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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레인지는 그렇게 다시 태어났다

by 페르세우스



안녕하세요, 자녀교육에 진심인 쌍둥이아빠 양원주입니다.



전화위복(禍爲福)이라는 말 다들 아시죠? 화가 바뀌어 되려 복이 된다는 의미로 평소에도 자주 사용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저는 새로운 의미의 전화위복(禍爲福)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다른 점은 첫 글자인 전이 바뀐다는 의미가 아닌 전자레인지라는 점입니다. 전자레인지가 화를 당했으나 다시 복을 얻었다는 뜻이 되었죠.




이 전화위복 사건의 발단은 이렇습니다.


소비기한이 빠듯하게 남은 계란을 밥솥에 조리해서 만들어놓은 구운 계란이 집에 딱 하나 남아있는 상황이었습니다.


2호가 때마침 그 계란을 먹겠노라고 했죠. 차가워진 달걀보다는 따뜻하면 좋겠다 싶었던 아내가 그 계란을 접시에 담아 전자레인지에 데우겠다고 하는 겁니다.




저는 다른 일을 하던 중에

"그거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안 될 텐데?"

"아냐, 괜찮아"

"아..... 안 될 텐데..."

"괜찮다니깐"

"뭐 그러든지"


다른 일을 하면서 마치 남의 일인 양 아내를 설득하고 있던 지라 그 말이 먹힐 리 없었죠. 저의 영혼 없는 설득을 뿌리친 아내는 전자레인지에 계란이 담긴 그릇을 넣고


당당하게 30+30+30 이렇게 1분 30초를 눌렀습니다.


결과는 어땠을지 유경험자들은 더 잘 아시리라 생각됩니다. 저 조그만 기계 안에서 펑하는 무언가 터지는 소리는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달려가보니 눈 뜨고는 보기 힘든 광경입니다.


여러 단어로 표현해 볼게요.


익스플로전

전쟁터

난장판

대폭발

대참사

폐허




다친 사람이 없으니 다행입니다. 이제는 수습을 해야겠죠. 우리 집에서는 원래 무슨 일이든 결자해지가 원칙입니다.



그렇지만 결국 이번 사태로 인한 청소는 저의 몫이었습니다. 아내가 열심히 수습을 위해 닦았지만 제대로 닦이지 않았기 때문이죠. 이미 그동안 묵혀있던 찌든 때가 있어서이기도 했습니다. 왜 제대로 안 닦냐고 폭풍잔소리를 하려고 하는데 아내가 이렇게 말합니다.

"나이가 들어서 손에 힘이 없어서 그래"


그 말을 들으니 문득 이런 일화가 생각이 납니다.

회초리를 맞은 아들이 울길래 아버지가 왜 우느냐고 물으니 '아버지의 매에 힘이 빠져서 예전만큼 아프지 않아 그렇습니다'라고 말한 일화


그 말을 들으니 뭐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모습이 의도된 연출이었다면 아내는 당장 헐리우드로 보내야겠죠.



매직블록을 가지고 와서 어금니와 손목에 힘을 주고 전자레인지 안쪽을 빡빡 닦아냅니다. 계란의 파편도 많았지만 그동안 묵혀져 있던 찌든 때가 생각보다 많았음을 깨달았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사용한 적은 많았지만 제대로 닦아준 기억이 없었으니까요.


세신사가 1년 만에 목욕탕에 온 손님의 때를 미는 느낌이 이런 기분인가 싶기도 합니다.


결국 10여 분을 투자한 끝에 전자레인지 사태는 성황리에 막을 내립니다. 다 닦고 나니 새 전자레인지 같습니다.




그런데 실컷 닦고 나니까 전자레인지 세척법이 따로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이물질 제거는 베이킹소다로 하고

살균세척은 구연산

냄새제거는 소주(분무기)로 가능하다는 사실을 말이죠.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 하루였지만 나름대로 배움도 있었습니다.


무지함으로 인해 전자레인지가 화를 당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깨끗하게 목욕을 한 셈이 되었습니다. 이를 전화위복이라고 하지 않으면 무엇을 전화위복이라 하겠습니까!!


한 줄 요약 : 역시 모든 인간사는 찬찬히 살펴보면 새옹지마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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