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여행기 3탄을 기다리시는 분들이 있으셔서 부담이 좀 커졌지만 사실적인 관점에서 잘 전달해 보겠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부산 여행 이틀 차인 화요일이었습니다. 숙소에서 오전 시간을 보내고 국립수산과학관 방문까지 마친 뒤 외삼촌 댁을 찾아뵐 예정이었죠. 외삼촌은 부산 해운대에 살고 계셨고 전화를 가끔 하기는 했지만 거의 십 년만의 만남이었습니다.
외삼촌 댁을 방문하기 전에 일단 부산 명소인 해운대해수욕장을 들르기로 했습니다.
저는 한 번 간 길은 잘 잊지 않는 그야말로 길눈이 밝은 사람임에도 해운대의 길은 서울보다 복잡했습니다. 오거리, 일방통행길, 갈림길 등 내비게이션을 켜고 있음에도 잠시 한눈을 팔면 길을 잃기 일쑤였죠.
그렇게 세 번 길을 잘못 들고 나서야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해운대해수욕장은 한 여름의 뜨거운 열기가 넘치는 시기와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습니다. 그래도 거대하게 펼쳐진 백사장은 여기가 왜 부산에서 가장 유명한 해수욕장인지를 알려주는 듯했습니다.
거기에서 아이들은 신발을 벗고 바닷물에 발을 적시며 모래놀이도 잠시 즐겼죠. 그 와중에 저는 서울에서 관광을 하러 부산에 오셨다는 사모님과 갑작스러운 대담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관광 온 여사님 : 아이고, 쌍둥이이예요?
나 : 네~
관광 온 여사님 : 오늘 학교 안 가고 놀라왔나 봐요.
나 : 네, 학교 쉬고 왔어요~
관광 온 여사님 : 아이들이 참 잘 생겼네~
나 : 감사합니다~
아이들을 칭찬해 주시길래 함께 나와 이야기를 나누던 아내는 갑자기 슬그머니 사라져 버려 온데간데없고 저와 여사님만 덩그러니 남아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오 분 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야 했습니다. 가실 듯하면서도 계속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엘시티 사우나에 건강에 그렇게 좋은 면역방이라는 곳이 있다는 사실까지 듣고 나서야 라이방 선글라스를 끼고 계시던 사모님과의 소중했던 만담 시간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계속 이야기를 들어준 제가 기특하셨는지 대뜸 서태지를 닮았다는 덕담을 해주시며 떠나셨습니다.
해운대에서 경청 능력을 발휘하고 난 뒤외삼촌 댁에 가서 저녁식사를 맛있게 했습니다.
식당이 해운대 해변 근처였기에 돌아오는 길에 해운대 해변길을 잠시 돌았습니다. 바다와 건물 이곳저곳을 직접 설명해 주셨고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걸으니 더 재미는 있더군요.
그 순간!!
제 반대방향에서 거대하며 익숙한 실루엣이 하나 지나가는 게 아니겠어요?
맞습니다. 바로 이대호선수였죠. 저는 사실 사람을 알아보는 눈썰미가 좋아서 제가 한 번 만난 사람도 잘 잊지를 않습니다. 아내 분과 함께 산책하는 듯했습니다.
그러고서는 뒤에서 걸어오시는 외삼촌께 여쭤봤죠.
나 : 보셨어요?
외삼촌 : 맞네, 이대호. 여기 산다카드라.
대화는 거기서 끝납니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야구에 관심은 많았던 저 혼자 흥분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 사내기자활동을 하던 DNA가 피어오르면서 쫓아가고 싶은 욕구가 생겼죠.
제 선택지는 순식간에 이렇게 네 가지나 생겼습니다.
1. 쫓아가서 사진을 찍자고 정중히 여쭤본다.
2. 안 찍는다면 휴대폰에 사인이라도 받아온다.
3. 안 적어준다면 악수라도 한 번 하고 온다.
4. 안 해준다면 말이라도 섞었으니 그 정도로 충분하다.
제 의견을 들은 가족들은 과도한 행동이라면서 적극적으로 차단합니다. 아내와 아이들은 제 그런 모습을 보면서 도무지 왜 이러는지 이해를 못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실랑이를 하는 동안 이대호 선수와 저와의 물리적, 심리적인 거리는 점점 더 벌어져갔죠.
결국 외숙모님마저 차분한 말투로 함께 만류를 하셔서 저는 마음을 접고야 말았죠.
귀찮게 하지 않으며 근황토크를 시도하며 대화를 할 자신이 있었는데 정말 아쉬웠습니다.
그러면서 예전에 <명량>, <한산>을 연출한 김한민 감독 특강 때 질문이 기억났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유명인사들에게 인터뷰나 질문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죠.
김한민 감독께 제가 했던 질문은 이랬습니다.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시고 동국대 연극영화과 대학원에 진학하셨는데 그렇게 결정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고 어떤 어려움이 있으셨나요?
다른 뻔한 질문들과는 달리 제 질문에는 정말 진지하고 친절하게 대답해 주신 기억이 납니다.
그 이후로도 많은 분들과 인터뷰를 할 때 제 질문은 제가 평가하기로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분들로서도 평소 들어본 적이 없었던 질문들이었을 테니까요.
그런 이유로 제 맘도 모르고 저를 가지 못하게 말린 가족들이 조금 야속했습니다.
그렇지만 마음의 상처를 입고 올까 봐 걱정되어 그랬을 거라 생각하며 마음을 추슬렀습니다.
곰곰이 되돌아보니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제가 정말 간절히 원했다면 말리더라도 갔을 텐데 제가 결단력 있게 행동하지 못했으면서 다른 사람 탓을 하고 있다고 말이죠. 모든 문제는 내 의지가 있었다면 해결될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하지는 않았나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결국 그날의 이대호 선수와 관련된 에피소드는 제게 커다란 교훈을 주었습니다.
한 줄 요약 : 내가 도전하지 못한 이유는 남 때문도 아니고 주위 환경 때문도 아니다. 결국 내게 더 강한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