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부터 아이들은 영어학원을 잠시 쉬고 있습니다. 외국어 공부에 조예가 깊은 지인의 조언에 따로 개별 커리큘럼을 진행 중이어서입니다. 그 조언이 꽤 유용하리라는 생각도 들었고 제가 추구하는 교육방향과도 일치해서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었죠. 거기에 사교육비를 줄이는 효과까지 있었으니까요.
간략히 설명하면 영어 교재를 풀고 영어 오디오를 듣고 영어책을 음독하는 단순한 과정입니다. 당연히 그냥 되지는 않고 부모의 수고로움이 많이 들어가야 한다는 단점은 존재합니다.
현재 2주 가까운 시간 동안 새로운 방식을 일정에 녹여내는 중인데 그냥 학원을 보냈을 때 비교하면 분명히 쉽지 않습니다. 집에서 책영어를 통해 외국어를 마스터한 아이들은 역시 부모님들이 특히 엄마가 대단한 분이라는 새삼 하게 됩니다.
먼저 여러 권의 교재를 구하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쌍둥이라서 두 권씩 한꺼번에 사야 하니 값에 대한 부담도 가볍게 생각할 수 없었죠. 최상급 중고책을 중고서점에서 열심히 구하느라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게다가 아이들과 함께 3~4일에 한 번씩 도서관에 영어책 대여 과정이 또한 만만치는 않았습니다. 집에서 가까운 거리도 아니었고 대중교통을 타기도 힘든 위치인 데다 자전거를 타고도 10분이 걸리고 걸어서는 25분이 걸리는 지역에 도서관이 있어서였죠.
수원 어느 지역에서는 동네에서 거리가 먼 지역도서관으로 인해 새로운 도서관을 만들어달라는 서명운동까지 해서 추가로 세 개나 건립되었던데 새삼 부러워집니다.
그런데 도서관과 멀리 떨어진 거리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많은 노고를 할애해야 하는 일이 더 있습니다. 바로 빌려온 책을 알코올 솜으로 닦아야 하는 일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하실 텐데요.
빌려오는 영어책들의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서였습니다. 너무 상태가 좋지 않아 알코올 솜으로 표지 겉면을 닦으면 시커멓게 무언가가 묻어나옵니다. 세균인지 뭔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말이죠. 닦지 않으면 도저히 만지지 못하는 지경이죠.
게다가 책 상태도 너무 좋지 않아 찢어지는 수준을 넘어 조금만 구기면 바스러지지 않을까 걱정되는 책들도 보입니다. 그러다 보니 매번 도서를 빌려올 때마다 표지를 닦는 일이 큰 숙제가 되었습니다. 스무 권 정도를 빌리면 절반은 이런 책이었으니까요.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 정도 상태라면 폐기하고 새로 사는 편이 나을 법도 한데 말이죠.
담당자와 이런 사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도서관의 인원도 감축하는 추세인 데다가 예산 또한 많이 회수해 가서 어려움이 있다고 하더군요. 이런 상황이니 추가로 책 살 돈이 없는 모양입니다.
국가 또한 가정처럼 여건에 맞춰서 살림살이를 해야 하니 힘들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상황은 충분히 있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고민해 봤지만 백년지대계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을 책과 도서관에 관련된 교육예산은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줬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가장 최근인 2019년 자료에 따르면 인구 10만 명당 도서관 수는 한국이 가장 낮습니다. 물론 그 이후에도 공립 도서관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도서관 숫자를 비롯해 접근성 역시 상당히 떨어진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장서 수도 적은 편이라 인기가 많은 책들은 빌리기도 쉽지 않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정치인뿐만 아니라 국민도 책과 관련된 문제의식을 가지면서 사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는 성인의 절반이 1년 동안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는 나라입니다. 앞으로 미디어나 기술이 더욱 발전할수록 책은 점점 더 사라질 테고 언젠가 올더스 헉슬리의 책인 <멋진 신세계>처럼 언젠가는 책이 완전히 사라진 세상도 오리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계속 책을 가장 큰 보물이자 진리로 여기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도록 계속 노력해야 합니다. 책을 빨리 잃을수록 우리의 삶은 더욱더 팍팍 해질 테니까요. 책의 가치를 잊는 순간 그 대가는 어떻게든 치르게 되리라 확신합니다.
한 나라가 선진국이 되기 위해 충족되어야 할 조건들이 많지만 책을 더 가까이하도록 노력하는 영역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