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지만 가을의 명확한 기준은 있습니다. 좀 어렵긴 해도 이 기준으로 봤을 때 가을은 이미 왔습니다. 이틀 연속 하루 평균 기온이 20도 미만인 시기가 있었거든요.
그렇지만 저희 집에서 가을맞이를 하는 순간은 좀 다릅니다.
바로 옷장에 쌓여있던 여름옷들을 정리할 때가 바로 가을의 시작입니다.
낮에는 덥지만 아침저녁으로는 많이 선선해지는 날씨를 며칠 겪고 나니 깊은 고민에 사로잡혔습니다. 언제 어른을 비롯해 아이들의 옷장 정리를 하느냐에 대해서 말이죠.
아내와 급하게 일정을 잡았습니다. 그 결심은 아이들이 일어나서 선선한 거실 공기로 인해 재채기를 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죠. 보통 집안일을 함께 시키려고 하는 편이지만 이번 옷정리는 아이들과 차근차근 함께 하지 못하고 어른 둘이서 후딱 해서 치우기로 했습니다. 둘 다 여유롭게 정리하기에는 피곤했기 때문이죠.
옷장의 옷들을 바닥에 다 던져놓고 서랍을 비웠습니다. 기존의 서랍 사진은 차마 찍지 못했습니다. 맞벌이부부가 사는 집의 옷장이 뭐 다 거기에서 거기죠.
바닥에 있는 옷들을 개서 서랍에 차곡차곡 넣어봅니다. 반으로 접고 반으로 접는 방식이 아닌 어깨 쪽으로 접는 방식을 써봅니다. 방송이나 인터넷에 자주 나오는 방법이지만 귀찮아서 잘하지 않았거든요.
솔직히 귀차니즘으로 인해 어차피 입으면 구겨질 텐데 굳이 뭐 하려 하냐는 생각도 들었죠.
그래도 올해 처음 옷장에 넣는 가을옷이니 차곡차곡 알려준 방법대로 정리해 봤습니다. 막상 다 개고 나니 옷들이 옷가게에 진열된 모습 같아서 깔끔해 보이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옷가게에서 이런 일을 매일 같이 하는 분들도 많이 힘들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이들에게도 앞으로도 이렇게 정리할 수 있도록 지도를 꾸준히 해야겠습니다. 지금은 옷을 넣는 정도만 돕고 있는데 정리를 하는 방법도 알려줄 필요도 있겠습니다. 더 크는 만큼 집안일에 대해서도 더 많은 역할을 해야죠. 공부 하나만 잘한다고 해서 훌륭한 인간이 될 수는 없으니까요.
윗옷과 바지까지 정리를 하고 나니 개운한 기분이 듭니다. 미루던 숙제를 끝마쳤다는 기분처럼 말이죠.
하지만 모두 끝났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옷정리의 가장 큰 묘미는 버리는 옷을 정리하는 일입니다. 어른들의 옷은 주로 2년 이상 입지 않은 옷을 기준으로 하지만 아이들의 옷은 내년 여름에 입을 수 있겠느냐로 나뉠 수밖에 없습니다. 이리저리 추리고 보니 생각보다 버릴 옷들이 많습니다.
아이들이 한 해 사이에 많이 자라기도 했습니다.
제 옷장을 정리하면서 나온 옷들과 함께 모아보니 꽤 많습니다.
환경문제를 고려해서 계속 입으면 좋겠지만 누구에게 물려주기에는 낡아서 어쩔 수 없습니다. 의류함에 넣어서 리사이클링이나 업사이클링이 될 수 있기를 바랄 수밖에요.
옷장 정리를 마치고 나니 이제 진짜 가을이 온 듯해서 마음이 싱숭생숭해집니다. 그래도 수확의 계절인 만큼 남은 기간 동안 올해의 목표 중에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일들을 마음을 다잡고 도전해 보는 계기로 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