런 이유로 순식간에 노트북은 제 보물 1순위로 올라오고 말았습니다.


다행히도 서비스센터에 도착해서 자판을 통으로 교체하고 다른 부분을 점검까지 마치고서야 제가 평소에 관리하던 자료를 백업할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보물 순위에서는 내려갔습니다. 인간은 역시 간사해요.


요즘에는 데이터 복원기술이 발달해서 휴대폰이든 컴퓨터든 소프트웨어상으로 삭제되거나 하드웨어가 망가지더라도 일부 심각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라진 자료를 살려낼 수 있는 수준입니다. 물론 그렇게 하기 위한 시간이나 비용이 적지 않게 들어가죠.




제게는 노트북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는 휴대폰이 보물 1호라고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포노 사피엔스>의 저자이신 성균관대 최재붕 교수님도 강의에서 이제 인간은 5장 6부가 아닌 5장 7부를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시며 휴대폰은 이미 또 하나의 장기라는 말씀을 하시기도 했죠.


전자기기가 발달하면서 인간은 이 새로운 문명의 이기에 빠르게 적응하고 흡수되어 갔다고 봐도 과언은 아닙니다.

저 역시 그런 사람 중의 한 명에 지나지 않죠. 그렇지만 이런 이기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삶을 산다면 부작용 또한 적지 않다는 사실을 이번 기회를 통해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결국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자신의 선택들이 모이고 쌓여서 일어난다고 봤을 때 조금 더 냉정하게 인간으로서의 나 자신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 볼 필요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한 줄 요약 : 소중한 자료, 평소에 백업 잘해두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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